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와 너 우리, 서로를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에 인정하기
글 입력 2020.05.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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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부부의 세계 메인 포스터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최근 아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모든 부분에서 극 중 '이태오'(박해준 배우) 역을 욕하며 서로 격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극 중 '이태오'와 '지선우'(김희애 배우)의 아들인 '이준영'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친구와 의견 대립이 있었다.

 

내 친구는 (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준영' 역을 두고 자신의 어머니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철딱서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청소년이고 아직 어리다고는 해도, 아버지의 외도를 모두 알고 있으면서 어머니에게만 참을성을 요구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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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도 '이준영' 캐릭터의 그런 태도는 성숙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그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 어리기도 하고, 아버지의 외도가 있기 전까지 완벽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화목한 가정이었다. 이것을 한순간에 다 버리고 이성적으로, 합당한대로 행동하기엔 그 캐릭터는 너무나도 어리다.


그 캐릭터는 아버지의 외도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현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그냥 엄마가 좀 참아. 엄마만 참으면 아무일 없어!' 라고 말하며 어머니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나는 그 캐릭터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공감이 앞섰다. 그래서 그다지 슬프지 않은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옳지 못한 행동인 것을 알지만 그 캐릭터가 어떤 심리 상태 속에 처해있을지 느껴졌기 때문에 마냥 비난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내 친구는 이런 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캐릭터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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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준영' 역에 공감한 나는, 그 캐릭터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나는 '이준영'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저 내가 가진 경험과 생각으로, 내 기준에서 그를 해석한 것이다.


우리 모두는 완전히 그 당사자가 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라도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타인을 두고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는 이해를 하고 누군가는 비난을 하고 누군가는 응원을 한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속 좁은 사람이 되고, 이해하면 아량이 넓은 사람이 되는 건가? 아니면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은 속 없이 우유부단한 것이고, 이해하지 않는 사람은 사리분별을 잘하는 걸까? 아마 그 어느 쪽도 아닐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널 이해해' 라고 말하는 사람도, 결국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 이 사실을 피부로 느꼈을 때, 나는 외로움에 몸서리쳤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의 사람이라도 나를 완전히 이해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었고 그들은 나를 잘 보살피며 위로해주었지만, 결국 우린 다른 인격체였다. 내가 처한 곤경을 이해하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도 내가 그 당시에 느끼는 감정을 완전히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우린 남이니까. 얼마나 외로운 단어인가? '남' 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감정적 교류를 나누고, 상황을 나누었다고 한다 해도) 결국 우린 모두 '남'이다.

 


'아, 그 누구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구나.'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다. 우리는 모두 남이니까,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의견이 대립되고 불통의 시기를 겪는 것은 납득이 된다. 내 친구와 '부부의 세계'에 대해 의견 대립이 있었을 때에도,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 캐릭터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친구의 태도에 불편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타인을 상처 입힌다. SNS에만 들어가도 참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설전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해하지 못하니까 내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는 타인을 악의적으로 비난한다. 그런 흐름을 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해가 안되니까 서로를 배척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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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해보면 '이해'한다는 것은 참 얄팍하다. 이해는 결국 이성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상황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정과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 연인, 심지어는 나 스스로와의 관계까지. 우리는 이 많은 관계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통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어느새 다른 누군가를 비난하는 모습이 되어 있을 거다. 그런 모든 관계들을 엉망진창으로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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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내 기준을 타인에게 잣대로 들이밀지 말고 우리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 후 에야 진심으로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다. 완전히 그 사람이 되어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제 3자로서 타인을 바라보고 인정해야한다. '아, 너는 이런 상황을 그렇게 느끼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느끼기 때문에 너의 감정이 이렇구나.' 이해가 되는가, 되지 않는가를 논하면서 타인을 판단해버리면 더 이상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럴싸한 말로 '나는 널 이해해' 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는 너와 다르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하며 공감해주는 게 훨씬 더 위로가 될 때가 많다. 어렴풋이 우리는 모두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국 남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건네는 이해한다는 말이, 사실 이해하지 못했고 말 뿐이구나 하고 느껴질 때가 있다. 차라리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시인하며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 자체로 인정해 줄 때. 그 때에 내 마음이 더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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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이기 때문에, 이 관계를 바르게 유지하기 위해서 '이해'라는 단어를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그 가벼운 말은 아주 쉽게 칼날이 되어 타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불통의 시대 속에서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해'를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내가 던지는 공격은 반대로 나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를 상처 입히는 소모전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해 있는 크고 작은 관계 안에서, 이해 받지 못하는 내가 서글프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모두가 안타까웠다. 특히 요즘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오해가 더욱 쉽게 생기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 상처받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내린 결론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적어도 소통하려고 시도하는 나의 노력과 사색이 헛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생각을 넓혀 나가다 보면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그리고 오늘의 나보다 더 나은 내일의 우리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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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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