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성 서사 공연의 해답을 찾다 - 뮤지컬 "마리 퀴리" [공연예술]

글 입력 2020.04.0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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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극장에서 관극하는 것이 어려운 요즘, 나는 지난 관극을 다시 떠올리며 속상함을 달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회상한 수많은 뮤지컬 중 단연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바로 지난 29일 막을 내린 뮤지컬 <마리 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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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 극을 보기 전부터 많은 관심이 갔던 공연이다. ‘여성 서사 넘어 사람 이야기’, ‘과감하게 그린 여성의 실패와 성장’ 등 ‘여성 서사’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임을 강조한 홍보문구들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공연계에서 흔하지는 않은 ‘여성 서사’, 그나마 ‘여성 서사’를 내세웠던 작품들도, 그저 여성 원탑 작품이거나 여성의 이야기를 약간 첨가할 뿐, 여성의 서사를 만족스럽게 풀어나갔던 작품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 퀴리>는 정말 만족스러운 여성 서사를 완성해냈다. 게다가 단순히 여성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를 빌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었다.

 

뮤지컬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마리와 안느가 ‘그댄 내게 별’을 부르는 장면이었다.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며 부르는 듀엣곡이 아니라 여성과 여성의 듀엣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넌 항상 나였어’, ‘난 항상 너였어’ 등 이 노래의 모든 가사는 마리와 안느가 그냥 친구를 넘어선 아주 끈끈하고 단단한 관계임을 알려준다.


둘은 서로에게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크고 환한 별’이다. 길을 잃으면 길을 찾게 해주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게 손을 뻗어주며, 삶의 목표와 설렘을 가져다주는 그런 별. 서로가 서로의 길잡이 흙이자 꿈, 희망이 되어주는, 진정성 담긴 깊은 연대에서 나오는 감정이 나의 마음에도 오롯이 와닿았다.


 


 

 

극장을 가득 수놓았던 형광 녹색의 라듐 빛이 눈에 아른거린다. 특히 라듐 공장 직공들의 옷과 피부에 서려있던 라듐의 빛이 소름 끼치게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저 인류에게 도움이 되기만 할 것 같던 라듐에 대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자 녹색 빛의 아름다움은 슬픔과 두려움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마리와 안느는 그 슬픔과 두려움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죽어가는 동료들과 자신을 위협하는 라듐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자 고군분투하는 안느. 라듐이 인류를 해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죽은 남편의 시체를 부검하기까지 하는 마리. 방법을 달랐지만, 인류를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라듐에, 그리고 세상에 맞서 싸운 그녀들의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이 공연은 커튼콜마저도 감동적이었다. 평생을 이름 없는 것의 이름을 만들어 주고 싶어 했던, 미스 폴란드가 아닌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로 불리고 싶어 했던 마리. 그녀의 ‘이름’에 대한 갈증은 커튼콜 때 완벽하게 해소된다.


커튼콜이 시작되면 마리는 수많은 실험 공식을 썼던 칠판으로 돌아가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다. 바로 공연을 함께 한 모든 배우들의 이름이다. 이름을 적는 퍼포먼스를 통해, 이름있는 삶을 향한 그녀의 여정이 마무리되는 것이 정말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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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마음이 따뜻해져서 눈물이 흐르는 공연이었다. 이 극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쉽고, 하필 코로나19로 우리 모두가 잠시 멈췄을 때 공연을 한 것이 아쉽다.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다시 우리가 시원하게 숨을 들이마실 수 있는 날이 왔을 때, 정말 딱 이대로 다시 돌아오면 좋겠다. 그러면 난 조금의 고민도 없이 들뜬 마음을 붙들고, 마리의 이야기를 들으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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