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핑으로 자유를 얻다 - 파도를 걷는 소년 [영화]

글 입력 2020.05.2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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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의 포스터. 푸른 파스텔 톤의 바다를 배경으로 네 명의 젊은 남녀가 서핑보도를 들고 환하게 웃음을 짓고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 1위 관광지 제주도 바닷가에서 말이다.


누구든 이 포스터만 보면 당장이라도 제주도로 떠나 서핑하며 청춘을 즐기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기대를 깨뜨린다. ‘그해 여름, 삶을 바꾼 파도와 만나다’라는 포스터 문구가 무색하게도 그 ‘소년’의 서핑 하는 장면은 보여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서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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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청년 수(곽민규)가 사는 제주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제주의 이주노동자 2세로, 조선족 출신 갑보의 인력사무소에서 하청 받아 일한다.


그는 필성(김현목)과 함께 제주도에 불법체류 외국인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준다. 매일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아래에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는 어느 날, 쓰레기 더미 옆에 부러진 서핑 보드를 발견한다.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서핑보드를 쓰레기에서 구출해내 어설프게 스티로폼을 청테이프로 감으며 완성시킨다. 서핑보드에 자신의 처지를 투영했던 것 같다. 그날부터 그는 생애 처음으로 바다로 뛰어 들어가 서핑을 시도한다.

 

바다는 모험을 상징한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트루먼(짐 캐리)는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바깥세상으로 떠나고자 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에서 소녀 모아나는 바다를 향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파도를 걷는 소년>에서 수는 바다로 몸을 내던진다.


바다의 거친 파도가 자신을 어디로 보낼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바다만이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제주도는 그를 이방인 취급했으며 그는 그러한 시선에 알맞게 행동했기에 서핑으로 자신이 이방인이 아닌 자기다워지는 자유로운 순간을 느낀다.

 

평소에 수는 말수가 많지 않으며 잘 웃지도 않아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에게 유일하게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은 어머니가 자신의 고향 중국 하이난에서 보낸 엽서를 바라볼 때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제주도 시인 이원하의 시 ‘털어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가 떠올랐다.


 

털어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오늘은

바다가 바다로만 보이지 않네요

살면서 없던 일이에요

 

견뎌야 하는 것들을 한편에 몰아두고

우연만 기다려요

살면서 없던 성격이에요

 

사흘 전부터

운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참새가 나무줄기에 앉을 때

제비가 낮게 날다가 꽃에 스칠 때

백로가 작은 돌에 안착할 때

이 흔한 사건들이 매번 운이라면,

 

왜 살면서 운을 못 믿었을까요

알처럼 생겨서 그랬을까요

 

알에 금이 가듯

운에도 금이 간다면

 

땀을 닦던 손이 차가워질 테고 이것은

운을 넘어선 행운이니 이 틈을 타

손에 앉은 서리를 녹이기 위해

어딘가를 툭 건드릴 텐데

 

건드리면

들킨 마음에 맛과 냄새가 있을까요

 


바다는 끝이 없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한다. 수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음속에 묻어두던 고향에 대한 생각을 하며 매일 견뎌야 했던 생계 일을 잠시 잊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 시처럼 알의 모양을 가진 운과 우연을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하지 않고 그 알이 금이 가 진짜 욕망이 드러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이 시는 시인 이원하가 수의 마음을 꿰뚫어 작성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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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는 결국 제주에 정착하지 않고 하이난으로 돌아간다. 그는 갑보에게 겪었던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우거나 자신의 삶을 바꿨던 서핑에 전념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극적인 성장이 나타나는 카타르시스는커녕 성장영화 치고는 다소 밋밋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미적지근한’ 결말이 여운을 남긴다. 성장한다는 것은 외부 환경을 바꾸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그저 수처럼 자신을 알아가고 가장 자기다운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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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걷는 소년' 메인 예고편

 




파도를 걷는 소년
- The Boy From Nowhere -


각본/감독 : 최창환
 

출연

곽민규, 김현목

김해나, 강길우, 민동호

 

장르 : 드라마

개봉
2020년 05월 14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 9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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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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