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자가 몰라야 할 이야기가 있다면, 맨 끝줄 소년 [도서]

손님과 주인, 작가와 독자, 무대와 관객의 관계 흔들기
글 입력 2020.04.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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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독자의 시선은 주어진 모든 것을 훑고 지나간다. 시선을 통해 작품을 읽어내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며 이야기에 몰입하다보면 가끔 이야기의 미세한 부분을 놓칠 수도 있다. 작가가 구성한 이야기는 시선 속에서 그들만의 것으로 재단된다. 그런데 그들이 아는 이야기가 있고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면, 독자가 몰라야 할 이야기도 있을까?


영화감독 프랑수아 오종이 영화화하기도 한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 맨 끝줄 소년을 번역한 이 책에서 독자와 작가의 관계를 포착했다. 과제물을 내는 학생과 그것을 읽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독자인 선생님마저 관찰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함은 클라우디오가 모든 이를 볼 수 있는 맨 끝줄에 앉는 소년이라는 사실로부터 온 것이다.


그 독자인 선생님이 그의 글을 읽고 있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작가와 독자가 하나의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진짜 쓰여진 이야기와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구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읽는 이들은 그것을 구분하려고 애를 쓴다. 마치 무의식적으로 작가와 독자의 경계, 작품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는 지점의 안위를 살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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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의 글을 들어본 헤르만 선생님의 아내 후아나는 처음부터 이 안위가 흔들리는 것을 감지하고 클라우디오가 모두를 비웃고 있으며, 그가 자신이 뭐라도 되는 듯이 군다고 생각한다.


헤르만은 이런 반응을 의아해 한다. 그러나 이 친구는 헤르만의 특별지도를 받게 되면서 받은 책들을 나중에 후아나가 혼자 있을 때 가져다 주러 간다. 독자인 헤르만의 가장 내밀한 곳을 건드리는 것이다. 과제 속 그가 흔들려 하던 친구 라파엘의 엄마가 아닌 독자를 건드린다. 헤르만은 그제서야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까? 아마 그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독자로서의 특권이었을 것이다. 읽고 생각하고 그것을 넘어 작품의 갈등에서 배제되는 안락함을 느끼는 것 말이다.


흔히 독자는 대놓고 작품 또는 대상을 관찰하고 관망하는 사람으로서 여겨져서 맨 끝줄의 위치에 어울릴 수도 있다. 클라우디오는 자신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보다 한참 잘 사는 동급생 라파엘의 집에 가서 과외를 해주며 그 집을 탐험하고 그곳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 복도에 홀로 서서 엿들으며 그들을 읽어낸다.


거실에 걸린 그림의 제목을 해석하고 부부용 화장실의 약품을 구경하며 잠든 부부의 침대 곁에서 친구 엄마 에스테르의 발을 쓰다듬는다. 마치 소설의 독자가 된 듯 체험한 내용을 음미하지만 그는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작품이 원하는 것은 누구든지 흔드는 것이다. 손님과 주인의 관계, 작가와 독자의 관계, 무대와 객석의 관계를 흔들어댄다. 나중에 대화 내용 속에도 섞여있는 과제 내용을 보아 어지간히 글에 심취한 헤르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무대 위 인물이면서도 독자의 정체성에 몰입해 있다.


그는 작가인 클라우디오와 물리적으로 밀착해 있고 직접 소통할 수 있지만 학생은 자신이 느낀 것을 헤르만에게 전부 다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헤르만은 자연스럽게 그가 낸 글 속 세계에 갇혀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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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클라우디오는 선생님이 글을 읽는 표정을 관찰하며 헤르만을 읽었을 수도 있다. 사실 극 중 인물들은 모두 무대에 나와 있다. 선생님이 그의 과제를 받아 그 자리에서 읽으면 관객, 선생님의 아내, 친구 라파엘의 엄마 등 모두에게 그것이 들리는데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가 그것을 직접 읽어볼 때도 있다.


이 장면에서 내용상으로는 학교에서 선생님 앞에 앉아있지만 무대에서 모든 인물과 함께 나와 있는 클라우디오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독자는 그런 것을 알 수 없다. 헤르만이나 관객이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모른다.

 

이처럼 클라우디오의 심중은 과제물 속 친구의 집에서만 흔들리는 듯 보인다. 그만하라는 말에 따르는 듯 따르지 않는 그는 그간 받은 책을 정리하러 헤르만의 집에 가 그곳에서 글을 쓴다.


그 집들, 선생님 헤르만의 집과 친구 라파엘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 그것이 전부였는지는 알 수 없다. 집들은 독자에게는 정확한 길을 알 수 없는 미궁처럼 흔들리고 그곳은 파괴, 개입, 혼란이 연속되는 장이다. 헤르만의 입장, 독자의 입장에서 이곳은 클라우디오의, 작가의 머릿속이다. 하지만 잊지마시길, 모든 것은 종이 속 일이다.


헤르만과 클라우디오의 관점은 과제물이라는 종이 몇 장을 통해 형성되고 전달되며 파괴된다. 라파엘의 집에서 에스테르에게 마음을 말하는 방식이나 결말을 쓴 종이를 헤르만의 집에 두고 가는 행동 등 종잇장은 전달의 수단이 되기도 하면서 그들만의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이 된다.


종이는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의 관점이 만나고 싸우는 한 지점이다. 독자와 글을 쓴 사람이 상관관계를 맺는 상징물이자 매개체인 것이다. 종이에 쓰인 글자 밖 독자인 줄로만 알았던 자신의 내밀한 속내가 침범 당했을 때의 느낌은 뼈를 찌르는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관계들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위태롭고 도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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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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