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별까지도 사랑인 것을 [도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읽고
글 입력 2020.04.3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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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홍이와 일본 남자 준고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책은 한 권은 공지영이 써 내려간 여자의 시선으로, 한 권은 츠지 히토나리가 써 내려간 남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두 남녀가 사랑을 느끼고, 서로에게 빠져들고, 이별하고, 슬픔을 삭이고, 다시 만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다르면서도 같은’ 마음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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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이노카시라 공원 호숫가에서 시작된 그들의 인연이 칠 년 후 김포공항에서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란 제목 그대로 두 주인공의 사랑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칠 년 전, 도쿄.

 

스물두 살의 베니와 스물세 살의 윤오가 있다.


베니는 홍이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고 윤오는 준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홍이와 준고 두 사람의 애칭이자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둘의 관계를 더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와도 같았다. 다른 문화, 언어, 환경 속에서 자라 온 두 사람이지만 사랑이라는 튼튼한 실로 묶인 관계는 끊어질 일 없는 듯 보였다.

한 침대에서 함께 맞이하는 아침도,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에서 혼잡한 틈을 타 꽉 껴안고 이동하는 통학 시간도, 서툴지만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함께 먹는 저녁도 모든 순간이 좋았다. 함께 자전거를 타며 느꼈던 바람도, 대나무 숲에서 한 입맞춤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은 둘의 사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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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도 너무 팽팽하면 결국 끊어지는 법이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홍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 준고와 집에서 혼자 준고를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홍이. 둘은 언젠가부터 싸우는 날이 많아졌고, 눈물과 한숨이 뒤섞인 공간에서 등을 지고 자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 날들 속에서 홍이는 밖으로 나가 달렸다. 달리기는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홍이만의 방법이었다. 달리다 보면 어느새 마음보다 더 힘들어진 몸에 적응하게 되고, 머릿속은 가벼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몸의 고통이 마음의 고통을 이길 때까지, 답답한 마음이 툭툭 털어질 때까지 홍이는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달리기는 정답을 찾기 위한 방법이었을 뿐, 외로움의 해결책은 아니었다. 홍이에겐 준고가 필요했지만, 준고는 너무 바빴다. 오랜만에 홍이와 함께 외식을 하기로 한 날 역시 준고는 일 때문에 홍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홍이는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싸웠고, 준고는 돈이라는 현실과 싸우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한 마음이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음을 깨닫기도 전에, 그들은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칠 년 후 현재, 서울.

 

스물아홉의 최홍과 서른의 사사에 히카리가 있다.

홍이는 사정이 생겨 참석하지 못한 통역사를 대신하여 공항으로 일본 작가를 맞이하러 갔다. 작가 사사에 히카리가 그녀의 앞에 등장하는 순간,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칠 년 전에 헤어졌지만, 칠 년 동안 떨쳐낼 수 없었던 그녀의 남자친구 준고였다. 사사에 히카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준고와 출판사 실장 홍, 그렇게 둘은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재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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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고는 대화를 원했고, 홍이는 대화를 피했다. 일로 엮인 준고와의 만남이 끝나자마자 홍이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고, 준고는 그런 그녀를 뒤따라 가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아직도 달리니?”

칠 년 만에 나누는 대화였다. 할 말이 많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홍이와 자신의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준고 사이에는 대화보다는 침묵의 시간이 더 많았다. 허무하고도 깊은 순간이었다.

준고가 서울에 온 후, 홍이는 또 달렸다. 마음속에 묻어 둔 칠 년 전의 베니가 나올 것만 같아서,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릿한 준고의 생각을 떨쳐낼 수 없을 것 같아서 홍이는 달렸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모든 길이 그에게로 가는 길 같아서, 달리고 또 달려도 그 끝엔 준고가 서 있을 것 같아서 계속 하염없이 같은 곳을 맴돌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준고라는 원에 갇힌 홍이의 바람이 현실이 되려는 듯, 준고는 자진해서 그 원으로 들어가 홍이를 기다렸다. 이젠 네가 달리는 이유를 알았다고, 네 외로움을 알았다고 말해주기 위해 달리는 그녀의 반대편으로 가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만났다. 일로 만난 것도, 잠깐 스친 것도, 멀리서 지켜보는 것도 아니라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달렸다.
 

계속 달렸기 때문에 그때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게 되었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넌 혼자서 달렸다는걸...
난 그때 너와 함께 달렸어야 했다.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준고


난 너와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은 달릴 수도 없었어.
달리면 네가 생각날까 봐.
그런데 달리지 않아도 생각이 나니까 괴로웠어.
그래서 하는 수없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지.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홍이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미련, 그리움, 아픔, 슬픔… 죄다 부정적인 것뿐이잖아?’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설렘, 두근거림, 편안함 등의 따뜻한 느낌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책 속의 주인공들은 우울했고, 답답했고, 불안해 보였다. 아마도 나는 사랑을 하는 중의 감정을 기대했고, 책은 사랑을 한 후의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책에도 사랑을 하는 홍이와 준고의 모습이 나온다. 그들은 글로만 읽어도 그들의 웃음이 상상이 갈 만큼 맑고, 밝고, 예쁘다. 풋풋한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도 생겨난다. 하지만 그렇게 예뻤던 그들이 헤어지고 칠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이 텅 빈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 공허함이 온전히 느껴져서 책이 더 우울하게 느껴졌다.

책 속에서 홍이의 친구 민준이가 홍이에게 ‘최홍, 나는 너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예전에도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라는 말을 하는데, 딱 내 심정과 같았다. 물론 홍이를 좋아하는 민준의 마음과 그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아주 똑같지는 않겠지만, 칠 년이나 지났음에도 그때를, 그 사람을 잊지 못한다는 게 답답했다. 또, 그렇게 애절하게 추억의 끈을 붙잡아 놓고 막상 재회의 순간에는 회피하려고만 하는 홍이의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고 그들 각자의 사랑의 방식이 존재하니 또 하나의 사랑의 형태를 배우는 거라고 생각을 하며, 마냥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감정을 찬찬히 살펴보며 읽으려 노력했다. 그러자 사랑 후에 오는 긍정적인 부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을 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팠던 기억보다 행복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는 사랑이 전해주는 다정함, 사랑이 남기고 간 따스함, 사랑을 통해 얻은 성숙함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이유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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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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