[PRESS] 99% 인구가 노동을 하지 않는 미래가 도래한다, "미래 직업소개소" [도서]

디스토피아의 축소판, 미래 직업소개소
글 입력 2020.05.2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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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재난기본소득,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단어들은 요즘의 대화 주제로 자주 등장하곤 한다. 지금이야 재난에 따른 지원금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곧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제공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아예 기본소득을 당 이름으로 쓰는 곳도 있고, 기본소득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당도 있고, 이미 기본소득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는 나라들도 있다.

 

뉴-노멀(New-Normal,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으로, 경제 위기 이후 5∼10년간의 세계경제를 특징짓는 현상)과 언택트(Untact, 사람 간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시스템) 시대가 예상보다 빨리 도래했다고 했다. 그에 따라 ‘기본소득’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코로나19로 예상했던 시간이 조금 더 단축된 것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하게 될까?

 


손가락으로 ‘빈 차 대기’ 신호를 만들면 자동으로 무인택시가 멈춰 서고, 목적지까지 쾌적하고 안전하게 데려다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정부로부터 생활기본금을 받아 생활하기 때문에 생활 기본금을 올려 달라는 ‘소비자 시위’가 종종 벌어진다… 환경오염 문제 가 해결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강제적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쾌적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미래 직업소개소』가 그리는 미래의 풍경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할 필요가 없다면, 노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면 사람들은 일을 하려고 할까? 한다면, 어떤 일을 하려고 할까? 『미래 직업소개소』 엉뚱하지만 한 번쯤은 상상해볼 법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미래 직업소개소>에서는 인구의 99퍼센트가 일하지 않는 ‘소비자’로 살아간다. 인구의 1퍼센트만이 ‘생산자’라는 이름으로 노동을 하고 있다. 과거 인간이 직접 담당하던 대부분의 일은 기계화되고 자동화되었다. 99퍼센트의 사람들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생활기본금으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1퍼센트의 생산자는 저마다 다양한 일을 하는데, 현재 우리가 부르는 ‘사회인’ 또는 ‘직장인’처럼 거대 IT 기업에 근무하는 ‘후유’도 있고, ‘오츠카’와 ‘메구로’처럼 영세 자영업자로 직업소개소 영업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미래 직업소개소에서 소개해 주는 직업은 꽤나 특이하다. ‘정말 이런 직업이 있다고?’ 싶다가도 한 치 앞의 미래도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앞으로 이런 직업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로봇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현지인 느낌이 나도록 서 있기, 방범 카메라에 찍히는 일, 시스템 업데이트 버튼을 누르는 일 등이다. ‘메구로’가 시청에서 일할 당시에는 주 업무가 ‘사퇴’였는데,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을 때 누군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납득과 이해를 불러오는 일이기도 했고, 그것은 인간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제가 사직하기 위해서 취직했다는 건가요?” / “응. 교통사고가 났을 때 기술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찾는 건 이미 불가능하니까. 사고 피해자가 감정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책임을 지는 것이 우리의 업무인 거야. 기계는 절대 불가능한 업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임해주기 바라네.” -p52

 

앞으로 더욱 많은 노동의 자동화와 기계화로 인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고, 그러므로 기본소득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이 모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단 하나의 해결책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직업소개소에서 소개하는 업무만 보아도 그러하듯, 지원금으로 노동 없이도 먹고사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해도 여전히 여러 이유로 노동을 하고자 직업소개소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달라진 것 중에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직업의 형태다. 물론 ‘후유’처럼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긴 해도, 소개소에서 제안되는 직업들은 비정규직이고 임금이 불안정하며, 본인이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불분명한 것 같다. 직업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이유가 어찌 되었건 점점 열악해지는 근무환경은 지금보다 더 악화되었거나, 지금과 비슷해 보인다.

