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만 두 동강 나 있지 않다 [공연예술]

연극 마트료시카, 현대 사회의 노동에 대해 말하다
글 입력 2020.04.0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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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보여주었듯 사회 속에서 노동자들은 부품이 되기 시작했다. 연극 마트료시카는 2019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으로, 부품이 되어버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마트료시카의 구조에 대해 알아두면 연극을 이해하기 쉽다. 마트료시카의 구조는 커다란 마트료시카 속에 작은 마트료시카가 반복적으로 들어가 있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마트료시카 속 마트료시카는 밖에서 보이는 커다란 마트료시카를 볼 수 없다. 작은 마트료시카는 이렇듯 눈이 멀어 있으면서 큰 마트료시카가 제공한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귀속되어 있는 큰 전체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눈 먼 작은 마트료시카는 큰 마트료시카가 옮겨질 때 큰 것 안에 든 채 속절없이 함께 옮겨진다. 이때 작은 것은 제가 옮겨진 자리가 어딘지도 모른 채 큰 것과 함께 옮겨질 정도로 주체성을 상실해 있다. 밖에 나갈 때도 큰 것이 작은 것이 나오도록 쪼개어지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

 

이러한 마트료시카의 구조는 기계를 이루는 부품 식으로 이루어진 산업사회의 노동자와 사용자가 이루는 구조와 비슷하다. 노동자 위에 조금 더 높은 노동자, 이런 식의 상하구조의 반복이다. 그리고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인 노동자는 인격체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 심지어, 생과 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말이다.


연극에서는 자살을 시도하면서까지 생에서 나오려 발버둥 쳤어도 다시 정신이 들면 일하게 해 달라고 하는 노동자들이 나온다. 자살을 한 이유는 일이 고되다는 사실과 일터에서의 비인간적인 대우 때문이다. 등장인물 중 소 군이 자살을 시도할 때 야간, 주말 업무 시간을 단축하고 점심시간을 30분에서 1시간으로 늘리고 화장실 가는 횟수를 세지 않는 등등의 기본적인 업무 복지 개선을 나열하며 달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자살 시도를 하지만, 업무 중 절단된 오 씨의 절단된 손가락을 책임지지 않으려는 회사의 태도에 분노했던 이 양은 자살 시도 끝에 죽어버린다. 사장과 그 측근들은 이 양의 죽음을 업무 중 지병으로 죽은 것으로 거짓 포장하고 신제품에 이 양의 얼굴을 새겨 넣기로 한다. 그리고 나서 회사 시찰은 서커스로 진행된다.


처음, 회사의 업무 복지를 개선시키는 대신 우스꽝스러운 자살 방지책을 강구할 때부터 그들의 회사 운영은 서커스에 지나지 않았을 수 있다. 사장과 그 측근들은 자살을 못하게 하기 위해 자살 금지 계약서, 원숭이, 투신 방지 그물망 등의 방법을 사용하며 문제에 대응한다. 그들의 태도는 강압적이며 사장이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폭압적이다.

 


“골치 아픈 것들은 잘라버려.”


 

그런 사장도 회장이 다른 사장의 죽음에 생명으로서가 아니라 이해관계로 대하는 모습에 자신이 만든 서커스를 쳐다보며 아연해 한다. 물론 회장도 사장을 강압적으로 대한다.


부품은 기계 전체를 조망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마치 커다란 마트료시카 안에 들어차 있는 마트료시카들 속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가 어둠 밖에 볼 수 없듯 말이다. 또, 가장 작은 것은 무엇으로 바꾸어도 자리만 채우면, 제 역할만 하면 상관 없다. 연극은 이러한 요지경을 서커스로 표현한다.

 


“기계처럼 누구로도 대체가능한, 있었는지도 모르는...”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 가져.”


 

이러한 상황에서도 노동자는 현실에서 가장 작은 자리라도 차지하기 위해, 가정이 있다면 가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받아줄 때 일해야지.”


스스로를 부품으로 생각하지 않고서 일을 하는 방법은 노동자와 사용자 모두 서로가 기계가 아님을 인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일은 일일 뿐이고, 나, 부품이 아닌 걷고 뛰고 먹고 숨쉴 수 있는 생명체인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 즉,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서로가 서로를 생명체로 대하는 것이다.

 

마트료시카는 반이 쪼개져 있다. 반이 쪼개져 있지 않은 마트료시카는 맨 마지막에 나오는 가장 작은 마트료시카 뿐이다. 가장 작은 역할로 보이는 것이 가장 단단하고 속이 비어있지 않으며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 가장 작은 것이 커다란 마트료시카 속 가장 단단한 무게중심으로 기능한다. 이것을 유념하면 ‘나’ 그리고 ‘일’을 균형있게 생각할 수 있다. 일에 목숨 걸어야 하는 현실이 마지막 마트료시카 마저 두 동강 내어 버리려고 하지만 그 속에서 자살을 꿈꾸지 않으려면 작은 마트료시카의 무게중심인 균형이 필요하다.


그 균형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 가야 할 사회의 면모이다. 커다랗지만 속이 빈 마트료시카 하나는 빈 공간을 가득 채우지 못한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마트료시카를 늘어놓아야 비로소 빈 공간이 채워진다. 모두가 노력해야 텅 빈 현실을 다른 모습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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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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