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로 세상을 바라보다, 일 포스티노 [영화]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글 입력 2020.04.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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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영화들은 많다. 한바탕 웃거나 울 수 있는 영화들 또한 많다.


나는 모든 종류의 영화를 즐기지만 그 중에서도 내 삶, 내 주위, 내 생각을 찬찬히 되짚어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좋아하는데 이런 영화를 찾기란 참 어렵다. 사실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지루하다는 평을 받기도 하는 내 영화 리스트들에는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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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 시를 알다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던 청년, 마리오는 시인 네루다를 만나며 인생에 대해 배우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이해해 나간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곱씹을수록 색다르고 화려해진다. 얼마 전 들은 현대시 수업의 주제였을 만큼, 이 영화는 삶과 낭만, 아름다움에 대해 상냥하면서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시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단순한 해석과 설명으로 형용할 수 없기에 시인의 마음을 직접 체험하여 아는 것이 진정 시를 아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변을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면 시 속 ‘은유’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마리오는 결국 시에서 나온 단어의 파도를 통해 시란 무엇인가 자연스레 배운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시란 ‘아름다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자 표현’ 임을 우리는 마리오와 함께 깨닫게 된다.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이 영화에서 바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특별할 것이 없는 공간이지만 어부에게 ‘바다’란 생업의 공간이다. 그리고 어부의 아들이자, 우편배달부인 마리오에게 바다는 일상의 공간 혹은 지루함의 공간이었다. 시인에게 바다는 시의 영감을 주는 아름다움의 공간이다.


이 세 인물들에게 바다는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우편배달부 마리오에게 바다의 의미는, 시인을 만나며 변화한다. 그는 ‘시’에 대해 알아가게 되면서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발견되고,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일상의 공간에서 아름다움을 지닌 특별한 공간으로 변화한다.

 

영화 속 일상은 ‘바다’로 설정되었으나 우리의 일상은 집이 될 수 있고, 학교가 될 수도 있고, 회사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아름다운 공간으로 인식하지는 못한다. “아, 학교가기 싫다~” 라고 습관적으로 말하는 나 또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을 지겨운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이러한 공간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한다. 그러면 그 후부터 그 곳은 지겨운 공간이 아닌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모하게 된다.


사실 현실적으로, 일상의 공간이 아름답다라는 의식을 가지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행복은 그 의미와 경계가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면 언제나 행복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 곳이 아름다운 공간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간, 편히 있을 수 있는 공간, 맘껏 슬플 수 있는 공간, 혹은 어떤 감정이든 가질 수 있는 그 공간이라는 점이 바로 시인에게 '아름답다'라는 것 아닐까.


시인이 되고 싶은 마리오는 글을 쓰는 대신 노트의 중앙에 원 하나를 그린다. 그 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마리오가 생각하는 시이자 아름다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을 상징하듯 그 원은 그녀처럼 모난 구석이 없이 아름답다. 또한 한 단어로 명확히 표현할 수 없기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이렇게 우리가 원의 의미를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시의 미학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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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누구의 것인가



네루다와 마리오는 ‘시란 시인의 것인가, 독자의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럼 과연 시는 누구의 것일까.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는 하나, 우리가 배워온 시는 감상에 정답이 있는 시인의 소유물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시는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있지만, 둘 중에 답을 찾아야 한다면 독자의 것이었으면 한다.


그 글을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느낌이 달라진다는 시의 특성 자체가 독자에게 그 소유의 권리를 넘긴다는 의미가 아닐까하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는 아름답고도 어렵다. 아마, 글을 잘 알지 못했던 마리오도 시로부터 그 누군가의 설명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과 오묘함을 느꼈기에 독자들의 것이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없고 또 모든 것이 답이 될 수도 있기에 문학은 이상하다. 하지만 그만큼 누구나 사랑할 수 있기에 긴 세월을 거쳐 건재하다. '글'의 이중성에 혀를 차는 국문과 학생이지만 놓을 수 없는 이유는, 이만큼 오만하고도 고상한 학문이 있을까 싶다가도 이만큼 사려깊고 다정한 학문이 있을까 싶을까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 너는 왜 '국어국문과에 갔어?"라고 묻는 다면 말을 아끼고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여줄 것이라 다짐한다.

 


[장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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