 

현재 사회에서는 기본소득이 무언가 이 시대의 해결책을 가져다줄 것처럼 이야기되곤 하지만, <미래 직업소개소>에서는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그려낸 미래 세상에서 현재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본질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던진다. 그곳에서는 노동자 대신 소비자들로 이루어진 시위가 활발하고, 생산자들은 여전히 불합리하게 해고되거나,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노동자 즉, 생산자들은 오히려 자율반납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근로조건마저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목적이 없는 운동은 맹목적이고, 행동이 없는 운동은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다고 했다. 직업소개소에 등장한 소비자들은 목적이 없는 맹목적인 운동을 하는 듯했고, 생산자들은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을 행동으로 이어가기보다는 속으로 ‘어쩔 수 없다’라고 다독이는 듯했다. <미래 직업소개소>는 SF 영화에서 볼 법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했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디스토피아로 다가왔다.

 

노동조합이 많을수록 그 나라의 소득분배가 고르게 분포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책 속에서는 노동조합의 존재 여부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메구로’가 생산자로 존재하는 곳은 여전히 격차가 심하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그곳에는 노동권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그에 따라 자본으로 배제되는 이들, 그리고 소득격차는 여전해 보인다. 디스토피아가 디스토피아인지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세상을 경계하기 위해서 지금의 고민은 필수적이다. 지금이야말로 노동, 직업, 소득, 본질에 대해 생각을 던져야 할 시점인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생산자의 대부분은 아직 소위 말하는 대기업 사원인데, 그런 건설한 직장은 제대로 된 취업활동 절차가 있다. 대학에 안내를 보내는 식으로 말이다. 시청도 그런 직장 중 하나이다. 즉, 막연하게 느끼고는 있었지만 우리 직업소개소에서 다루고 있는 일자리는 거의 다 음지에 있는 것들뿐이다.” -p176

 

<미래 직업소개소>의 저자 이스카리 유바는 미래의 노동, 취업활동, 가족, 작가, 의료, 고용, 총 6가지 목차에서 ‘메구로’의 시각을 통해 미래 세상의 다양한 면을 보여준다. ‘메구로’는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듯하지만, 나름대로의 철학과 신념으로 ‘오츠카’, ‘후유’, (고양이)’소장’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솔직한 말투로 풀어놓은 유머에 웃음이 절로 난다.

 

이야기 속에는 동성애와 채식하는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지금 시대에(책 속에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헤이세이 시대라고 부른다) 유행하는 영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사람 냄새가 난다고 했던가, 먼 미래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사람 냄새나는 디테일한 설정들이 곳곳에 숨어서 이야기에 재미를 더한다.

 

“우리 세대는 마땅한 일자리도 없이 생활기본금만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데, 이 무슨 사치스러운 인생이람? 요즘 노인들은 이렇다니까!” -p107

 

‘유토피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99퍼센트는 일하지 않는 ‘소비자’로 살아가는 세상이 온다.’ 책 소개 문구에 쓰인 대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저곳은 정말로 유토피아일까? 우리가 떠올리는 유토피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노동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을 가다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소개소의 ‘오츠카’는 의뢰인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돈이 필요하거나, 사회 공헌을 하고 싶거나, 따분하거나. ‘메구로’는 생계를 위해 생산자가 되었지만, 그 속에는 생계보다 복잡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직업소개소에 찾아오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마주하며 ‘메구로’는 자신의 본질,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나름대로의 고민과 답을 내린다. <미래 직업소개소>는 포스트 코로나 시기로 나아가기 직전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유토피아에 대해서, 노동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메구로’의 생각을 따라 훑어보는 미래의 삶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다시 훑어보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아닐까.

 

“아직 사무원을 시작한 지 몇 달밖에 안 됐지만, 그가 얘기하던 ‘직업소개소에 오는 사람들의 유형’은 대략 이해하고 있다. ‘돈이 필요한 타입’, ‘사회 공헌을 하고 싶은 타입’, 그리고, ‘따분한 타입’. ” -p157

 

“잘 생각해 봐. 대개의 동물은 생존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일하고 있지. 먹고 사는 걱정이 없어진 지금은 하루 종일 유유자적하며 그냥 있으면 돼. 우리 소장님처럼. 그런데 인간은 일할 필요가 없어도 일부러 직업을 찾아서 오지. 바로 여기에 인간의 본질이 있다는 거야. 그런 걸 관찰해서, 분류하고, 나름대로 처방을 내리는 게 내 취미인 거지.” -p21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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