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에 빠져볼 당신을 위한 문학 안내서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글 입력 2020.03.29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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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결혼했대도 종종 권태기가 찾아오듯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종종 ‘책태기’가 찾아온다. 읽는 게 즐거웠던 일이 언제였나 싶게, 읽어도, 읽어도 머릿속에 입력되는 문장이 아무것도 없을 때, 나는 그걸 ‘책태기’라 부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태기’는 반년 전쯤이었다. 책태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보통 내 마음이 힘들어지고 나를 둘러싼 환경이 가혹해질 때 책을 붙잡고 있기 힘들다. 책을 즐기기에 앞서, 닥쳐오는 현실을 생각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나는 내 고민을 남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편이다. 고민이 있대도 보통 해결된 이후에 말하는 게 편하다. 당시 진로 고민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있을 때, 평소에 좋아하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힘든데, 나를 못살게 구는 나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딴지 걸기 같은 일. 희생양은 책이었다. 특히 문학이 그 대상이 됐다. 국문학과나 문창과도 아닌 내가 문학을 읽으면 뭐하나 싶고, 회의감이 들던 때였다. 책을 읽더라도 문학을 읽지 말고 실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나 읽을까 싶었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비롯된 자조적인 일상을 살 때였으니까.
 
그때 우연히 문유석 판사의 『쾌락 독서』를 읽었다. 독서광이었던 저자가 자신 생애 전반을 걸친 독서 생활을 유쾌한 입담으로 뽑아낸 에세이였다. 내내 깔깔거리며 책을 읽다가 에필로그에 쓰인 문장에 문득 숙연해졌다.

 

물론, 슬프게도 지금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모든 것이 언젠가 쓸모 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또한 실용성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로또 긁는 소리다. 하지만 최소한 그 일을 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했다면, 이 불확실한 삶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쓸모 있는 일을 이미 한 것 아닌가.

 

- 문유석, 『쾌락 독서』 중

 


그래. 문학을 읽는다고 당장 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읽는 순간 즐겁다면 그 자체로 무용한 건 아니지 않은가! 저자가 책 이야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해서 다시 책이 읽고 싶어진 것인지, 마지막 문장에서 교훈을 얻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쾌락 독서』를 읽고 ‘책태기’와 진로 고민을 동시에 극복했고 그 뒤로도 열심히 문학을 읽었다. 서론이 굉장히 길어졌는데, 나에게 문학의 의미란 무엇인지 문학을 다룬 책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본격적으로 말하기 전 되짚어보는 셈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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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러시아 문학 전공자인 로쟈(이현우)의 문학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2012년부터 2020년까지의 칼럼과 해설을 묶은 이 책은 총 10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국가별로 묶여있다. 영국문학, 미국문학, 프랑스문학, 독일문학, 러시아문학, 남미 등의 문학, 일본과 중국 문학, 그리고 한국문학까지. 동시대이든 아니든, 한 국가의 문학 흐름을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구성이 좋았다. 또,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대표적이고 잘 알려진 책들로 구성된 점이 익숙했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집에 두고 작가가 궁금해질 때나, 작품이 궁금해질 때 백과사전처럼 찾아보기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문학 작품을 완독한 후,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펼쳐 저자의 서평을 찾아 읽는 것도 환영이다. 문학에 빠진지 40여 년이 넘은 그가 폭넓은 사고로 작품에 대한 깊은 질문들을 던져 줄 테니 말이다.
 
직접 문장을 느끼며 문학을 읽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으며 각 문학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서평을 읽는 것은 실제로 작품을 읽기 전까지의 준비 시간을 줄여준다. 무엇을 읽어야 할지 찾지 않아도 소개해 주고, 짧은 분량으로도 충분히 문학 작품의 매력을 어필하고 읽고 싶게 하니까 말이다.
 
사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입시로 인한 공백, 진로 고민으로 인한 책태기 동안의 공백들을 제외하면 성인이 된 후의 독서 공백이 꽤나 큰 편이다. 그래서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에 소개된 ‘고전’이라 불리는 책과는 크게 친해져보지 못했다. 이렇게나 많은 책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명하고 작품성 있다고 선별된 작품들도 다 읽지 못했다니 조금 부끄러웠다.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간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독서였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으며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되는 말들은 저자가 소개한 작가들의 말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었던 문장은 제인 오스틴의 문장이다.

 

소설이란 정신의 위대한 힘이 드러나고,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철저한 지식과 인간 본성의 변화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 위트와 유머의 생생한 발현이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선별된 언어로 전달되는 작품이다.

 

- 소설가 제인 오스틴

 


문학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정의다. 사실 문학을 읽는 이유가 이런 이유이지 않겠는가. ‘책태기’를 맞이하고 보내면서 다시 또 책을 잡는 이유는 책이 재밌기 때문일 것이다. 책이 재밌는 이유는 한정된 시공간 속에 살아가는 내가 미처 겪지 못하는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최선의 것이기 때문일 테고. 인간의 내밀한 속내를 유려한 언어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건 타인을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문학은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려내며 한 개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알려준다.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엔 작품 자체의 이야기뿐 아니라 작가와 작품이 쓰인 시대에 대한 잡다한 배경지식이 있어서 작품의 이해를 도와준다. 책의 소개에 따라 한 작품, 한 작품, 문학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의 세계가 풍성하고 넓어져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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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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