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난간 앞의 사람들 : 사냥의 시간 [영화]

글 입력 2020.04.26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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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만난 ‘사냥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이나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사냥의 시간’은 마치 해외배송 택배처럼 들뜬 마음으로 오랜 기간 기다렸고, 마침내 들려온 소식인 <‘넷플릭스’에서 개봉>은 이 영화를 미친 듯이 기다렸던 사람에게는 그저 희망이었다. (물론 이 가운데에도 많은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더불어 세계 거대 OTT 서비스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기에, 그들의 안목에 영화적 수준의 평가도 이미 검열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마침내 뜯어본 상자는 내가 주문한 상품이 아닌 다른 상품이 놓여있었다. 소년의 방황 그 언저리에서 같이 방황하던 감독이 아니었다. 핏빛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그저 그 피만을 보여주는 감독이 나온 것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줄거리는 희망이 없는 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을 그린다. 준석(이제훈)은 감독에서 출소하고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 그리고 상수(박정민)와 함께 도박장을 털기로 한다. 그러면서 정체불명의 추격자가 나타나 그들의 목숨을 노리며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스릴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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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흔들리는 사회에 흔들리는 소년을 다시 배치한다. 그 결과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4명의 배우 이제훈, 박정민, 안재홍, 최우식을 모두 캐스팅하게 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4명의 조합이 얼마나 신선한지 알 것이다. 아마 독립 영화에서는 각각의 주연 작품이 있는 믿고 보는 배우라고도 감히 칭할 수 있는 수준의 배우들이다. 그런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여 오직 윤성현 감독의 작품이기에 촬영에 기꺼이 임했다.


- 영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전에 영화 ‘파수꾼’에 대해서 작성한 바 있다. 영화 ‘파수꾼’은 윤성현 감독의 작품이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흔들리는 소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오랜 기간 영화 소식이 없던 그였다. ‘파수꾼’에서 흔들리는 소년들이 불쌍하고, 도와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3명의 남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그의 작품은 영화적으로 큰 평가를 받았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바로 그 차기작인 ‘사냥의 시간’이 막대한 지원금을 받고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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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 서로가 서로에게 욕을 하면서 물건을 사는 장호와 기훈의 모습을 담았다. 굳이 말로 이 사회는 몇 년도이며 사회는 암울해졌다고 명시하지 않지만, 그저 카메라를 돌려서 그 공간을 담는 것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미래 사회를 그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간과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실 속의 이야기, 영화의 발화 시점이 ‘현재’인 경우, 이야기의 재건축 과정이 필요 없다. 그들의 이야기만 다루면 된다. 과거를 담는 경우 사건, 시대적인 분위기, 의상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를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미래 사회를 통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두 번의 당위성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왜 미래 사회를 그려야 했는가. 두 번째는 미래 사회를 다시 현실 사회로 가지고 와서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가. 고작 두 개의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간단하더라도 이 두 개의 질문이 완성되어야 이야기가 ‘시작’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또한 첫 번째의 질문은 두 번째의 선행 조건이다. 애석하게도 이 영화는 첫 질문부터 시원한 답변을 주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 미래 사회는 불안정하고 어두우며 사회는 질서와 규제라는 것이 무너졌지만 사회의 통제는 더욱 강해진 사회를 묘사하고 있다. 총과 마약이 판을 치는 세상이고, 더 이상의 한국 돈의 가치는 의미가 없다. 달러만이 사회의 중요 자본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 4명이 도박장을 타깃으로 삼은 이유도 ‘총, 달러, 도박’으로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WHY’라는 말에는 답변하지 못한다.


총, 도박, 달러는 이미 현재의 사회에도 존재한다. 그들이 총을 산 것도 미래 사회여서 이미 그런 것들이 널리 퍼져있다고 해도 비밀스럽게 구매한다. 현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미래 사회를 불러온 것은 그저 한국 사회의 불안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면 그와 대조되어 시골, 대만 등의 곳은 평화로운 곳으로 묘사를 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왜 한국의 서울만이 그런 어두움이 노출되었냐는 것이다. 이 WHY라는 의문점은 해소하지 않고 그저 이들의 범죄의 당위성만을 서술한다.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이 완벽해야 건넬 수 있는 질문이지만, 굳이 이 작품에 그 질문을 해보고자 한다. 미래 사회로부터 다시 현실 사회로 돌아와서 이 작품이 뭔 말을 하려는 것인가. 아무 대답을 찾을 수 없었던 관객인 나는. 그저 윤성현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던 이로써 감독과의 의리를 다하기 위해 132분이란 시간을 끝내 보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 다시 이 영화에게 수십 개의 질문을 던지고 싶어진다. 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 애초에 영화의 당위성조차 무너진 영화에 애써 작품에 대한 이해와 긍정을 표현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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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파수꾼’과는 철저하게 대척점에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무채색에서 강렬한 색상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소년들에서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되는 청년으로, 핸드헬드 기법에서 그들의 정면을 바라보는 카메라 무빙으로, 우정의 파괴성에서 우정의 단합으로. 모든 측면에서 자신의 기존 작품에서 모두 엇나갔다.


하지만 한 가지 동일한 것은 난간 앞에 놓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파트 난간 앞에서 서서 하늘을 본 이는 결국, 감독이었다. 그는 영화 ‘파수꾼’에선 흑색으로 하늘을 연출했지만, 이번에는 빨간색으로 하늘을 그린다. 다음 세 번째 작품에서는 그가 흑색의 사람인지 빨간색의 사람인지 분명한 답이 나오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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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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