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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문학의 바다에 '함께' 빠지기,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도서]

by 장은재 에디터
2020.04.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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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이어져 온 집착이랄 것이 있다. 세계문학전집 모으기.


처음부터 목표를 가지고 모은 것은 아니고, 출판사마다 나오는 세계문학전집 책들을 야금야금 사다 보니 똑같은 높이, 똑같은 디자인의 책들이 책장 안에 저마다 모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게 기분이 좋았다.


책을 산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읽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전시용 컬렉션처럼 ‘사 놓으면 언젠가는 읽겠지’하는 생각으로 그냥 모으게 된다. 그렇게 항상 책에 둘러싸인채로 살다보니, 이따금 시간이 빌 때나 다른 일을 하기 싫을 때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책을 꺼내들고 훑곤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잠시 일상의 모든 일들을 뒤로 한 채 곧장 그 세계에 빠졌다가,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문학에 빠진 사람을 세상과 유리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난 이 주장에 완전히 반대한다. 나에게 문학은 잠시 세상에서 벗어나게 했다가, 돌아와서는 다시 절실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었다. “우리 각자의 존재를 견디게끔 해주는 것”(15쪽), 그것은 책의 존재 목적이자 나에게 있어 문학의 존재 목적이었다.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문학들을 앞으로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모으고, 읽을 것 같다. 그런데 이따금 이 고독한 독서의 여정에 함께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내가 읽은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도 하고, 혼자일 때는 거의 복불복인 책 고르기에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하다. 이럴 때 꺼내들어야 할 책이 생겼다. 이현우의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우리의 문학 읽기에 함께할 친구이자 안내자가 되어준다.

 

사실 이현우의 책과는 초면이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찮게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를 읽고 러시아 문학에 관심이 생긴 나는 당시 막 출판된 이현우의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 책이 어찌나 러시아 문학들을 감칠맛 나게 소개했던지, 곧바로 그가 소개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러시아 문학을 하나하나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노문과에 왔으니, 이현우의 책 소개가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이현우가 이전 책들에서 나에게 너무도 큰 세상을 열어보였기 때문에, 신작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가 넓혀줄 문학 세계를 망설임 없이 믿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 이 책은 나의 기대에 부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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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현우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작성한 문학 리뷰들로 이루어져 있다. 잡지에 실린 짧은 리뷰들이 대부분이고, 작품의 해제로 실린 해설, 작가와의 인터뷰 등도 들어 있다. 총 10부로 구성된 이 책은, 셰익스피어, 소크라테스, 도스토예프스키부터 하루키, 이광수, 김사과에 이르기까지 세계문학과 한국문학을 넘나드는 문학의 바다로 빠지게 한다.


‘세계문학 좀 읽었다’하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작품들도 많이 보일 테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작품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읽으려고 생각만 해두고 미뤄온 책들에 괜시리 찔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그 책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충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따금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책들 중에는 피상적인 줄거리 나열에 그치거나, 자신의 해석이 마치 정답인 양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읽고 나면 괜히 찜찜함만 남기도 한다. 그러나 오랜 서평 활동에서 온 연륜일까,  로쟈의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그 안에 실린 책들을 정말 ‘읽고 싶게’ 만든다.

 

이현우는 문학 작품을 자신의 시선에서 풀어낸다. 작품의 줄거리, 주제,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들을 짚으면서도, 신간의 뒷표지에 실릴 법한 홍보성 찬사나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이현우 자신의 시각에서 책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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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에서 동성애를 향한 영국 상류사회의 혐오를 읽어내기도 하고, ‘싱클레어(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속 주인공)’의 자기발견이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데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러시아문학 전공자 답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속 ‘나’와 ‘타자’의 관계, 톨스토이의 역사관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돋보이기도 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대해서는 ‘진부한 단편소설’이라고 통렬한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작품이 이뤄낸 문학사적 성취를 그 속에서 찾아내기도 한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우리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읽지 않은 책은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읽은 것에 대해서는 자신의 생각을 나눈다. 심심한 날엔 그가 소개해준 어떤 책들을 골라 읽으면 되고, 나와 같거나 다른 생각은 한번씩 읽어보면서 스스로의 독서 경험을 탄탄히 하면 된다. 든든한 독서 동지가 생긴 기분이다.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잡고 문학의 바다에 빠지고 싶은 사람에게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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