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시대의 사랑 [도서]

글 입력 2020.04.2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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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사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장애인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다.


소수자를 향한 사려 깊은 논의가 오가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장애인의 성과 사랑은 ‘암흑의 나라’에 갇혀있다. 성적 파트너를 만나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가정을 이루는 재생산권은 장애인에게 보장되지 않는다.


먹고 자는 것만 잘 하면 됐지, 뭘 더 바라냐는 말은 장애인의 삶을 생존으로 축소한다. 저자 천자오루는 용기 있는 자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무지가 만든 추문에 도전한다. 책은 이 주제에 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다뤘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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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천자오루 2020

 


2부와 3부에서는 욕망에 눈 뜬 이들과 그를 돌보는 보호자를 볼 수 있다. (나는 돌보는 이들에게 조금 더 이입해서 읽었다.)


희소 유전성 질환을 앓는 ‘위위’와 그를 힘껏 돌보는 엄마 ‘황리야’. 위위를 돌보며 황리야가 다다른 내적 성장과 별개로 그는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독박에 처해 있다. 또 임신한 지적 장애인 딸 ‘도라’를 낙태시키고 피임 기구를 삽입하는 장면은 24시간 돌봄 노동자인 보호자가 처한 현실을 명징히 보게 한다. 도라가 출산을 강행한다면 아이의 양육 역시 대부분 부모가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출산과 양육의 자유는 도라의 권리기도 하다. 부모의 선택을 지지하는 보호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캉차오의 집’ 사건은 비장애인 중심 법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증거재판주의를 채택한 법정에서 표현능력에 한계가 있는 지적 장애인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어떻게 입증해야 하는가? 또 명백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 장애인이 폭행에 대해 ‘기분이 좋았다’고 말한다면 폭력이 성립되지 않는 걸까?


구어 표현 능력과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지적 장애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어떻게 보장되고 보호되어야 하는가. 섹스가 너무 쉽게 폭력이 되는 사회에서 ‘여성’이자 ‘장애인’인 그들을 보호해 줄 법과 언어, 의식은 현저히 부족하다.


책에서 가장 논쟁일 될 사안은 장애인 성서비스일 것이다. 어떤 주제든 젠더를 논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동남아계 외국인 여성을 ‘구매’하여 배우자로 맞이하는 남성 장애인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 ‘화이트핸즈’, ‘손천사’와 같은 장애인을 위한 성서비스 구입자 대부분이 남성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폭력적이다. 일부 장애인의 권리 추구가 그대로 여성에게 폭력이 되는 교차로 위에서 우리는 모두의 자유와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이 책의 대만판 원제는 ‘암흑의 나라’. 한국어로 출간되면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는 이름으로, 노란 옷을 입고 나왔다. 이야기를 꺼내 읽으니 명쾌함 보다 복잡함이, 해소되지 않는 질문이 밀려온다. 모른 채 해맑게 있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낫겠지.


서문에서 김원영 변호사가 그랬듯 이 책의 모든 내용에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질문 앞에서 확고한 내 생각이 나의 편협함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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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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