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00만엔이 모이면 떠나요 : 백만엔걸 스즈코 [영화]

어떠한 이유에서이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영화
글 입력 2020.04.1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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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삶이 꼬이는 그 순간을 마주할 때가 찾아온다. 그 정도가 얼마던 간에 이는 우리의 삶에 무기력감을 선사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싶다거나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는 순간의 착오로 전과자가 된 여성이 출소 후 100만엔이 모이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야기이다. 독특한 설정에 일본 영화계에서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높은 기대감을 샀던 영화이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꼬인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100만엔이 모이면 자신을 모르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는 스즈코.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의 그녀의 성실한 하루들.



 

실수로 꼬여버린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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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로 갈 거야."


 

사람의 인생이란 의도치 않게 흘러가기에 선 듯 예측할 수 없다. 전문대를 나왔지만 취업은 쉽지 않고 집안에 생활비를 내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스즈코는 친구의 같이 살자는 제안에 혹하게 된다. 여러 공인중개사를 돌아다니며 독립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지만 자신의 남자 친구와 셋이 사는 거라고 말을 바꿔버리는 친구로 인해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든다.


이 같은 감정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하는 복선이었지만 스즈코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삿날, 어쩐지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불안한 예감은 적중한다. 친구 커플이 헤어져 그 남자 친구만 이사를 들어온 것이다. 그녀가 집에 데려온 고양이를 그 남자가 멋대로 버리자 스즈코는 결국 폭발해 그 남자의 소지품을 몽땅 버린다. 결국 그녀는 기물 손괴죄를 적용받아 벌금 20만 엔을 선고받는다.


어이없게 전과자가 된 스즈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왜 집에 왔냐고 윽박지르고 부모 또한 자신들의 사적인 일로 언성을 높일 뿐이다. 그 속에서 100만엔만 모으고 집을 나가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아는 이가 없는 먼 곳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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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우리는 의도치 않게 발을 헛디뎌 스텝이 꼬이기도 하고 꼬인 스텝에 넘어지기도 한다. 운 안 좋게 넘어지면 다리에 금까지 가기도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삶의 실타래를 풀어 뜨개질을 하다 꼬아버린 일이 종종 있지 않던가.


그렇듯 모두에게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기에 우리가 그 꼬인 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것인지가 꼬인 후의 삶을 결정한다. 꼬인 스텝에서 탱고를 출건지 넘어진 바닥에서 오랜만에 누워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건지. 그건 자신에게 달렸다. 스즈코는 약해지고 싶지 않아 떠났다. 그리고 곧 도망치기 위해 캐리어에 짐을 싣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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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 그 헤어짐이 두려우니까 누나는 무리를 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만나기 위해 헤어지는 거라고 방금 깨달았어."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 2016년에 히트친 드라마의 제목이며 헝가리의 속담이다. 스즈코는 자신이 잘못을 한 것이 아니기에 떳떳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누나 사람들이 뭐라 그러는지 알아?라는 동생의 말에 난 창피하지 않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이지만 마음은 분명 멍들어갔을 것이다. 단시간 사람들로부터 너무 많은 기대, 실망 그리고 분노의 감정을 느꼈던 스즈코는 사람에게 질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또 떠난다. 스즈코의 이런 모습은 마치 소심한 고양이 같다. 자신의 영역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경계를 풀지 않는다. 하지만 하악질로 사람들을 위협하기보단 그저 구석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다 다가오면 잽싸게 도망갈 뿐이다.


이 영화에서 100만엔은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전에  떠날 수 있는 금액'이다. 더 오랜 시간 머무르면 사람들과 더 많은 추억이 생기기 마련이고 이는 지인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더 깊은 관계로 한 발짝 나아가게 된다.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 즈음에 타쿠야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을 좀 더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녀가 말하길, 가족도 연인도 오랫동안 함께 있을 때 그저 얌전하게 될 수 있는 한 거짓 웃음을 짓고 있으면 트러블 없이 그럭저럭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새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관계가 돼버리는 건 불행한 일이며 헤어짐이 두려워 도망치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녀는 영화 처음부터 화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서운함을 분명히 토로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사람들과 관계에서 멀어져 갔다.


초등학생 때 봄 방학식에 가는 날은 학교를 향하는 걸음이 무거웠다. 새로운 학년을 맞아 반 배정이 발표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이별은 아니더라도 서로의 반에 적응해 서서히 멀어지게 될 것이 매년 적응 안되고 무서웠다. 그렇게 어기적 괜히 지나가다 마주친 꽃을 관찰하기도 하고 점자 블록을 따라 한 줄을 걸으며 학교에 가는 시간을 지체하기도 하고 교실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괜스레 기대어 쉬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인연이란 내가 헤어짐을 늦춘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헤어짐은 언젠가 찾아왔고 이를 담담히 받아들였을 때 새로운 인연과 함께 이전의 인연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연인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헤어짐이 두려워 회피하는 연애는 분명 부작용이 생긴다. 진심을 내어준 사람과의 이별은 쉽지 않지만 우리는 헤어짐과 만남의 과정을 거쳐야지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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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도망쳐왔지만 이번에야말로 다음 마을에서 제대로 자기 다리로 일어서서 살아가려고 해. 타쿠야에게 용기를 얻었어 고마워."

 


자신을 줄곧 괴롭혀온 친구들에게 한방 먹이고 또 한 번 맞아 징계를 받은 스즈코의 남동생 타쿠야. 타쿠야는 자신은 싸움을 못한다는 이유로 지우개 가루를 급식에 넣고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친구들에게 아무 대응하지 못했었다. 그는 '전과자가 됐으면서 집은 왜 들어왔어?!'라며 누나에게 언성을 높였지만 사람들의 안 좋은 뒷이야기에도 자신의 살 길을 살아가는 누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과 함께 중학교를 진학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껏 그 친구들에게서 도망 다녔지만 이는 헛수고가 아니었다. 누나의 용기를 본 그 지점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내면을 단련시키며 결국 자신을 괴롭힌 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용기를 얻은 건 스즈코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매는 서로를 거울 삼아 서로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자신에게 적정 선을 유지하며 다가와준 사람에게 호감을 느껴 연애를 시작한 그녀는 남자 친구 나카지마와 헤어지면서 사이가 불편해질까 하는 조바심에 말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새로 들어온 아르바이트생과는 어떤 사이인지라던가 왜 자꾸 돈을 빌리는지에 대한 의혹들을 풀지 못했던 과거의 순간에 후회한다. 이는 나카지마도 마찬가지였다.


너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와 오래 있어줬으면 해라는 진심을 전했다면 둘은 좀 더 함께 했을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더욱 단단한 관계가 되기 위해선 진심을 다해 부딪쳐야 한다. 어쭙잖게 돌려 말한다거나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전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행위는 어쩐지 비겁하다.  자신의 진심은 마음속에만 담아둔 채 다른 사람의 진심을 알기 원하는 것은 분명 이기적인 행동이니까 말이다.


*


스즈코, 타쿠야, 나카지마 모두 도망친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는 분명 언젠가 다시 찾아오는 회피의 순간에 이겨낼 수 있는 경험치가 될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여정에서 좀 더 솔직하고 대범하게 회피하고픈 것들에 마주할 것이다.  영화는 스즈코가 떠나는 뒷모습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어쩐지 모든걸 훌훌 털어내고 새로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경계를 허물고 진심을 다해 누군가의 내미는 손을 받아들일 그녀의 모습을 그리면서 감상을 마치고자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이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이다.

 


[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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