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순수함을 간직한 어른들 - '정크, 클라운'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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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배우를 꿈꿨던 적이 있다. 두 곳의 연기 학원을 다니면서 연기, 보컬, 움직임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움직임’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었다. ‘무용’ 수업이 아닌 ‘움직임’ 수업인 이유는, 연기하는 데 있어서 굳이 짜여진 안무가 아니더라도 움직임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대사가 뒷받침된 극에서조차도 움직임이 중요한 만큼, ‘정크, 클라운’과 같은 넌버벌 극에서 말없이 움직임만으로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기를 배울 때 무언극 공연 준비도 해보면서 느낀 점이다. 막연히 과장된 행동만 하면 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관찰과 분석이 필요한 작업이다.
연기를 배울 때 나는 대본연기 시간은 좋아했지만, 주어진 사물이나 상황에 맞춰 짧은 시간 내에 장면을 만들어내야 하는 즉흥연기 시간은 정말 싫어했다. 정해진 대사가 없는 연기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크, 클라운’을 보며 연기를 배웠던 때와 함께 더 어릴 적 시절이 생각났다. 이것저것 자연스럽게 흉내 내고, 연기하고, 상상하던 나의 어린 날이. 내가 즉흥연기를 했을 때, 나의 어릴 적 모습을 좀 더 간직하고 있었다면 그 시간이 그렇게 두렵지 않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아이는 왜 그렇게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던 걸까.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은 더욱 상상이라는 걸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다. 주변에 몽상가 같은 친구들도 많은데, 나는 상상이라 해봤자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적인 상상을 주로 한다. ‘정크, 클라운’을 통해 어렸을 때처럼 자유롭게 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 휴식을 주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어른들도 가끔 어린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져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른으로서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해내는 것도 멋있는 일이지만, 꿈꾸고 상상하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이 ‘사회에서 소모되고 있는 어른’으로 느껴질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찢어진 우산을 들고 서 있지만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던 네 명의 광대가 생각난다. 나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으면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비를 맞으며 달려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투덜대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비를 맞으며 친구들과 달려가도 이상하지 않은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정크, 클라운’은 나에게 진한 향수를 전해주었다. 네 명의 광대들과 함께 동심으로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송진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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