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즐거워진 비극이 전하는 것 [공연예술]

연극 리어외전이 전하는 메시지
글 입력 2020.04.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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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외전’은 고선웅 연출가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각색하여 새롭게 연출한 연극이다. 각색하는 과정에서 오락적이고 통속극적인 요소를 반영하여 만든 작품이다. 연극을 보면서 ‘리어외전’만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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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띈 것은 오락적 요소였다. 특히 연극을 감상하면서 연출가가 이전에 연출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과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비극적 요소를 웃음으로 승화하는 태도이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는 극중 허무하게 웃는 웃음으로 비극적 정서를 승화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승화는 리어외전에서 오락적 요소가 맡게 된다. 노래, 춤, 재치 있는 대사로 나타나는 오락적 요소는 연극의 흐름 속 곳곳에서 등장하는 환희의 송가처럼 비극적 세계의 어두운 우울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나게 하지만 오히려 비극의 정서를 심화한다.

 

오락적 요소 외에도 리어외전의 특징은 오락적 요소와 대비되는 내용을 받쳐주는 소재들이다. 각색된 내용을 다 주워섬기기에는 지면이 모자라지만 그 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소제 두 가지를 꼽고자 한다. 바로 하얀 거북이와 총이다.


 

“왜 두 눈 가운데 코가 있는지 알아? 보지만 말고 냄새를 맡으라는 거야. 왜 거북이가 등껍질이 있는지 알아? 머리를 집어넣기 위해서야. 그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하얀 거북이의 흰색은 노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백발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고 거북이는 장수하는 동물의 대명사이다. 이것이 노인의 지혜를 상징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하얀 거북이는 초연하게 비극적 정서가 담긴 대사를 읊는다. 모두 중요한 장면에서 읊는 대사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가족 관계의 좌충우돌을 꿰뚫는다.

 

총은 단죄의 수단이다. 극중 자식 세대는 부모의 정을 잊었을 뿐 아니라 외도를 저지르고 아버지를 밀고하면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 도리를 내팽개친다. 이에 리어왕은 낳아 기른 아버지의 이름으로, 또 인생을 먼저 산 사람의 입장에서 죗값을 치르게 한다. 그 수단인 총은 인생의 지헤, 관록이 쌓인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지혜로 볼 수 있다. 옛날에 상이군인이었던 노인 수용소의 왕 왕고가 평생에 걸쳐 만든 것이 총이었다. 그 총은 손으로 총 모양을 한 채 들어 보이는 것일 뿐이었는데 그곳에 오게 된 리어왕은 진짜 총을 갖게 된다. 왕고는 리어왕에게 수용소의 왕 자리를 넘겨주고 리어왕은 노인들을 이끌고 자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간다.

 

리어외전의 특징들은 극의 서사에 스며들어 비극적 면모를 부각시킨다. 리어왕이 쫓겨난 후 하얀 거북이를 기르고 총을 잡게 된 것은 쫓겨날 필요가 없는 자식 세대가 가진 시력 좋은 눈과 대치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었다. 리어왕의 자식들과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는 젊다. 아직 감각기관이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리어왕은 이에 대항하여 거북이가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듯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북의 등껍질과 같은 것을 마련한 것이다.


리어왕은 노화를 얻는 대신 하얀 거북이와 총을 갖게 된다. 그들은 젊어서 좋은 시력은 가졌어도 리어왕이 돌아오자 눈이 침침해지는데 이는 리어왕의 단죄를 그들의 어리석음과 대조시킨 것이다. 리어왕의 침침한 눈은 노화로부터, 글로스터 백작의 잃어버린 눈은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자식세대의 침침한 눈은 어리석음으로부터 생겨났다.

 

리어왕의 슬픈 인생은 리어왕의 것만이 아니라 수용소의 노인 전부에게도 해당하는 공통점이었다. 세대교체와 노인에 대한 문제의식은 요양원을 연상시키는 안개섬 장면에서, 그리고 안개섬에서 돌아온 리어왕이 자식들을 단죄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제 자리를 찾을 수 없어 요양원으로 보내지는 모습은 오늘날의 세대교체와 노인 문제를 연상시킨다. 하얀 거북이와 총은 오늘날의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빠진 것들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사실 노인은 근본을 저버린 자식세대를 단죄할 자격과 지혜를 가졌을 수도 있는데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리어왕과 글로스터 백작이 다른 방법으로 자식들을 단죄할 수는 없었을까? 총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수는 없었을까? 그들의 단죄가 옳은 방식이었는지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다.  부모 세대가 자식세대를 죽음으로써 단죄하고 자신도 죽는 것은 인생의 허무를 보여주는 비극의 극대화인 듯하다.


 

“술래잡기 노래가 끝나고 멍청하게 앉아 생각해보니 울 일도 노래할 일도 아니었네.”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비극적으로 형식화하여 보여주는 이 대사는 과연 허무한 인생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비극이 시작되면 그 어떤 대사도 마지막의 허무함을 예고하지 못할 수 있다. 삶이 그 지경까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극은 한발 앞서 경고해준다. '리어왕’의 비극이 탐욕에 빠진 삶의 결과를 자식들끼리 죽고 죽이는 장면으로 보여준다면 리어외전의 비극은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때 어느 세대든 하얀 거북이와 총을 떠올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어디에도 하얀 거북이의 조언과 총성이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리어외전은 그 세대가 어떤 세대를 의미하든 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혹독하게 바라보는 순간 바로 비극이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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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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