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성이라는 이유로 잊혀야 할 생의 노력은 없기에

메이슨 커리 저 「예술하는 습관」
글 입력 2020.05.2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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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흐트러지고 있는 요즈음이다. 매일 찾아가던 곳은 문을 닫았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변함없이 곁을 주는 친구도 만나지 못한다. 모든 물살이 멈춘 곳에서 호젓이 고여 있다. 시간은 이전과 똑같이 흘러가는데 무력해진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정체시킨다. 멈춰 있으나 안정적이지 않고, 걷지 않으나 떠밀려간다. 이러한 나날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나마 틔워낸 힘마저도 꺾어버리고 있다.


생존해야 한다. 병균으로부터, 병균이 낳은 이 힘없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며 언제 또 닥칠지 모르는 끝없는 기다림의 상황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항상 함께하던 것과 거리를 두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 나만이 남겨져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는가에 대한 것이다. 활동 범주가 제한된 상태에서 그럼에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 세상에서도 동요되지 않는 삶의 구성을 고민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이기도 하다.


삶을 이루고 있는 무수한 요소 중 가장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습관‘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제각기 삶들은 무례하게 유형화되고 있고 습관들 역시 그러하다. 삶이 몇 가지 유형으로 간단히 묶어지면서 자신의 습관을 돌아볼 기회는 빈약해지며 개인의 삶은 그 안을 채우는 요소가 아닌 외부적인 타인의 기준에 따라 정의된다. 하나의 생존 방식으로서의 ‘습관에 대한 앎’의 기회는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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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쁜 것은 그 기회가 누군가에겐 더, 누군가에겐 덜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기준은 주로 사회적 관심도에 따른다. 즉, 사회적 약자일수록 ‘나’를 알 기회가 줄어든다. 삶이 납작해지고, 타인과 구분할 수 없어 홀로 선 채로 인정받지 못한다. 『예술하는 습관』의 저자 메이슨 커리는 이전에 예술가들의 습관을 정리한 책을 출판한 후 자신이 다룬 예술가 중 여성의 비율이 17%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성 주류 미술 작가들의 사생활이 속속들이 캐내어지며 끊임없이 회자되고 기억되는 동안 여성 예술가들의 경우 사생활은 물론 작품에 대한 정보까지 역사의 곁가지로 취급되는 현실에 대한 반격이다.


책은 소설가, 미술가, 비평가, 디자이너, 가수, 악기 연주자, 사진작가 등 장르를 초월하여 집합된 무려 131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습관을 다루며 그들의 삶 그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표지에 적혀있는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이라는 짤막한 소개 문장을 처음 봤을 때 눈에 들어왔던 부분은 ‘위대한 창조의 순간’보다 ‘구체적 하루의 기록’이었다. 여성 예술가의 구체적 하루에 대한 기록물이 남성 예술가의 그것에 비해 찾아보기 힘든 까닭이다. 물론 그들의 ‘창조의 순간’ 역시 그 ‘위대함’에 비해 덜 조명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위대함의 여부를 떠나 내밀한 삶과 습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그 권한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권한의 바깥에 있는 인물의 구체적 기록이란 그 자체로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명망 있는 예술가들의 습관을 기록했다고 해서 자기계발서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131명의 예술가들이 (당연히) 모두 다른 습관을 취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 습관이 건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또한, 이 책의 집필 목적은 바람직한 습관을 보고 배워 이를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다. 책에서 다뤄진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말을 인용하여 타인의 습관에 대한 기록물이 갖는 가치를 대신 서술한다.

 

 

