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음, 언제쯤 난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도 하루는 지나간다.
글 입력 2020.05.1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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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는 김애란의 ‘비행운’ 가운데

‘서른’을 읽고 편지 형식을 빌려

매일 누군가의 또는

저의 죽음을 생각하는 저를 서술합니다.

 

저의 첫 번째 소설 속 희영에게 이 편지를 바칩니다.

 


희영에게

 

희영아 안녕, 나는 하루에 한 번은 울어. 슬픈 일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니고 누군가의 죽음을 상상해서. 왜 일어나지도 않은 죽음에 관해 생각하고 혼자 힘들어하냐고? 사실 매일 나에게 묻는 질문이야. 잘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자꾸 생각하게 돼.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잘 모르겠어.. 너는 잘 지내? 벌써 여러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너는 죽음이 뭔지 알아? 죽음이 뭘까, 죽음에 이른 인간의 얼굴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자꾸 생각해. 눈을 감은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까, 여러 생각을 하고 나 혼자 괴로워해.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죽음에서 내 주변 누군가의 죽음으로 번져와. 소중한 누군가, 내 곁에 없을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이 말이야. 죽음은 참 사람을 미치게 해, 괴롭고 힘들게 해. 그 이후를 알 수 없어서 더욱이. 또 편지 쓸게. 그때 죽음을 논할 수 있다면 참 좋겠어.


 

이렇게 소설 속 인물에게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나는 매일 누군가의 죽음을 또는 나의 죽음을 생각한다. 자기 전에, 혹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죽음은 땅 깊숙한 곳으로부터 천천히 기어 나와 내 다리를 감싸고 몸을 타고 올라와 결국 정신까지 덮친다.

 

나는 아직 죽음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어린 것 같은데 죽음은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의도치 않게 찾아온다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죽음의 여러 가지 형태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나는 죽음이 어느 순간부터 두려웠다. 그 사람의 하얀 손이 무서웠고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과 몸이 무섭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생각이 들까,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만족했다 말할 수 있을까, 살려달라고 하늘에 소리칠까. 주변의 소중한 사람이 어느 날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삶을 계속할 수 있을까.

 

죽음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내가 간접적으로 겪은 죽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최근에 가장 크게 다가왔던 죽음은 할아버지의 죽음이었다. 항상 겉으로 티를 안 내시고 다소 거친 말로 사랑을 표현했던 할아버지의 속마음을 할아버지의 죽음이 닥쳐오고 나서야 알았다.

 

고3 수험생활로 지친 나에게는 할아버지의 안부보다는 성적이 더 중요했으며 언젠가부터 걸려오지 않던 할아버지의 전화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명절이라 안동으로 내려가 지낼 때면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불을 피우고 빨리 일어나라며 화내시다가 “잘 잤냐?”라고 한 마디 건네시던 할아버지, 다른 친척이 다 자고 있을 때 슬그머니 오셔서 불을 때어주며 “춥지?” 하시던 할아버지.

 

우리 집에만 꾸준히 전화를 거셔서 “사람이 공부를 잘해야 해, 나중에 커서 출세하려면”이라고 하시며 성적만 물어보셨던 할아버지가 싫어 전화를 빨리 끊었던 기억, 외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누구보다 기쁘게 웃으시며 수고했다고 말씀하시던 그때, 나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

 

전화로 성적을 물어보시기 전에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셨고 전화를 끊으실 때 머뭇거리시며 “아니다, 됐다.”라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부모님을 바꿔 달라면서 마지막에 "너 목소리 들었으면 됐다", 하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너무나 건강하시던 분이라 한순간에 나랑 멀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나는 할아버지께 소홀했고 할아버지는 사랑한다는 손녀의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가셨다. 괴로웠다. 손녀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하니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무심한 척 일 보고 온 것이라면서 아이스크림이 한가득 든 무거운 봉지를 주시던 할아버지는 다 표현하고 있었는데 난 몰랐다.

 

수능 한 달 전, 멍한 기분으로 할아버지 장례식을 갔다. 장례식장에서 할아버지 사진을 보니 왜 할아버지가 거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도대체 왜?” 울음을 참으며 병원 위층으로 올라가 몰래 글을 썼다. 콧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를 닦아 내면서 글과 한 몸이 되어 죽음을 앞에 두고 웃기게도 죽음에 관한 글을 썼다.

 


먼지가 쌓여 꽃이 아닌 줄만 알았다.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들며 꽃은

자기가 꽃이라 말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무관심 속 시들어가는 꽃의 눈길이 신경 쓰이기 시작할 때 즈음,

먼지 한 톨이 바람에 실려 와 나를 간지럽혔다.

 

그때 알았다.

먼지는 털어내면 없어진다는 것을,..

 

울며 달려간 곳에는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린 꽃 한 송이가, 아니

수만 개의 꽃잎을 간직했던 꽃 한 송이가 있었다.

그들 중 하나라도 알아달라며 울부짖었던 그이가

꽃잎들을 흔적들로 남긴 채 눈을 감았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먼지로 자신을 가려 자신을 숨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그 먼지를 털어내어 주길 바랐다.

 

꽃은 꽃이었다.

 

그날, 모든 꽃이 다 미웠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매일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내 주변의 인물이 나도 모르는 새에 멀어질 수 있다는 느낌을 그때 강하게 받았고 울렁이는 기분이 싫었다. 내 주변 사람에게 한순간이라도 소홀해지기 싫었고, 다시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의 소중함을 계속 생각하기 위해 죽음을 떠올리는 것 같다.

 

죽음은 생각보다 강하게 다가오고 우리가 그것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주변의 나와 인연이 있던 누군가를 언젠가 다시는 볼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되리란 것도 사실이다.

 

언제쯤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죽음은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그래서 더 손에 닿지 않는 것. 죽을 때까지 혹은 죽고 나서도 형용할 수 없는 것.

 

오늘도 누군가의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 이렇게 한다고 죽음에 무뎌지는 것도 아닌데 참 열심히 한다. 그래도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죽음에 관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닿지 않는 죽음을 머릿속으로는 만들어낼 수 있음에, 느낄 수 있음에 만족하려 한다.

 

누군가의 혹은 나의 죽음을 향하여 그리고 위하여 세상은 오늘도 간다. 세상이 가고 가다가 멈추어 서는 순간이 우리의 죽음일지라도, 세상과 닿아 있었을 때 죽음을 떠올렸음을 기억하며 많이 아파하지는 말자고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그리고 이건 세상에 외치는 나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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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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