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강명재

글 입력 2020.04.25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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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그림이다. 나는 어떻게 살았나. 아무리 현생을 내려 놓았어도/ 집중을 하고 있었어도 그림은 놓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이렇게 오랜만에 하게 되니 얼떨떨했다. 그리고 마침 오랜만에 보는 친구를 그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마음 대로 그린다. 예전에는 '첫인상'으로 칭했으나, 그리다보니까 일반적인 첫인상과는 의미가 달랐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인 첫인상은 상대에 대한 첫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그리는 첫인상 그림은 '탐색'에 가깝다. 상대가 어떤 색을 가지고 있고, 어떤 선과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 파악하기 위해 첫 그림을 그린다. 처음에 다양한 색을 사용하면서, 상대의 색을 알아간다.

 

앞머리 남색을 기준으로 그리면서, 초록색 코와 눈을 그렸다. 노란색 볼을 칠하고 파란 옷깃을 그렸다. 사실은 베이지색을 입고 왔지만. 머리카락을 칠하고 하늘색 배경을 칠했다. 혼돈의 그림이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화이트를 덮었다. 강조할 부분을 더 추가했다. 머리에도 조금씩 칠하고 뒤에도 했다. 옷도 포인트를 주었다. 이제야 좀 마음에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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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어떤 것 같아?"

 

"난 내가 담백해서 한 두가지 색일 줄만 알았는데, 그림 보니까 굉장히 많이 색이 다양하네. 생각보다 색이 더 다양해. 꽃인 줄 알았어. 여기 파란색은 뿌리고, 위에는 꽃잎 이렇게."

 

"네 말 듣고 보니까 그렇게 보일 수 있겠다."


*


"난 예전에 간호사나 복지사가 꿈이었어. 남을 도와주는 일이 나는 너무 좋거든.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봉사활동을 대학생 때까지 6-7년 이상은 꾸준히 한 것 같아. 왜 좋냐고? 모르겠어. 그냥 나한테 잘 맞아. 그냥 좋아. 아프신 분들 말 상대 해드리고 도와주는 일이 나는 너무 편했어. 사주에서는 내가 희생하는 사주라고 해서 그런가. (웃음) 지금은 공기업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지금 안정적으로 지내고 나서, 나중에 복지 재단을 세울 거야. 너도 나중에 게이트볼 치러 와."

 

"아 멘트 너무 좋아. 게이트볼 치러 오라니. 기다려봐 네 말을 다 메모해야겠어. 네 얘기 재밌어. 더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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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직장 30년이 꿈이야. 그래서 내가 정한 마지노선이 서른이야. 서른 전까지는 원하는 것을 이것 저것 해도, 서른에는 남은 반평생 30년 있을 직장에 있어야지. 그래서 준비하고 있어. 나에게 맞는 곳을. 정년퇴직 시기를 생각하면 30살 까지야."

 

"세상에, 30년 직장에 다닐 생각을 나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정말 신기하다. 대체 왜???"

"한 직장에 30년 동안 있으면 전문가가 되잖아. 예체능인 너와 달리 문과는 누구나 뭐든 할 수가 있거든. 대신 상황이 곧 경력이 되니까.  그리고 오래 일해서 나중에 어느 정도 위치로 올라가게 되면 학연,지연 등이 많이 쌓이잖아? 그걸 바탕으로 복지 재단을 만들 거야. 투자자 입장으로도 되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의 속 얘기를 들으면서 그렸다. 두번째는 확실히 알겠다. 노란색, 하늘색인 친구다. 노란색 얼굴과 연주황색 이마, 그리고 하늘색 등 은은한 색깔들로 머리를 칠했다. 콩테로 눈을 표현하고, 안경은 그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파란색으로 그렸다. 처음에 다양한 색으로 그려보니, 이 친구 색을 확실히 알겠다. 너는 노란색, 하늘색이야.


*


"자신있는 신체 부위, 혹은 자신없는 신체 부위, 그려줬으면 하는 부위 등 생각 나는 것 있어?"

 

"음, 난 그럼- 눈, 코, 입, 귀 등 내 이목구비를 뺴고 그려줘. 우리는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잖아. 원하는 것만 골라서. 우리는 필터링을 스스로 하는데, 그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다 빼고 그리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 필터를 빼면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장점이자 단점을 빼면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잖아."

 

"누가 문과 아니랄까봐, 시 좋아하는 사람 아니랄까봐 정말 감성적이야. 이것도 적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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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릴지 한참을 바라봤다. 네거티브 드로잉을 해야하는데, 뒤에 어떤 부분을 그릴지 고민을 하다가 화구를 들었다. 카페 야외 테라스에 앉았는데 뒤에 화분이 예쁘게 쌓여있었다. 그래서 화분을 그렸다. 작고 많은 화분들, 꽃들, 식물들. 형태가 너무 뚜렷해서 그리다가 다른 색으로 뭉갰다. 화분의 흔적만 남았다. 아래에서 올라가는 화분들도, 위에서 내려오는 식물들도 그렸다. 그리고 실루엣은 콩테로 조금 덮었다. 이 정도 여백이면 괜찮아. 싸인을 하고 마무리했다.


"그림 놀랍네. 여기서 끝나다니. 나는 이목구비만 빼달라고 말했는데, 내가 여기서 아예 사라질 줄이야. 생각도 못했어. 내가 없는 모습이라니, 주위를 돌아보게 만드네. 내 주위는 어떤지 내가 어떻게 했는지 등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너는 너무 따스한 사람이야. 날씨도 좋고, 평온한 가운데 수다를 떨며 그림을 그렸다. 물론 그림 세 개를 그리니 지쳐서 뻗었지만. 지쳐서 테이블에 좀 엎드려서 쉬었다. 너는 쓰고 싶은 시와 비슷한 시집을 보고 나는 그림 그리고 뻗어서 엎드려있고.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또 사람만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와 한 대화가 너무 주옥같아서 전부 다 남기고 싶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남길 수 있는 최선이야. 아쉽게도. 몇 년 만에 본 건지, 또 앞으로 얼마나 지난 후에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응원할게.


"나는 앞으로 뭘 할지 모르겠어."

 

내가 고민을 토로하자 너는 말했다.

 

"내가 이거 하나 말해줄게. 취업준비할 때 사기업 45개를 냈는데 10개만 서류 합격을 하고, 최종 합격은 단 한 군데밖에 되지 않았어. 그리고 공기업은 90개를 냈는데 딱 한 개만 최종합격을 했지. 이것만 기억했으면 해."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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