다른 작가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다른 작가의 방식을 따라 하라는 말은 아니다. 남의 방식을 살피다 보면 그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 천천히 나아가다가 결국은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에서 언급된 수많은 삶은 지문처럼 다른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엄격한 루틴을 지키는 예술가와 아무런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작업에 착수하는 예술가가 있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 만한 것은 기피하는 예술가와 마약과 카페인에 의존하는 예술가가 있다. 작업에 임하는 동안은 온전히 몰입하여 순식간에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가 있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듯 미적미적 작업하다 겨우 완성하는 예술가가 있다. 이러한 분류는 극히 일부만을 설명할 뿐이다. 심지어 정해진 습관 유형이 없는 예술가들도 등장한다. 다르게 보면 그것 역시 그들의 삶을 이루는 습관일 것이기 때문이다.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물들의 올바른 습관을 매개로 한 독자의 계몽과 계발이 아니다.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삶들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포착함으로써 그것을 포함하고자 함이며, 사회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삶을 홀대하는 사람들을 비춰주기 위함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활동 영역이 주로 집과 가정으로 제한되었던 여성 예술가들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작업실 하나 주어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에 따른 습관을 구성할 여유가 자연히 부족해진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예술가들이 자신에 대해 모르게 된다. 페미니즘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의 말처럼 여성 예술가가 미술사에 상대적으로 적게 기록된 이유는 실제로 기록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여성을 예술가로 만들어내는 움직임조차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습관이 하나의 생존 방식이 되는 기제는 예술가의 경우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 습관이 만들어지는 자기만의 방 한 칸 비워놓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여성이 예술가가 되기 어려웠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성 예술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습관을 축적했다. 강박에 가까워 보이는 루틴부터 물 한 컵이나 가벼운 음식, 옷차림처럼 사소한 생활방식까지 책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습관들의 방향은 모두 예술가 자기 자신에게 맞춰져 있다. 심지어 어떤 것을 싫어하는 감정도 예술에 임하는 습관이 된다. 언론인인 도로시 톰슨은 무능력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회에 대한 분노를 원동력 삼아 창작한다고 했다. 비판적 관점을 필수로 견지해야 할 언론인이라는 직업에 자연히 수반되는 습관이다. 배우 탈룰라 뱅크헤드는 세 가지 혐오증(잠자러 가기 싫은 것, 일어나기 싫은 것, 혼자 있기 싫은 것)이 있다면서 그것을 잠재운다면 인생이 흐릿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삶에 있어 생기는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예술하는 습관’이었다.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지 않고는 아무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뭔가를 느낄 수 없어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려면 아주 강해져야 하죠.


- 조앤 미첼


 

습관을 구축하고 지키는 것조차 제약되는 현실에 맞서는 방식이 예술가마다 다르다는 것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다. 영화감독 아네스 바르다는 출산과 육아로 야외에서 영화를 찍지 못하게 되자 집 안으로 활동 영역을 확정하고 제한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원활해지는 선택과 집중을 발휘하며 동네 상인들의 일상을 찍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였다. 주어진 한계선을 깨뜨리고 극복하기보다, 자신의 영역이 갖는 강점을 극대화함으로써 그곳을 중심적인 영역으로 만들고 기존의 지배 관계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의무는 이렇듯 평생 고수해 온 습관마저 현실에 맞춰 개조하게 하지만 예술가들은 굴하지 않고 위기를 자신의 특징으로 만들었다. 책에 등장하는 131개의 습관은 동시에 131개의 생존방식이며 끝나지 않는 난세를 맞서는 개인들의 일대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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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프로젝트의 조화는 불가능하고, 그러한 조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 수전 손택

 


유명인들의 습관을 다룬 여타 서적과는 다르게 이 책에 등장하는 습관은 하나의 목적이나 방향으로 깔끔하게 수렴되지 않는다. 습관들이 모여 나아가는 공통된 지향점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습관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목표는 지워졌던 역사를 기억하는 동시에 지워질 위험이 있는 현재의 살아있는 역사들 역시 무수한 습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하나의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현실에 융화되지 않고 따로 노는 듯이 존재해도 마땅히, 오히려 그래서 기록될 가치가 있음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습관들의 미래가 결코 모두 밝은 것은 아니다. 인용한 수전 손택의 말처럼 삶과 프로젝트는 완벽히 조화될 수 없다. 완벽해 보이는 습관도 삶이라는 예술을 만들어나가는 데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조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한 노력들은 불완전하고 울퉁불퉁할지라도 어떤 삶의 빈칸에는 꼭 들어맞는 퍼즐 조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하고 불현듯 다가오는 그 조각들은 단지 여성의 것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이 소실되었다. 유독 잊히기 쉬운 이들의 삶, 그리고 그것을 이룬 습관들을 한 번씩 움켜쥐어보자. 바로 그것이, 나의 인생 중에 있는 빈 곳을 채워줄 유일한 조각일 수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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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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