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글 입력 2020.05.03 08:2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

스포일러 포함



"문득 시가 떠오르면 넌 시를 읊고, 난 받아 적는 거야"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리사(매기 질렌할)의 '시'에 대한 예술적 욕망이 이야기 된다. 리사는 유치원 교사이자 성인 교육반에서 시 강습을 받는다. 시를 배우며, 쓰지만 리사의 시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예술적 호기심과 사물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갈망하고 무엇보다 시를 사랑한다.

 

리사는 본인의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더 바란다. 그 무언가는 리사가 시를 바라보는 태도와 직결된다. 자식들이 '예술적' 시각을 갖기를 바라고, 누구보다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창의력을 심었으면 한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런 리사를 보며 소위, '예술인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항상 엄마에게 부족한 존재라고 느껴왔다. 자식들에게 바라는 것은 사실 리사의 희망이자 욕심이다. 거기에는 리사의 '시'가 예술적 작품에 미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리사를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건 리사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자 무엇보다 채우고 싶은 욕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사는 예술을 원한다.



movie_image4N46HN29.jpg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은 예술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래서 리사는 더욱 일상의 지루함을 느끼는 것 같다. 어느날, '지미(파커 세박)'라는 학생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리사는 그것이 '시'임을 바로 알아차리고 놀라며 받아적는다. 리사와 지미와의 연결고리이자, 리사가 지미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지미는 가끔 그렇게 중얼거린다고 한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시를 읊는다. 그것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다섯살 어린아이가 왜 시를 읊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중얼릴 뿐이다. 지미는 리사가 그토록 되고싶어 하던 시인이자, 예술가였던 것이다.

 

예술가가 되기위해 노력하고 바라는 리사. 고작 다섯살에 너무 아름다운 시를 중얼거리는 지미.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둘은 엇갈렸고, 또 만나게 되었다. 리사에게 주어진 운명은 예술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지미는 예술가의 자질을 갖고 태어났다. 그런 지미를 봤을 때 리사는 어땠을까.


부럽고, 질투나고, 자랑스러우며 한편으로는 허탈했을지도 모르겠다.



movie_imageBZG5NBSQ.jpg


 

리사는 지미의 시를 받아적는다. 매번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한다. 직접 만나지 않을 때 지미는 리사에게 전화로 시를 읊기도 한다. 하지만 리사만큼 지미의 재능을 알아주는 이는 없는 것 같다. 다른 유치원 선생님도, 심지어 지미의 부모님도 말이다.


리사는 그런 지미의 재능이 안타깝고 아까워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유치원 낮잠시간에 지미를 깨워 사물을 다르게 보는 시각을 알려주고, 지미에게 본인이 가진 재능의 힘에 대해 말해주려 애쓴다. 하지만 오직 그 시간 뿐, 지미의 예술성은 리사와 함께 있을 때만 빛난다.

 

'시'라는 예술. 글이라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축소되고 보편적으로 여겨지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 지미가 쇼팽의 녹턴을 멋지게 친다면, 그건 누가봐도 천재이다. 만약 지미가 피카소 작품같은 그림을 그린다면, 이것 또한 천재적인 재능임을 한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지미의 재능은 그렇지 못했다. 시를 사랑하는 리사만이 지미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봐 주었다. 만약 리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미는 본인이 가진 재능의 힘을 모르고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말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리사는 지미의 재능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존경하는 마음까지 옅보였다. 본인만이 지미를 다섯살 아이가 아니라 예술가로 알아봐주고, 지미의 시를 무척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리사의 마음은 다른사람이 보기에 무모해 보인다. 선을 넘은 것처럼 보인다. 결국 리사는 지미를 보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얼마 뒤, 리사는 짐을 싸고 집을 떠난다. 지미를 찾아가 함께 여행을 가자고 말한다. 다섯 살 지미는 선생님을 순순히 따라간다.


"문득 시가 떠오르면 넌 시를 읊고, 난 받아 적는 거야"


리사는 지미와 영영 떠나려는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결국 납치범으로 체포된다.


 

movie_image.jpg

 


"시가 떠올랐어요"

 

경찰차에 타면서 지미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든 전화로 시를 읊고 받아줬던 리사 선생님은 곁에 없고, 이제 지미가 떠올린 시를 받아줄 사람도 없다. 지미가 떠올렸던 그 시는 무엇이었을까. 공중으로 사라져가는 지미의 외침이 가슴아프다.

 

지미는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구조된 것인지 생각해본다. 혹시 지미의 예술성이 영영 묶이게 된건 아닐까. 지미의 아름다운 시를 이제 듣지 못하게 되는건 아닐까. 리사의 마지막 행동은 처절했다. 나는 그녀의 행동이 '옳지 않다'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예술가가 될 수 없는 리사는 지미의 예술성을 갈망하고, 사랑하고, 지키고자 했다. 그건 예술을 완성하지 못하는 리사의 처절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예술을 사랑하지만 예술가가 되지 못하는 비극, 예술가로 태어났지만 성장하지 못하는 비극, 주어진 아름다운 예술성을 놓쳐버리고, 놓쳐보내는 비극.



애나는 아름답다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 지미



 

[나정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