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안보다 공허한 안락 - 기괴한 라디오 [도서]

글 입력 2020.04.30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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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은 존 치버의 단편 소설 「기괴한 라디오」입니다.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교외의 체호프 등의 수식어를 안고 있는 존 치버는 1912년에 태어나 70년간 평생 소설가로 살아오며 작품활동을 합니다. 맨해튼의 변두리 도시에서 구두 장사를 하던 아버지 아래서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온 그는, 1920년대에 미국 섬유 시장이 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암울한 생활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존 치버는 특유의 풍자적이고 냉소적인 분위기의 작품 세계를 구축합니다. 「기괴한 라디오」,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사랑의 기하학」과 같은 단편작, 『왑샷 가문 연대기』 등의 장편 소설들에서 그가 포착한 삶의 단면들, 체호프 풍의 서술이 드러납니다. 활동 당시에 동시대의 스타인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로 유명한) J.D. 샐린저와의 비교, 알코올 중독과 양성애 등의 스캔들 등으로 주목받기도 한 그는 1982년 폐암으로 인해 사망하게 됩니다.


「기괴한 라디오」는 뉴욕 변두리의 서튼 플레이스(Sutton Place)에서 거주하는 젊은 부부의 생활에 ‘기괴한 라디오’가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진 묘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린은 남편과 자식들이 집을 떠나 있는 한가한 낮 시간대에 라디오를 듣는 것이 유일한 취미입니다. 어느 날 라디오가 고장나게 되고 아이린은 남편 짐에게 새로운 라디오를 구해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새로운 라디오가 집에 들어오게 되고, 집의 인테리어와도 어울리지 않고 이상한 잡음이 나는 이 라디오 때문에 평화로운 가정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 기괴한 라디오를 자세히 들어보면 아파트 건물 다른 층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윗집 소리, 잡역부와 바람을 피우는 아랫집 소리, 그리고 돈이 없어서 어머니의 심장질환을 돌보지 못하게 된 사정, 폐결핵을 앓고 있는 엘리베이터맨의 사정. 이러한 사정들은 불쾌하고 역겹지만 아이린은 매일 혼자있는 시간에 이러한 라디오의 소리들을 꼬박 챙겨듣습니다. 온통 불안감에 미쳐가면서도 아이린은 라디오 소리를 듣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짐은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아이린의 모습에 분노합니다.


아이린은 자신이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집이 비는 시간에 거르지 않고 다른 가정들의 소리를 듣습니다. 작가는 이 과정을 소설에서 “역겹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역겨운 감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린이 이 소리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상당히 묘하다는 인상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아이린이 다른 집안의 사정에서 스스로에 관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변두리 도시에서 만족스러운 소득과 명예, 사랑을 이루고 있는 이 행복한 가정에게 있어서 애초에 무언가 결여되어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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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세계 속에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기까지 아이린에게 있어서 아주 내밀한 불안감들이 외면되어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평균 이상의 소득을 얻고, “매년 영화관을 약 10.3회 방문”하는 가정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인간의 본질적인 감정들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우물의 물과 같아서 많이 표출하고 피부로 느낄수록 고갈되지 않고 더욱 풍부해지기 마련입니다. 배우자와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며 가정을 지키는 동안 내면에 쌓여온 불안감은 지속적으로 외면당하고 점점 소멸합니다. 이유모를 슬픔과 공허감은 그래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기괴한 라디오’를 통해 들려온 소리를 듣는 행위는 스스로의 내면에 위치한 비슷한 감정을 발견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평균 이상의 삶’의 안락함에 묻혀졌던 내밀한 감정들이 이 라디오를 통해서 밝혀지는 것입니다. 이 이질적이고 낯선 라디오를 통해만 이런 감정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상적인 안락함이 무뎌진 개인을 구원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린이 라디오 소리에 집착하는 것을 단순히 관음증적 욕망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관음증만을 통해서만 이러한 감정에 도달할 수 있게 된 세태에 슬퍼해야하는 현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린은 어느 날 퇴근한 짐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묻습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요? 그리고 돈이나 불신 때문에 우리가 걱정할 일은 없는 거지요?” 이러한 다급한 질문은 그녀에게 다가온 감정의 분출, 그리고 일상의 파괴를 고스란히 드러내 줍니다.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감정을 그녀는 짐에게 털어 놓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퇴근 후 피곤한 짐의 목소리일 뿐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게 된 아이린, 그리고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의 내밀한 감정을 알아차릴 수 없는 짐의 관계에서 사랑의 파탄이 비극적으로 그려집니다.


1937년에 창작된 이 작품에서 라디오라는 것은 우리 시대의 텔레비전, 혹은 인터넷, 스마트폰에 상응하는 장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짐이 ‘기괴한 라디오’를 사온 것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큰맘 먹고 신형 스마트폰을 사주는 오늘날 아버지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짐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의 선물을 주고 싶었을 것이고, 그러한 마음이 이 집안에 ‘기괴한 라디오’를 들이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이 라디오는 아이러니하게도 퇴근한 짐의 눈앞에 신경증적인 아내의 모습을 만들어놓습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새 라디오가 아니라 남편과의 대화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래에는 문학의 기능에 대해 살짝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문학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온전히 알게 해주는 장치라는 생각이 약해졌습니다. 오히려 문학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자신이 몰랐던 감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한 편의 글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은, 사실 다른 사람에게 내 안의 낯선 감정을 투영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은 근본적인 공감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다만 내면의 낯선 대상을 목격하게 해줍니다. ‘기괴한 라디오’를 통해 아이린이 목격했던 내밀한 감정 같은 그러한 것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새로운 삶이 펼쳐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한 삶의 변화는 더욱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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