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상력을 자극하는 세계,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글 입력 2020.04.22 03: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5.jpg

 

 

2019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자 76명의 작품 300여 점을 전시해 놓았다. 이 일러스트 전은 1967년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에서 매년 개최되어 2019년에 53회째를 맞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세계 80여 개국에서 3천여 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이 전시에 도전한다. 선정된 작품들의 전시는 감각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 일러스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로 유명하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신진 일러스트레이터가 재능을 알릴 발판이지만, 동시에 볼로냐 아동 도서전(BCBF)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아동 도서, 삽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고양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17.jpg

 

 

첫 번째 섹션은 '1.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다. 개최 도시 볼로냐에 대한 소개와, 2019 원화 전시가 방문한 국가들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한국-중국 순으로 순회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볼로냐 소시지로만 알고 있던 도시가 생각보다 흥미로운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회랑을 간직한 도시, 레지스탕스와 기름진 음식의 도시, 또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볼로냐 대학'이 볼로냐에 있으며, 그 곳에서 단테, 에라스무스, 모차르트, 움베르트 에코가 학문을 닦았다는 걸 알고 그 도시에 가보고 싶어졌다.


이어 2018 원화전 우승자 벤디 베르니치Vendi Vernic의 책과 원화 작품을 볼 수 있다. 녹색 배경이 돋보이는 일러스트는 동화의 알록달록한 분위기를 상상하게 한다.


 

18.jpg

 

 

두 번째 섹션은 '옛날 옛적에' 이다. 동화, 신화 등 옛날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각국에서 독특한 상상력과 재료를 바탕으로 한 그림들을 볼 수 있다.


한국 작가로 차영경 작가의 작품이 있다. <아주아주 멋진 하얀 공주>로 백설공주 이야기를 조형적으로 재구성했다. 국가나 문화에 따라 작품별 분위기가 달라지는 걸 관람하는 재미가 있다.


나는 국가들 사이에 구분가는 색감이나 소재 등의 공통점이 있는지 궁금해서 주의깊게 보았는데, 오히려 이 원화전의 작품들이 다 각자만의 개성을 품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각 섹션에서는 심사위원과의 인터뷰를 벽면에 소개해 놓았다.


그 글을 읽으면 일러스트라는 예술과 수상작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 선정 기준은 무엇인지, 좋은 일러스트레이터의 자질이란 무엇인지 짧지만 인상 깊다.



"(중요한 자질은) 이미지가 보는 이를 자극하여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게 하는지 등입니다. 또,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키는 능력, 독특한 스타일,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자유로움을 봅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유머를 담고 있냐는 것입니다. 기술도 소중한 자질이지만, 표현과 상상력이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Jan_Bajtlik.jpg

<아리아드네의 실, 신화와 미로> Jan Bajtlik , 폴란드

 

 

다음 섹션은 '상상, 익숙한 듯 낯선'이다. 신화같이 고전적인 서사에서 벗어난 초자연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초현실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색조가 어두운 작품도 많이 보인다.


언제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외계인처럼 묘사한 <외계 국가>, 달에 가는 강아지 <알 수 없는 것에 용감하게 도전하세요>, 책 읽어주는 토끼 <무제> 등을 보며 아이들이 알록달록한 세상 말고도, 검고 조용한 세상 역시 그들만의 상상력으로 꿈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심사위원은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특정 주제를 배제하는 건 옳지 않으며, 아이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더 넓은 세상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게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13.jpg

 

 

아이들을 위한 일러스트인 만큼 동식물을 주제 삼은 작품이 상당히 많다. 이 두 주제를 나눠 동물을 다룬 '작은 친구들' 섹션과 자연을 소재로 한 '자연의 친구들' 섹션으로 나누었다.


'작은 친구들'에선 유명한 마에다 요시키의 <각도 안에 숨겨진 물고기>작품을 볼 수 있다. 삼각형을 물고기와 고양이로 풀어낸 상상이 귀엽고 참신했다. '자연의 친구들'에서는 무초 마나카의 <산>이란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원전 사고로 오염된 자연을 그리면서, 자연의 고통보다는 분노에 초점을 맞추었다. 산, 바다는 불같이 화를 내고 있다.


이번 원화전에서 감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경각심의 의미를 품고 있던 이 작품이 인상 깊었다. 심사 위원들은 자연, 동식물이란 주제는 최근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많은 젊은 작가들이 이 주제에 끌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 모방이 아닌, 자연을 탐구하고 깊이 보려는 노력이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필요하다고도 답했다.


 

20.jpg

 

 

마지막 섹션은 '우리 곁에 숨은 이야기'이다. 이 섹션의 작품들은 사람과, 일상의 모습들을 주로 다뤘다. 여기서 인물들은 대부분 작게 그려진다. 일상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싶다.


안드레 레트리아의 <전쟁>처럼 전쟁의 고통을 잔인함 없이 그려낸 작품도 있고, 가족과의 한 때를 그린 작품도 있다. 이 섹션에 오면 신화적 이야기에서 출발한 동화가 결국 우리 삶과 밀접한 순간들을 그려내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 흐름이 느껴진다.


동시에 이 섹션에선 라가치 상 작품들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라가치상'은 각국 아동 도서의 예술적 디자인, 교육적 가치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다. 한국 작가의 책도 꽤 있어 천천히 읽어보기 좋다. 의자도 있는 만큼 아이들과 함께 온 사람들은 그림책을 읽어주며 전시를 즐기기도 한다.

 

마지막 섹션의 심사위원 인터뷰는 독창성에 관한 것이다. 독창성은 필수적일까? 그러다 자기 표절에 빠질 수도 있지 않나? 창작을 하는 많은 이들이 고민할 법한 질문이라 심사위원의 답을 옮겨 적어 놓고 싶다.



개성이란 단순히 말해서 특정한 스타일보다 더 나아간 것입니다. 나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중요한 것은 사물을 보는 개별적인 방식과독립적인 개인적 판단, 자신의 길을 찾는 능력, 또한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까지 해온 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


어떤 이들은 자신의 기술과 스타일을 주어진 프로젝트의 요건에 맞추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곤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의 강렬한 스타일을 개발한 뒤, 어떤 프로젝트도 철저히 개인적인 창작물로 변형해 나가기도 합니다. 두 방법 모두 괜찮겠지만, 나는 반복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예술가의 능력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창의적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전시는 한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아, 이렇게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관람하는 건 드문 경험이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지금 이들이 주목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시대성이 무엇일지 등을 관찰하며 동시대와 연결된 듯한 느낌을 갖는 건 중요한 일이다.


물론 훔쳐가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일러스트들을 보는 재미도 아주 크다. 그리고 아이들. 내가 마지막 섹션을 관람하는 동안, 뒤에서는 아이에게 천천히 그림책 읽어주는 소리가 들렸다. 일상에서 아이도 그림책도 쉽게 접하지 않는 세상이라 그 낮은 소리가 반갑고 좋았다.


이번 볼로냐 원화전은 아이도 어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한때 누군가가 읽어준 그림책으로 세상을 알았을 작가들이, 자라서 자신이 본 세상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겠지.


다시 한번 아이가 된다면 절대 어른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하는 시시한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왔다. 스탬프 종이와 엽서를 들고. 전시장에 곳곳에 있는 스탬프를 찍어 가면 선물로 엽서를 준다. 아이들은 별로 안 하고 어른들이 신나게 한다. 나처럼. 다들 동심은 여전한데 덩치만 커져버린 사람들일테지.

 

 

[김나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