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끝없이 성찰했던 베토벤을 기리며 : 성경주 바이올린 리사이틀

글 입력 2020.04.27 22:0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전단앞.jpg

 

 

코로나로 인해 2020년 1분기에 수많은 공연들이 취소가 되었다. 2020년 4월 한 달만 놓고 보아도 예정되었던 공연은 수없이 많았으나 공연이 실제로 진행된 것은 거의 몇 되지 않는다. IBK챔버홀을 기준으로 했을 때, 2020년 4월 26일 일요일에 열린 성경주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4월의 첫 공연이라는 점을 본다면 이 사실이 누구에게든 피부로 와닿을 것이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난 끝에 만난 성경주 바이올린 리사이틀은, 그래서 더욱 관객으로서 기대감을 갖게 되는 무대였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이 되는 2020년의 4월에, 베토벤의 작품만으로 구성된 무대를, 정말 오랜만에 공연장에서 만난다는 점 때문에 예술의전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참 가벼웠다. 어쩌면 이 공연도 이전의 다른 공연들이 그랬듯 취소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공연일이 점점 임박하는데도 취소 안내가 별도로 나오지 않자 점점 기대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벌써 몇달 째 출퇴근을 제외하고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려 집에만 머물렀던 나에게 드디어 제대로 된 기분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입구에서부터 손을 소독하고, 음악당 쪽문이 아닌 정문으로 들어가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체온을 측정한 다음 티켓을 찾았다. 그 과정이 길게 느껴졌지만, 거진 네 달만에 찾은 예술의전당이 너무나 반가워 그 모든 게 다 기꺼웠다.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주와 앙상블 더 브릿지 멤버,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재원이 보여줄 이 무대를 감상할 수 있다면야 이 정도를 못할까, 하는 마음이었다.

 

 


 

 

PROGRAM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Sonata for Piano and Violin No. 5 in F Major, Op. 24 


Piano Trio in D Major Op. 70-1 “Ghost”


Intermission


String Quartet No. 11 in f minor, Op. 95 “Serioso”

 

 




이번 공연은 해설자로 음악저널의 예술감독 나성인을 무대에 세워 관객들에게 공연에 대한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해설이 있었던 여러 공연들 중에서도 굉장히 안정적이면서도 풍부한 해설을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은 무대였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해설자 나성인은 첫 곡을 하기에 앞서 코로나로 인해 기존에 우리가 뉴노멀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듣는 것이 정말 뜻깊은 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를 거쳐 나폴레옹의 왕정복고에 이르기까지 근대 유럽의 가장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생생하게 겪은 베토벤이 느꼈던 내면의 변화를 함께 짚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 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성경주 리사이틀의 첫 곡인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은, 누가 들어도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한다. 베토벤 그 자신이 붙인 부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봄"이라는 부제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만큼 생동감 넘치는 선율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이어 빈 고전주의를 잇겠다는 의지를 가진 젊은 베토벤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나타 형식에 충실하고, 전개 역시도 고전적인 데다가, 이 작품을 들어보면 하이든과 모차르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 안정감 넘치는 따뜻한 정서가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주와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손끝으로 만난 "봄" 역시 그랬다. 아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번 첫 곡은 봄을 봄답게 보내지 못하고, 코로나로 인해 기존의 노멀과는 다소 달랐던 몇 달을 보낸 관객들에게 보내는 인간적인 위로의 메시지였다.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터치가 너무 부드러웠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힘있고 명료한 소리가 났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봄"의 그 선율을 듣는 것만으로도 코로나로 인해 지쳤던 모든 피로감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은 피아노 3중주 "유령"이었다. 베토벤이 붙인 것은 아니지만 다소 스산한 부제가 붙어있는 걸 보면,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이어도 곡의 분위기가 다르리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곡의 분위기나 전개가 "봄"과는 매우 다르다. 곡이 연주되기에 앞서, 해설자 나성인은 바로 이 작품이 작곡되던 시기부터 베토벤의 내면 세계가 이전과는 또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우선 베토벤 스스로가 청각장애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 있겠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 국한된다. 보다 더 큰 틀에서 베토벤을 흔들었던 것은 프랑스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비단 구국적 영웅이 아니라 본인이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면서 일어난 세계관의 변화였다.


프랑스혁명을 이끌었던 자유와 평등 사상이 다시금 왕정복고라는 가치 앞에서 짓밟히고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베토벤은 기존에 음악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하여 이를 성찰하는 음악적 시도를 시작했다. 그래서 "유령"에서는 기존 고전주의 음악보다는 추후에 이어질 낭만주의에서 볼 법한 분위기와 효과가 강조된 2악장이 도드라진다. 이것은 기존 양식을 철저히 재성찰함으로써 나온 고뇌의 결과물인 것이다. 2악장 때문에 "유령"이라는 부제가 붙었지만, 사실 1악장에서부터 미리 예고를 던지는 듯한 것을 해설자가 미리 짚어주었다. 실제로 서주에서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가 총주로 시작하지만 그 사이에서 첼로가 혼자 약간 어긋나는 듯 튀는 음을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1악장과 3악장 사이에서 굉장히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2악장이 끼어있다는 것을 암시하듯이.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주와 첼리스트 장우리 그리고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연주로 만난 "유령"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2악장은 아주 치밀했다. 김재원의 손끝에서 나오는 트레몰로는 스산한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그 사이를 오가는 성경주와 장우리의 현악 소리는 신비하면서도 불안한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이 악장을 두고 <맥베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문구가 프로그램 북에 적혀 있었는데, 정말 그 비극적인 광기가 느껴지는 듯 아주 치열한 연주를 볼 수 있었다.


