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재즈(Jazz)로부터; 그런 줄은 몰랐지 [음악]

글 입력 2020.05.23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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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작가의 정서나 사고를 담고 태어남은 분명 하나 더불어 그 사람이 살던 시대적 상황을 입고서 우리 앞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람은 무리 생활을 하는 부류인지라 크고 작은 개인의 무리가 합쳐진 사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가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정서를 느끼는 것도 예술의 재미 중 하나이나 그 작품에 담긴 시대 전체의 정서를 느껴보는 것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쉽다. 경복궁이나 남대문을 보면서 우리 선조들이 살던 조선의 풍류가 담긴 시간을 타고 흘러드는 향기에 취하듯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시대적 바이브를 담고서 귓가로 흘러드는 재즈의 선율에 스며든 위스키의 향에 취하기도 한다.

 



소리를 지르고자 악기를 들다



재즈(Jazz)라는 장르는 들어본 적은 없을지라도 한 번쯤 들어 본 적은 있을 장르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도 재즈 음악은 안 들어봤어도 재즈라는 단어 정도는 한 번쯤 들어 봤을 터이니 말이 되기는 한다. 왠지 모르게 있어 보이는 이 재즈라는 음악은 방에서 혼자 스피커로 틀어놓건 카페나 바에서 커피 또는 술을 즐기면서 듣건 간에 나를 왠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경쾌하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끈적하게 들러붙는 선율이 섹시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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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TJ Dragotta on Unsplash

 


재즈는 미국의 흑인들의 손에서 태어난 음악이다. 미국의 뉴올리언스는 여러 인종들이 뒤섞이며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냈고 그 속에서 백인들에게 차별받던 흑인들은 내부에 쌓여가는 불만과 스트레스를 음악이라는 형태로 풀어내고자 했고 그렇게 재즈가 탄생했다. 즉흥적으로 뒤섞이기도 하고 경쾌하며 다양하게 변하는 재즈의 자유로운 특성은 당시의 억압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정신이 반영된 울부짖음이다. 차별받거나 외면당하지 않고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욕구를 담고서 사회를 향한 불만을 아름답고도 부드러운 음악으로 풀어낸 것이 재즈라는 음악이고 그 정신과 선율을 함께 느끼고자 할 때 진정한 재즈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이건 에세이건 그림이건 음악이건 형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작품에는 제목이 붙는다. 제목은 우리가 누군가를 부르는 이름처럼 그 작품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하나의 문장이다. 책은 글을 읽으면서 그 제목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느끼고 노래는 가사를 통해서 그 맛을 음미한다. 악기가 주를 이루는 재즈는 가사도 없고 읽어 낼 수 있는 글도 없다.


덕분에 처음 재즈를 들었을 당시에는 제목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단순히 그 한 곡의 멜로디가 내 흥미를 끌어당기는가 아닌가 가 선택의 기준이자 전부였다.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다양한 악기 속에서 태어나는 멜로디로 속삭이는 아티스트들의 비언어적인 메시지와 혹여나 놓치거나 잘못 받아들일까 싶어 제목에 조심스레 적어놓은 속마음을 지나쳐버린 시간들을 다시 가져 올 수만 있다면 내 안의 재즈는 조금 더 풍부하고 깊어진 맛을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연주하는 마음, 속삭이는 역사



아마 내 인생에 있어 처음 겪어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음악을 단순히 취향에 따라 듣고 마음을 달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속에 담긴 깊은 무언가를 우려내며 한 잔의 멜로디를 진하게 느껴 본 일은 이전까지의 내 기억을 아무리 들춰봐도 찾아볼 수 없다. 팝 송을 들을 때도, 힙합을 들을 때도, 판소리를 들을 때도 이 음악이 왜 태어났을까에 대해 물음표를 떠올린 적은 없었다.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물음표를 말줄임표로 만들어 정리하고 마침내 느낌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부분 말줄임표를 건너뛰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보다는 지극히도 현실에 충실한 현실주의자인 탓에 지나간 일을 모아두는 역사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을 살기에도 팍팍한 세상에서 과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변명을 달고서 외면했다. 덕분에 큰 재미를 놓치고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모든 것을 즐겨왔던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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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Etienne Assenheimer on Unsplash

