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자연스러움이 낯선, 비일상적인 것이 일상인 아이 오렌지 - 연극 팜 Farm [공연]

운명이 정해져 태어난 한 아이의 이야기
글 입력 2020.05.29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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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이 정해져 태어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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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팜(farm)>은 유전자 재조합으로 태어나 평생 남을 위한 땅(farm)역할을 하며 삶을 살아가다 외롭게 죽어가는 ‘오렌지’의 이야기이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주제를 듣고 매우 공상 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현대에 와서는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소재가 마냥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아직 세상에 나오기 전, 세포 단계에서부터 계산되고 조작된 DNA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없었던 선택권처럼, 일생을 선택권 없이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는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 태어났으니까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하겠네 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고 당연스럽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도, 대학교에 입학한 후 첫 교양강의 였던 현대과학에 대한 수업을 들었을 때도, 나는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주제에 항상 반대의 입장이었다. 물론 유전자를 재조합 하는 기술 자체가 문제점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이 주제에 항상 반대해 온 것은 추후 그것을 이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문제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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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조합에 인위적임을 더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존재한다. 유전자 재조합으로 좀 더 크고 서리에 잘 견디는 참외를 길러낸다면, 그것은 ‘더 달고 맛있는’ 기능을 다하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고 더 우량한 소를 길러 내기 위해 우수한 유전자를 조합한다면, 그것은 ‘일 잘하는’ 기능을 다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렇게 애초에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인간이 태어난다면,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정해진 운명을 타고 난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쪽이 좀 더 나의 의견과 가깝다. 정해진대로 산다면 그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것도 자신이 정한 것도 아닌 운명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저 흘러가는 하루를 살아 내기에 바쁘다며 잊고 살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 <팜(farm)>속의 주인공 오렌지의 삶이 가엽게 느껴진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자신을 위해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자신 앞에 놓인 무한한 선택 중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를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렌지에게는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선택권 없이 살아가는 삶이란 상상이 안 갈 정도의 고통일 것이다.

 

 

 

비일상적인 몸짓을 통해 존재를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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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팜(farm)>의 안무는 비일상적인 몸짓을 기반으로 한다. 일상적인 몸짓을 하나 하나 쪼개 놓은 듯한 독특한 움직임은 또다른 층위의 ‘언어’가 되어 관객들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주제를 전달한다. 이재영 안무가는 “일상의 행동들을 집요하게 관찰하여 하나의 행동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지 파악하고 그 모든 과정들을 나눠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비일상적인 무대 언어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어쩌면 이런 비일상적인 몸짓은 결코 일상적일 수 없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유전자 재조합으로 태어난 아이 ‘오렌지’의 일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렌지’는 마치 로봇과 같은 존재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그 태어남에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그런 오렌지에게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동작은 낯설기 그지없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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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로봇이 사람의 언어를 배우고 몸짓을 배울 때, 그 관절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분절하여 배워가듯이, 이 극은 그러한 로봇과 같은 비일상적인 몸짓들로 채워져 있다. 세상에 태어나 자연스럽게 배워 나가야 할 것을, 태어남부터 자연스럽지 않았던 오렌지는 그렇게 인위적인 방식으로 몸짓을 배우고 그렇게 움직인다.


우리는 평소 일상을 살아가며 내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뛰고, 어떻게 밥을 뜨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하나하나 인지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것이다. 오렌지에게는 어려운 그 ‘자연스러움’이 얼마나 일생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이 극을 통해 알 수 있다.

 

 

 

자연스러움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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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것이 최고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동시에 인위적이더라도 더 잘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 때로 인위적임을 택한다. 우리는 어쩌면 누구나 조금씩은 오렌지들이다.


살면서 한번도 인위적인 것을 택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짜여도 언제까지나 빛나는 다이아몬드에 더 손이 가는 법이니까.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때로 바래고, 보잘 것 없고, 빛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본연의 모습이 결국은 ‘나만의 것’이라는 거다.


내 것이 아닌 걸 바라고, 바라보고 살아가는 생에서는 결코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없다. 내 안의 것이 아닌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외부의 것에 매달리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남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나지 않아도, 주목받지 못해도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의미 있으면 괜찮다.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말처럼, 우리는 각자 남다른 개성과 특성을 지녔다. 어쩌면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내게 특별하기 때문에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가 좋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게 의미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이 사회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와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

팜 Farm
- 2020 극단 프로젝트 내친김에 -


일자 : 2020.06.05 ~ 2020.06.14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제작

프로젝트 내친김에

 

협력

페스티벌 도쿄 (FESTIVAL/TOKYO)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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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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