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의 살던 고향에는 이주 노동자가 산다 - 파도를 걷는 소년

글 입력 2020.05.2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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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처럼 느껴지는 영화가 있다. 작품성과 상관없이 설정 자체가 내 인생과 맞닿아있어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들. 내겐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가 그러하다. <작은 아씨들>을 보면서 여러 명의 자매와 복작댔던 유년 시절이 떠오르고, <레이디 버드>를 보면 고향에 대한 애증이 떠오른다. <파도를 걷는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그 영화가 저지른 반칙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제주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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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로 일하는 이주노동자 2세 김수. 폭행죄로 전과자가 된 그는 사회봉사 명령을 받아 해안가를 청소하게 된다. 그러던 중, 자유롭게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서핑에 마음을 뺏긴다.


 

 

나의 살던 고향은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은 이주노동자에 관한 뉴스를 보도하는 앵커의 목소리로 시작해 처음부터 인물들이 조선족 상사 밑에서 일하는 불법 브로커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내가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사실적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제작 여건상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독립영화 특유의 투박한 촬영은 영화를 현실의 이야기로 느끼게끔 한다.

 

수와 필성이 길거리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회유하는 초반부는 시끄러운 소음, 전단지로 어지러운 길바닥. 날 것 그대로의 제주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실제 밤거리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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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제주도라고 하면 흔히 돌아오는 반응은 ‘부럽다.’이다. 삭막한 도시밖에 모르는 그들에게 낭만적인 바다 옆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당연할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 ‘막상 살아보면 달라.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뭐.’ 라고 웃어넘기곤 했다. 그들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어린 시절 아무렇지 않게 접했던 바다 풍경은 지금 너무나 소중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그런 낭만적인 바다 풍경만 있는 게 아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취객, 유흥업소의 전단지, ‘저긴 누가 갈까’ 싶은 낡은 간판의 가게들도 제주도의 일부이다. 텔레비전은 물론 지인들의 SNS에도 제주도가 자주 등장한다. 처음에는 반가움이 들었지만, 가면 갈수록 사진 속 제주 풍경을 심드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살던 고향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준비된 세트장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을 볼 때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반가움이었다. 수가 버려진 서핑 보드를 줍는 클린하우스 (공용 분리수거 장소인데, 이게 제주도에만 있다는 걸 몇 년 전에야 알았다)를 볼 때 반가움은 정점을 찍었다. 그래, 저긴 딱 저렇게 생겼지. 시골의 낭만도, 도시의 화려함도 없지. 하루하루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만 있지. 내가 살던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지.

 

 

 

이주 노동자


 

배경이 익숙하다고 해서 영화의 모든 부분이 새롭지 않은 건 아니다. 조선족 사람이 운영하는 사무실, 불법 브로커, 이주 노동자 2세 등 영화의 중요한 설정들은 내겐 낯설게만 느껴졌다. 제주도에 낭만만 있는 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모든 현실을 잘 아는 건 아니다. 집에는 가족들이 있었고, 학교에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런 내가 이방인 수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제주도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야기는 대부분 특정 지역에 몰려있으니 그 지역을 방문할 때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불과 2년 전에도 제주도의 이민자 문제는 ‘예멘 난민’이라는 이슈를 만나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누군가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건 인도적으로 당연한 처사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그들을 받아들였을 때 제주도민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감을 이해하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후자의 입장에 서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불안의 실체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예멘 난민 이슈가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을 때 인터넷상의 루머가 그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사람의 근거로 활용되곤 했다. 그들이 내게 위협을 가한 적이 있었던가.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랬던 건 아닐까. 영화 한 편을 봤다고 해서 모든 이민자들에게 아무 잘못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 초반, 수가 누군가에게 저지른 폭력처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으키는 범죄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외국인’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그들을 가두고 타자화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나에게 제주도는 문득 그리운 고향이다. 삭막한 도시 생활에 지칠 때면 습관적으로 “제주도 가고 싶다.”라고 내뱉곤 한다. 그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그리운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 찾아온다. 그러나 수에게 제주도는 가족은커녕 낯선 사람들과 치열한 생존만 가득한 곳이다. 제주도와 ‘안식’이라는 단어는 참 잘 어울린다. 나 같은 제주도민은 물론, 육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도 안식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곤 한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제주 어딘가에서 소외감을 느낄 누군가를 생각했다.


 

 

파도를 걷는 소년


 

상영이 끝난 뒤 GV 시간에 한 관객이 왜 파도를 ‘타는’ 소년이 아니라 파도를 ‘걷는’ 소년이냐고 물었다. 질문에 실제로 서핑에서 ‘워킹’이라는 기술이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탄다’와 ‘걷다’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탄다’는 흐름에 맡겨 수동적인 느낌이라면 ‘걷다’는 보다 능동적이고 의지에 찬 느낌을 준다.

 

수와 필성에게 서핑은 암담한 현실 속 유일한 빛이다. 수는 사회봉사로 해안가를 청소하다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고 매료돼 곧바로 파도에 몸을 뛰어든다. 수는 왜 하필 파도에 매료됐을까. 함부로 시도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왜 자꾸 파도를 걸으려 애를 쓰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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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떠나기 전, 나는 내가 섬에 갇혔다고 생각했다. 육지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은 물이 야속하기만 했다. 바다를 보며 저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상상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답답함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일까. 자꾸 바다를 바라보는 수의 심정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었다.

 

섬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나보다 수가 더 간절할 것이다. 아무리 동호와 해나가 그를 가족처럼 대한다고 해도 그가 원하는 소속감을 줄 수는 없다. 수의 바람은 오직 하나다. 엄마가 사는 하이난에 가는 것. 수는 하이난과 자신을 가로막은 물을 건널 수 없다. 그 대신 물 위를 걸으면서라도 답답함을 해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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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의 핵심은 험난한 파도 위에도 균형을 잡고 서 있는 것이다. 영화는 서핑을 통해 의지와 상관없이 내몰린 현실 앞에서 안간힘을 다해 두 발로 선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

 

사실 아쉬운 점도 많았다. 우선 인물들의 감정선이 급작스럽다는 점이 그랬다. 수가 서핑에 매료되는 것도 급작스러웠지만, 그의 현실을 알기에 수긍할 수는 있었다. 그래도 동호와 해나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을 의지하는 과정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았나 싶다.

 

또 하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현실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가 제주에서 이방인이라는 것도 그를 고용한 갑보의 말로만 느낄 수 있다. 인물들한테 이입하게 하는 힘은 스토리보다 배우들의 연기력에서 더 크게 온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반칙 같은 영화이기에 아쉬운 점이 더러 있어도 <파도를 걷는 소년>을 관람한 경험은 값지게 남아 있다.

 

다시 제주도를 찾으면 가족 외에 낯선 사람들에게도 시선을 돌려봐야겠다. 내 삶에서 가장 친숙한 곳에 소외된 이방인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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