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회색 현실과 무지갯빛 환상 사이, 당신의 선택은? [영화]

영화 「코렐라인」 칼럼
글 입력 2020.05.08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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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넘어서 영화만을 유독 찾게 되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외모에 대한 자존감이 심하게 낮아져 도통 집 밖을 나가지 않았던 중학교 1학년 때, 기숙학원 입소를 기다리며 칩거하던 19살의 겨울이 ‘1일 1영화’를 하던 때였다. 그 밖에도 시험이나 중요한 발표를 끝낸 뒤 오래도록 기다린 선물 포장을 뜯어보듯 미리 고심해서 골라두었던 영화를 보곤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나는 부담감으로 인해서든, 해방감으로 인하든 주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듯하다. 적절한 카메라 구도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웅장한 자연과 정돈된 우아한 인공물들, 그 속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과 아름다운 사랑, 보기만 해도 흐뭇한 주인공의 성장은 성적, 외모 등등 가치 평가로 수두룩한 냉혹한 현실을 잊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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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확정지은 어느 겨울날, 나는 어김없이 영화 한 편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된 「코렐라인」의 포스터. 그 속의 아기자기한 코렐라인을 보자마자 귀엽고 즐거운 한 소녀의 성장 스토리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내 우울감에 반하는, 제격의 영화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날 또한 영화의 감상에 젖어 환상에 빠진 채 초라한 하루를 지울 계획이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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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맞벌이로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님에 불만족스러운 코렐라인의 현실은 우중충하다. 그나마 시간을 보내던 단짝 친구들과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작은 액자로만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사 온 후 여느 때처럼 어김없이 혼자 놀던 중에 코렐라인은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우연히 신비스러운 작은 문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들어간다.


문으로 들어갔건만 의아하게도 문 속의 공간, 즉 새로 이사 온 축축하고 낡은 아파트 내부였다. 실망하려던 찰나 코렐라인은 눈 대신 단추를 달고 있는 새로운 부모님을 만나게 된다. 부모님과 함께 정원을 가꾸고 따듯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부르는 등 이전까지의 회색 현실과 상반되는 환상적인 하루를 보낸다. 단추눈을 단 새로운 엄마, 아빠의 환대와 친절함에 '가짜 엄마, 아빠'라며 의심을 품던 코렐라인도 점차  작은 문 속 세계에 마음을 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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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코렐라인이 문 속에서 겪은 환상의 황홀함을 따듯한 색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나도 한창 신난 코렐라인과 함께 영화가 주는 환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문 속에서 만난 코렐라인의 새엄마가 그녀에게 눈 대신 단추를 끼울 것을 제안하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사실 매번 갈 때마다 더 이상 즐거울 수는 없을 것만 같은 일상을 선사했던 문 속의 완벽한 세계는 외로움에 치를 떨던 마녀가 만든 허구였다. 지금의 코렐라인처럼 언젠가 작은 문 속에 들어왔었던 어린 아이들이 마녀의 꾐에 넘어가 단추로 눈을 바꿔 달고, 영혼을 빼앗겼기 덕분에 유지되던 마(魔)의 세계였던 것이다. 자기가 겪은 환상의 대가가 마녀의 집착임을 깨달은 코렐라인은 반강제로 다시 회색 현실에 돌아온다.

 

영화에 빠져 신비하고 흥미진진함에 빠져있던 공상가 '나'는 작은 문 속으로 들어가 즐거움과 행복으로만 점철된, 오색찬란한 일상을 보내는 코렐라인과 같았다. 하지만 영화로 구축한 환상적인 세계는 비록 마음에 쏙 들었지만 내가 살 수는 없는 공간이었다. 결국 코렐라인과 함께 작은 문을 나오고, 문 속의 세계가 마녀의 처절한 비명과 함께 붕괴하던 순간 내가 진정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공간은 서열화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의 12월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황홀할지라도 허구에는 반드시 한계가 존재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경험을 하든, 반드시 냉정한 현실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든 말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환상과 달리 현실은 늘 달콤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은 법이다. 그렇다면 현실에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살면서 이렇다 할 기쁨과 만족감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일까? 영화 「코렐라인」은 이에 대한 대답까지 제시해주었다. 내가 들은 「코렐라인」의 대답은 바로 ‘아니다’였다. 영화가 직접적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코렐라인이 즐겼던 그 문 속의 행복하고 완벽한 일상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경로를 따져보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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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상은 외로움에 사무친 마녀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었으며 코렐라인은 순전히 불운이든, 행운이든 다소 우연히 그 공간에 접했다. 즉 일상의 행복함을 원했던 코렐라인은 그를 즐기고자 했을 뿐 자신이 원하는 행복감과 만족감을 위해 노력한 적은 없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는 어떠한 유형의 행복도 제대로 누릴 자격은 주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에서 행복감과 만족감을 원한다면 환상에 집착하며 ‘눈 가리고 아웅’할 게 아니라 직접 행동하고 움직이면서 의도적으로 행복감과 만족감을 형성해야 했다.


삶의 행복감을 실천하는 방법은 각자의 욕구에 따라 다양하다. 좋은 학점을 받는 게 자신에게 지대한 행복이라면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아르바이트를 해 티켓값을 마련하고 틈틈이 시간을 아끼면 된다. 영화에서 코렐라인은 줄곧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싶어 했는데 그렇다면 마녀가 만든 완벽한 가짜 정원에 속아 넘어갈 게 아니라 모종삽을 들고 직접 정원을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마지막에 코렐라인은 조금 엉성할지라도 가족과 이웃들과 함께 정원을 가꾸면서 건강하고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이 아까 이 문단의 맨 위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하여 영화가 제시하는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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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온전한 행복감을 누리고자 한다면 환상 속에서 그 존재를 찾을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현실에서 가꿔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은 행복을 느끼고자 하는 주체이자 실천하는 주체인 나 자신에게 존재하는 것이었다. 「코렐라인」이 준 메시지를 마음에 되새기며 대학에 입학했고 내 행복감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령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때 유독 성취감을 느끼기 때문에 꾸준히 책을 읽었으며 학점 관리에 공을 들였다. 좀 더 가볍게는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비록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 행복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코렐라인」덕에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중 가장 내 행복과 욕구에 충실하게 살고 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성실하게 움직인다.


*

 

이렇게 문장으로 적어보면 실천이라는 게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 자체도 많은 체력을 요하는 일이며 세상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산술적으로 제공해주지도 않는다. 또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예상치 못했던 천재지변도 항상 존재하게 마련이다. 아마 그럴 때면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허구로 만든 환상의 단맛을 한 번 보았던 이상 초라한 현실에 좌절하며 또다시 길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듯 환상에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렐라인의 파란 머리와 자신만만한 미소를 떠올린다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환상 속에 살 수는 없다는 것을, 현실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것이다. 조금 냉정한 방법이지만 이렇게 이성적으로 현실을 직시한다면 다시 무언가를 실천하며 삶 속에서 행복감을 추구해나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우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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