 

 

재즈라는 단어 자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그렇지만 재즈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주황색 조명으로 물든 바의 원목 탁자에 앉아 위스키 한 잔을 즐겨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부드럽게 늘어지면서도 끈적한 특유의 선율이 주는 영향도 있겠지만 재즈의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뉴 올리언스의 재즈 아티스트들이 바(bar)나 홍등가에서 주로 공연을 했던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탓이기도 하다.


이런 점이 어떤 예술과 함께 할 때 그 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서 오는 감상자의 입장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차이다. 왜 위스키 한 잔이 생각날까라는 물음표를 떠올린 후 왜 그럴까 고민하는 줄임표에서 끝날 것인가와 그 시작에 대한 역사를 배워가는 말줄임표를 지나 이유를 알고 난 후에 커다란 느낌표를 만들어내며 짜릿한 즐거움을 느낄 것인가는 예술을 감상하는 입장에 놓인 사람의 손에 달려 있기에 어느 누구도 대신 결정할 수 없다.

 



한 폭, 한 곡, 한 페이지의 한 세월



이 상황은 왜 그린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문장을 왜 써 내렸을까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가사는 어떤 경험 속에서는 나온 것이나에 대해 생각해봤다.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 세계에서 나의 모든 감각기관은 작가를 찾아내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을 뿐 보다 넓은 숲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나왔던 그 시간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며 굉장히 역동적인 모습을 잘 그려냈다는 감상에서 그치는 것과 다른 이들이 목숨을 바쳐 피로서 만들어낸 길을 걸으며 자유를 울부짖던 시민 혁명 당시의 억눌려 있던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어느 정도로 깊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은 비교할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답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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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Via Artsy.net

 


다른 분야에서도 크게 다를 바는 없겠지만 유독 예술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이 음악은 어떤 기법으로 연주를 하며 이 작곡가는 어떤 가문에서 태어나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에 대해 주절주절 떠들어대며 자신의 격을 높이고자 발악하는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의 목적이 ‘잘나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난 척하기 위해서’가 되는 순간 말 그대로 ‘척’에서 끝이 난다. 골격 없이 외관만 높게 쌓아 올리니 조금만 건드려도 어쩌다 실수로 쏟아버린 화장품 통처럼 수습할 겨를도 없이 내용물이 다 사라져 버린다. 공병에 에센스를 한 방울 씩 섞어가며 몇 시간에 걸쳐 한 병의 향수를 만들어 낸 누군가는 완벽하게 이해 한 그 향수로 깊어진 향에서 나오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 터이다.


단순히 흥미가 동해서 노래를 듣거나 전시회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결코 잘못된 행동은 아니다. 억지로 몇 권의 책을 읽어가면서 공부를 한 뒤에 예술을 즐겨야 한다는 규율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위스키 향이 짙게 밴 재즈를 통해 나에게 전해진 그 목소리는 조금이나마 더 많은 것을 알고서 무언가를 즐기는 일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힌트였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제목은 왜 붙었을까?”라는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해 시민 혁명의 역사에 대해 배운 후 그 속에 담긴 우렁찬 메시지를 느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했을 뿐이다.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교과서에 빼곡하게 들어찬 눈과 귀가 답답해지는 무거운 문장에서 오는 압박이 아닌 눈과 귀를 진하게 물들일 수 있도록 역사와 배경이라는 약간의 향신료를 더해 보다 깊고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잘난 척하는 사람이 아닌 잘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The Jazz Messengers - Moanin' 속의 경쾌한 드럼 소리에 담긴 뚝심 있는 목소리와 대화를 나눈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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