*


인터미션 직후 만나는 마지막 프로그램은 이번 성경주 리사이틀에서 유일하게 현악으로만 구성된 선곡이었다. 바로 현악4중주 11번 "세리오소"다. 그리고 이는 이름만큼이나 매우 진지한 고민을 담은 베토벤의 모습을 다시금 재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해설자 나성인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폴레옹의 왕정복고로 인해 과거에 옳다고 믿었던 가치들이 무너지고 구시대적인 것들이 다시금 뉴노멀이 되는 상황에서 베토벤은 과거의 것들이 과연 최선이었고 옳은 것이었나를 탐구했던 것이 맞는 듯하다. "세리오소"에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깨부수고 바꾸어 보는 노력들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작품들과는 달리, "세리오소"는 1악장이 매우 짧다. 1악장이 짧은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소나타 형식이 주제를 발전시키려면 분명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1악장이 이토록 짧다는 것은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주제를 발전시켜 나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어 2악장은 푸가가 등장한다. 보통 2악장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노래 악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절대 다수인데, 푸가가 그것도 두 개나 들어가있다. 이 역시도 고전을 탈피하려는 베토벤의 노력 중 하나인 것이다. 이어서 3악장은 통상적으로 스케르초가 나오는 대목인데, 여기서 세리오소를 지시하며 굉장히 진지하고 비장한 전개를 보인다. 그 끝에서 맞이한 4악장 역시 보통이 아니다. 라르게토로 시작하여 알레그레토로 넘어갔다가, 마지막에 마치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음악구를 붙여놓은 것처럼 급격한 상승을 하다가 마무리가 되기 때문이다.


공연장에서 실제 연주를 듣기 전, 혼자서 "세리오소"를 들으며 나름대로 이해의 폭을 넓히려 노력할 때에도 이 작품이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해설자 나성인의 부연까지 듣고 나니 역시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을 만든 베토벤이 정말 놀랍게 느껴졌다. 이 작품을 작곡한 시기가 교향곡으로 따지면 9번을 제외하고 이미 모든 교향곡이 나온 시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베토벤은 이룰 만한 것들을 이미 다 이룬 경지에 오른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그가 굳이 이렇게까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모험을 해보고 할 이유가 있었을까? 권태로움 속에서 작곡해도 반 이상 먹고 들어갔을 그인데도, 절대 안주하지 않고 다시금 자신을 성찰해가며 또다른 무언가, 더 다른 무언가를 찾아나섰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인지, 이번 성경주 리사이틀의 프로그램 중에서도 "세리오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주를 위시한 앙상블 더 브릿지 단원들이 함께 합을 맞추며 베토벤의 진지하고도 실험적인 면모를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었다. 과연 이것이 뉴노멀인가. 이에 대하여 베토벤이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끝없는 성찰이야말로 과거와는 다른 또 다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주, 바이올리니스트 문지원, 비올리스트 이신규 그리고 첼리스트 장우리의 연주는 그 진지하고도 엄숙한 작품 속에 녹아있는 베토벤의 내면을 우리 모두에게 투영시키는 듯했다.

 

 

curtaincall.jpg

 

 

앙상블 더 브릿지와 함께 하는 성경주 바이올린 리사이틀은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은 이 기쁜 해에, 베토벤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음악회를, 올해 처음으로 다녀온 자리였다. 코로나로 인해 거의 모든 음악회들이 취소되면서 갈증을 해소할 길 없이 그저 실내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버텨왔던 관객들에게 해갈의 기쁨을 전해주는 아주 뜻깊은 무대였다. 올해 봄을 진정한 봄답게 만들어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가 기존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될 이 과도기를 살아가는 시점에서, 유럽 근대사의 과도기를 아주 몸으로 느끼고 체감했던 베토벤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무대를 만난 것은 더욱 더 뜻깊었다. 그저 봄의 정취를 느낀다는 감상에서만 그치기엔, 성경주 바이올린 리사이틀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훨씬 더 크고 장대했다. 그래서 음악당을 나서는 마음이 더욱 충만했다.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거나 지치거나 하지 말고, 이후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시도해보고 노력해야겠다는 의지가 가득해졌다.


성경주 바이올린 리사이틀은 이토록 풍성한 자리였다. 처음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부터 베토벤의 내면을 짚어갈 이 무대가 기대됐는데, 해설과 함께 들으니 생각지도 못했던 더 큰 그림들이 있어서 더욱 즐겁게 무대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앙상블 더 브릿지의 예술감독으로서도 활동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성경주이기 때문에 이토록 의미있는 무대를 꾸밀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에 성경주, 그리고 앙상블 더 브릿지가 보여줄 수많은 무대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석미화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89187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