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느리게 듣는 이야기 -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 리뷰

입체적 독서의 체험
글 입력 2020.04.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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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틀어놓고 독서를 이어간다. 이것 참 기이한 경험이다. 음악감상을 참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것에서 나를 떼어두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었다지만, 또한 내가 사랑하는 다른 행위인 독서의 시간에만큼은 그를 반드시 미루어두어야 했음에.


이 작별의 까닭은 아마, 둘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심지어는 목소리 없는 음악인 피아노 클래식을 듣자 한들 매한가지였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해오는 나의 두 사랑이 결국 나로 하여금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이것 참 기이한 경험이다. 책이 어떤 음악의 배경에 서린 이야기를 풀어내는 중간중간 QR코드가 배치되어 있어, 휴대전화로 찍어보니 곧잘 해당 음악의 유튜브가 틀린다. 나는 그를 들으며, 정말이지 마음껏 들으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두 가지 목소리가 함께 들리어오며, 이 안에서 얽히는 일이란 역시 오묘한 체험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틀어놓고 독서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직 음악은 40여 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책은 다음의 음악으로 나를 이끈다. 결국, 나는 잠시 책을 뉘이고 음악을 들으며, 남는 시간엔 글 쓸 일밖에 없었다. 나로선 이 음악이 퍽 마음에 들었나 보다. 자연히 독서가 지연된다. 초조한 일일까. 차라리 마음 놓고 즐기기로 애를 써보았다. 그건 참 기이한 독서 체험일 테니 말이다.

 

읽고 듣다가 이내 멈추게 되고, 잠시 머금어도 보다간 마침내 글을 쓰게 되는. 하나의 독서가 이렇듯 입체적이게 된 적이 있었던가 물어보면, 내 짧은 독서 경험 중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 차라리 마음 놓고 영위해보고자 애를 썼다. 책은 응당 느릿느릿 나아간다. 차이코프스키에서 한 번, 모차르트에서는 여러 번, 쇼팽과 브람스에서 또 여러 번, 발길이 계속 매인다. 그러는 중 나는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여유로움을 되살려 보느라 애먹고 있었다.

 


이 책은 클래식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해설서가 아니다. 인생의 굽이굽이를 돌아온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 음악가들과의 만남, 그 축복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정리한 글들이다.

 

- 머리말 中


 

다 읽고 나니 알겠다. 이 책은 분명 클래식 사전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 말 곧 그대로. 책 안에 소개되는 것들은 음악가에 얽힌 일화들이다. 그리고 그 일화의 배면으로 음악은 감돌고, 그를 감싸고 있다. 음악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 거기 있었고, 나는 너무 멀리서 빛나는 별, 악성으로써의 음악가가 아닌 인간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보며, 비로소 그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것참 흥미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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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모차르트를 그리 가까이하지 않았다. 더 솔직하자면 멀리하였다고 말해야겠다. 단조계의 차분한 음악을 즐겨듣는 내게, 소개되고 다가오는 모차르트의 유명 곡들은 대개가 장조계의 그것들이었으며, 또한 너무 빠르고 경쾌했던 때문이다. (단조가 반드시 애수의 감정을 대변하고 장조가 반드시 환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때 막연하게 생각하기로, 그는 아주 명랑한 사람이었겠거니 하는 인상을 가졌더랬다. 이것도 다 잘 몰라서 할 수 있는 우스운 생각이었을 것이다. 클래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여보자면, 그의 선율은 영롱하게, 아니 영롱하게만 빛났다. 대개가 생에 대한 무한한 환희와 봄 예찬 일색의 인상으로 내게 닿았다.


이것 참 음악을 잘 모르니 적절하고 유효한 표현을 찾기가 어렵다만… 이 막연한 인상을 대변해줄, 가장 닮은 곡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 16번이다. 그 외 유명 곡들을 다시 찾아 들어보아도 이 인상은 여전하다. 빠르고 경쾌하며 명랑한, 명랑하기만 한, 나로선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감정들.

 

 

 

 

그런 상황에서 책을 읽었다. 응당 클래식의 거장 모차르트의 챕터를 지나쳤고, 지나온 다음엔 그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음을, 그에 따라 그의 음악이 달리 다가옴을 체험한다. 책 안에는 음악에 대한 해설이 아닌 음악가에 얽혀 있는 이야기가 실려 있었고, 그 이야기에 걸맞은 음악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일찍이 본 적 없는 그를 비로소 접하고, 그 인생에 굴곡을 얼핏 듣게 되고, 그의 음악을 다시 본다.

