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본격적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 [도서]

글 입력 2020.04.28 00:5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본격적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


 

책은 딱딱하고 어쩐지 펼치기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또 귀여운 만화 캐릭터의 위로가 범람하는 책들 덕분에 에세이라면 어쩐지 거르게 되는 사람들에게 김혼비의 에세이를 추천한다.


정말이지 너무 재밌다. 물론 김혼비의 지칠 줄 모르는, 본인도 신나서 자꾸만 던지는 유머들 때문도 있지만 책이 담고 있는 화제가 좋다. 그런 점에선  과연 올해 읽은 책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다.


 

KakaoTalk_20200427_234514503.jpg

김혼비,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는 초개인주의자 김혼비의 팀 스포츠 입문기이다. 호나우두의 스텝 오버를 본 것을 시작으로 축구에 홀딱 빠진 김혼비는 열정적인 서칭을 통해 아마추어 여성 축구단에 입단하게 되고, 피치 위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하고 배꼽이 떨어질 만큼 웃기면서도 가슴 찡한 스포츠의 순간들을 맛본다.


스포츠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니 왜 축구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던 거지? 이렇게 대단하고 멋있는데.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여기엔 개인의 기호를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학창 시절부터 남자는 축구, 여자는 발야구 또는 피구로 나누어져 체육시간을 보냈고 그마저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여성들은 체육관 구석에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기 바빴다. 여성 학생들이 어떻게든 운동을 하지 않으려고 발악했던 것은 개인의 선택으로 보이지만 실은 사회적 차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성별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지는 선택이 과연 사회적 차별과 무관할 수 있을까?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 여성에게 조신함과 얌전함을 강요하는 편견이 없는 사회에서 자랐어도 우리의 관심과 적성이 정말 현재와 같았을까?


이 책을 읽은 나는 "아니요! 정말 달랐을 거예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재밌는데 내가 관심이 없었을 수가 없다. 피치 위의 하나의 공을 두고 모든 사람의 열정과 땀이 하나로 모이는 이 스포츠는 알면 알수록 벅차고 아름답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을 본능적으로 꺼렸던 초개인주의자 김혼비가 축구팀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뒷모습으로만 인식했던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고 진정 팀과 하나가 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 또한 따뜻하다.


스타일을 위해서 관리했던 머리는 우선순위가 축구로 변하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다. 경기 중에 성가시지 않도록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예전 같았으면 맥주병으로 내내 밀었을 법한 종아리의 알을 신기한 눈으로 몇 번이나 확인하고 대견해한다.


원래 내 취향이었는지 주입받았는지도 이제 분간이 가지 않는 과거의 기호들은 자연스레 없어지고 '축구를 잘하고 싶다'라는 열정이 김혼비의 몸과 마음을 바꾸어간다. 정세랑 작가의 말을 빌리면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사람은 이렇게나 아름다운 것이다.


축구에 하나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축구리그가 열리는 지도 몰랐고 게다가 그 시합을 전면 공짜로 관람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정말 무지했다. 축구팀의 고질적인 폭력적 체벌 아닌 체벌적인 폭력과 도무지 개인 생활이라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합숙생활들, 그리고 죽는 것만큼 아픈 재활 치료까지.


무지했던 내가 이 정보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니 굉장히 부끄러웠고 주어 없는 누군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속 축구를 해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렸다. 책의 제목처럼 아주 아름답고, 품격 있으며 고상하다. 아주 호쾌하다!

 


[곽성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