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국 스켑틱 Vol.21. 합리라는 천사와 악마에 관하여 [도서]

글 입력 2020.04.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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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가 악인가 선악인가 악선인가



인류라는 종이 지구 상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사회를 이루어 현재까지 살아온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역사라고도 부르는 사회의 효용성에 관한 실험 제 n번째는 현재까지도 유의미한 관찰만을 도출했을 뿐 유의한 결과는 도출하지 못했다. 그 실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도 없이 많은 오류들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바는 ‘선과 악의 존재에 과한 제 n번째 변수 조정’이다.

 


우리는 마치 선과 악이 개인의 특성인 것처럼 타인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 보면 선과 악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게산에 근거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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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선과 악이라는 주제에 대해 토론을 벌인 시간을 측정해 본다면 아마 그 어떤 연구에 쏟아부은 시간보다도 길 것임이 분명하다. 언어를 만들기 이전부터 샤머니즘을 비롯한 원시 종교의 형태로 선과 악을 구분 짓고 일종의 행동 규범을 만들어 살아온 것이 인류이기에 당연한 사실이다. 종교에서는 남을 해하지 말라 가르치고 공자, 맹자, 고타마 싯다르타 등등 세계 각지의 성자들은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또는 욕심을 버리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작게는 이런 성자들에서 크게는 하나의 종교에 이르기까지 그 가르침이라 불리는 선이라는 주제의 뿌리는 같다. 바람직한 태도니 본받을 만한 성품이니 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는 그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은 하되 동의하지는 않는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가르침의 뿌리를 뒤덮은 흙을 파내 가려져있던 ‘합리성’이라는 본래의 모습을 꺼내 보이고자 하는 사람이다.


남을 해하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타인을 위하는 삶을 살았을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주제를 주고 토른을 벌여보자. 아마 보통의 아무개들은 서로를 배려하니 싸움이 없어지고 다칠 일이 없고 세상에 행복해지는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릴 것이다. 유토피아가 뜻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본성은 무엇일까. 사회가 혼란에 빠져 무너질 걱정을 덜 수 있음이다. 그것은 곧 선이 넘치는 세상이다. 선이 넘치는 세상은 모두가 안녕을 누린다. 안녕을 누리기에 혼란으로 인해 사회가 무너질 위험이 없다. 그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선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회 유지에 가장 이상적이고도 효율적인 방법이며 선보다 더 나은 사회의 안전장치는 없다. 유토피아의 이면에는 결국 빅 브라더가 미소를 보일 뿐이다.


 


사실인가 진실인가 절실인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달고서 고고한 척하며 지내던 시절도 있었던 인류는 이제는 이전에 비하여 다소 겸손한 태도를 지향하는 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을 선보이기도 하면서 이 지구의 모든 것이 제 발 밑에 놓여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 그리 보기 싫지많은 않다.

 


우리가 이성을 믿지 않고, 옹호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으며, 때로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네이글의 표현대로 모두 “불필요한 논쟁”이다. 우리는 이성을 믿지 않는다. 그저 이성을 이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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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특정한 누군가를 묘사할 때도 있다. 주로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모든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자료를 모아 분석하고 계획을 세우거나 손익을 따지는 사람을 봤을 때 이러한 수식어를 붙인다.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그 ‘이성’이란 무엇일까. 이성이 아닌 본성을 따르면 짐승과 다름없다며 물어뜯듯이 달려드는 그토록 많은 이들이 찬양하는 이성이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추앙받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서 살아온 시간이 꽤나 오래됐지만 아직까지 답은 찾지 못했다.


분명 이성을 찬양하며 당신을 이성적인 사람이라 부르는 사람이 많음에도 주위를 둘러보면 그들이 찬양하는 이성은 ‘믿고 싶은 것을 최대한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꾸밀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이성적인 사고로 객관적 사실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들 중 내가 믿고자 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이성적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탈진실 또는 대안 진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달고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조금만 집중하면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 낮은 페이크 뉴스(Fake News)가 넘쳐나지만 이를 알아차리지도 못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허우적거리며 숨 쉴 곳을 찾기 바빠 두 다리로 일어서기만 해도 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얕은 개울에 누워 있을 뿐이라는 제삼자의 시선에서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그 간단한 현실도 인식을 못 하고 있으니 한숨 이외에는 뱉을 것이 없다. 그저 허우적거리는 누군가의 옆에서 그와 똑같이 누워 합리성이라는 얇은 빨대를 입에 물고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뿐이다.

 



COVID-19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인 코로나 19로 전 세계의 인류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우스갯소리나 문어적인 과장법이 아닌 실제 현실이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며 의사에게 피를 토하는 사람. 아시아인이고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닌 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한 사람. 하루에 몇 백 개의 시신이 쏟아져 나오는 병원. 이 모든 것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더 이상 재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픽션이 아니다.

 


감염 가능성에 대해 인간은 행동 도메인에서는 회피를 보이고, 감정 도메인에서는 역겨움을 보인다. 역겨움은 인간의 여섯 가지 기본 감정 중 하나다. 이른바 혐오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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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겨움과 혐오에서 태어나는 두려움은 인류가 생존해서 진화하기 위해 발전시켜 온 면역 체계로부터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코로나라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숙주, 잠정적 숙주, 혹은 숙주로 간주되는 자를 포함하여 그 위험과 관련된 모든 것에 강한 혐오를 보이며 면역 체계를 활성화시킨다. 그 면역 체계에서 나오는 반응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합리성이라는 악마를 불러온다.


러시아에서는 사자를 풀러 시민들의 자가 격리를 유지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거짓이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사진이 자가 격리 조치를 위반하고 생각 없이 돌아다니는 어느 확진자의 이름을 달고 인터넷의 바다를 표류한다. 아무 상관이 없는 아무개였다. 코로나 확진자 증가 그래프가 완만해지자 사람들이 슬금슬금 꽃놀이를 나온다. 이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그 합리성이 깔려있다.


나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잠시 숨 좀 돌리려고 나왔을 뿐이다. 그 모든 합리성이 이성이라는 도구가 작동한다면 금세 ‘생각 없는 몰지각한 행동’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단순한 명제의 인식을 방해하고 정당화라는 잘못된 값이 나온 현실이 올바른 값으로 보이도록 한다.


결국(Consequently) 우리의(Our) 약하디 약한(Vulnerable) 면역 체계는(Immune) 더 나아가지 못하고 (Detained) 21세기를 달리는 지금이나 19세기에나 큰 차이 없이 합리성이라는 포장지로 혐오라는 면역 작용을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도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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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켑틱 Vol.21

코로나 19와 질병X의 시대

 

스켑틱 협회 편집부 엮음 | 268쪽 | 15,000원 

 

2020년 3월 6일 발행 | 판형(170x250)  

 

바코드 9772383984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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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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