 

아아. 어쩌면 그의 음악들은 하나의 의지와 실천, 대결과 승리였던 것일까. 여태 나는 그를 생각할 적마다, ‘천재의 삶은 순탄하였겠거니, 그렇다면 저 명랑함의 일색은 손쉽게 성취한 평안과 감사함이겠거니’ 하는 되지 않는 선입견을 떠올리고 있었음을 잘 기억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삿된 선입견들을 고맙게도 잘게 부수어준다. 이런 것들이 대략,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가 아닐지.

 

그의 젊은 고뇌, 너무 짙고 깊게 짜인 사회의 법칙과 그 앞에 선 한 천재의 대결을 보았다. 또한, 그의 사랑, 하나님 다음의 존재인 아버지와 오래도록 떨어져 슬퍼하였고 끝내 극적으로 화해하였음을 보았다. 그런 중에서도 그의 음악들은 영롱하고 명랑할 수가 있었던 것이구나. 그의 음악은 주어진 것들이 아닌 성취한 것들이로구나, 드디어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이제 음악은, 이렇듯 달리 다가온다. 이 모든 것들이 이야기가 가지는 의미가 아닌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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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이다. ‘클래식을 주제로 써낸 이 이야기들은 마치 소설처럼 아름다웠다’고, 나는 굳이 다르게 적어본다. 소설처럼 아름답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분별해낼 자신은 없지만, 소설과 이야기가 공유하는 어떤 의미와 그 아름다움이라고 편의상 쉽게 쉽게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야기가 가지는 아름다움, 그 이전의 의미는 소통이 가지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 아닐지. 소통의 의의가 말하는 너에 대한 앎에 있다면, 이야기의 그것은 말하는 너는 아니겠지만, 네가 불러온 어떤 다른 이에 대한 앎에 있다고 할 때, 각각에는 나 바깥의 존재에 대한 앎에 그 의의가 공통으로 있다고 하겠다.

 

이 긴 이야기들 속에서, 음악은 다가왔다. 나는 이야기들의 덕택으로 비로소 음악을 만난다. 응당 숙련된 청취자가 아닌 나로서는 그 선율의 조화와 각 악기의 역할과 표현의 기법만으로, 즉 음악 내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그려낼 수는 없었기에. 이 음악들의 뒤에 서리인 어떤 역사와 이야기들을 접하고 난 후에나 가까이 여길 수 있게 된다.

 

이야기를 접하며, 음악을 들으며 책은 응당 느릿느릿 나아간다. 차이코프스키에서 한 번, 모차르트에서는 여러 번, 쇼팽과 브람스에서 또 여러 번, 발길이 계속 매였다. 그러는 중 나는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여유로움을 되살려 보느라 애먹고 있었고 말이다.

 

"음악이 이야기를 만나 만들어 내는 풍경-

 그 속에서 당신은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좋다."

 

여정의 끝, 책을 덮으니 뒷장 바로 보이는 문구이다. 아아, 나는 그렇다면 이 책을 잘 읽은 셈이구나. 아니, 책에 잘 머무른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옳겠다.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좋다.’ 달리 말하면,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는 것. 나는 오래 머무르고 싶은 어떤 마음과 그를 조금은 낯설게 여기어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이 책을 건너왔다지만, 그래도 얼마간 잘 머물렀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어느샌가 나는 하나의 음악을 들으며 신중하고, 또 설레는 마음을 졸이며 앉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적지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에 머물러 있던 내 음악의 세계에, 큰바람이 넘실 불어 들어오는 것이라고 빗대볼 수 있을까. 막대한 해풍으로 나는 음악을 받고 있었고, 그것참 정신없는 유쾌함이다.

 

이제 이 책은 오랫동안 잊힐 것이다. 내 나아가야 할 또 다른 책들이 산적하여, 저기서 혀를 차며 기다리고 또 재촉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책이 잊혀 갈 그 무수한 시간 동안에, 나는 한편 이 책이 짚어준 들리어준 음악들을 되새기고 있을 것을 잘 알겠다. 꽤 많은 노래를 재생목록에 추가해두었고, 나는 이제부터 한동안 그를 음미하며, 내 사랑하는 것으로 물들여 갈 것을 알겠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지나고, 몇 해가 지나면, 이 책은 아주 잊혀 있을 동시에 더없이 내 안에 와 닿아 있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문득, 먼지를 털어 다시금 마주한 이 책을 나는 새로운 낯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을 알겠다. 그때 많은 곡들은 더욱 친숙해진 채로 내 안에 머물며, 이 잊힌 익숙한 활자들을 반길 것임을, 이전보다 더욱 명쾌한 언어로 한껏 다가올 것임을 잘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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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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