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랄한 풍자 속에서 지켜낸 가족애,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 [TV/드라마]

글 입력 2020.03.2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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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의 장르는 하나로만 규정하기 어렵다. 근미래의 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SF지만, 정치적인 이슈가 극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치물이고, 또 막상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는 하나의 가족공동체라는 점에서는 휴먼드라마이다. 디스토피아를 예견하는 것 같다가도 막상 주인공 가족을 지켜보고 있으면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장르가 다양한 만큼, 어디에 초점을 두고 보는지에 따라 다양한 감상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는 미국의 정치 세태를, 누군가는 기술 발달을 얼마나 흥미롭게 구현했는가를 관심있게 볼 테고, 인류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이 작품은 가족이라는 복잡미묘한 공동체에 관한 성찰이기도 했고, 또한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방법의 좋은 표본이기도 했다. 가족과 다양성. 마치 고전적인 키워드와 현대적인 키워드가 만난 듯한, 은근한 부조화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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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족애라는 주제는 참 구닥다리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만 해도 <코코>를 보면서 비록 감동하기는 했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간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미덕화하는 주제의식에는 마음 한 구석에서 반감이 들었다.


정상가족과 대안가족을 둘러싼 담론에 해박한 편은 아니어서 조심스럽지만, 이 사회에서 더 많아져야 하는 이야기는 더 이상 고전적인 가족애는 아닌 듯하다. 화목함으로 포장된 가정의 이면에는 한쪽의 강요된 의무가 많은 경우 존재한다는 걸 이미 알아버려서일까. 그보다는 존중과 사랑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런 점에서 여기 나오는 가족들은 얼핏 평범한 ‘정상가족’ 처럼 보이지만 그 구성원을 뜯어보면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라이언스 남매들은 각자의 가정을 일구고 있지만 함께 살기도 떨어져 살기도 하고,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이거나 밀어내기도 하면서 형태를 조금씩 변형해나간다. 그 모든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지만 견디어 낸다. 치유할 수 없는 갈등이 생기더라도 모임을 지속하고, 서로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연대한다.

 

이들의 가족애가 새삼스럽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서로간의 존중, 즉 다양성의 포용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극중 모든 인물들은 허무하게 소모되지 않고 각자의 맡은 바를 해 낸다. 첫째 스티븐의 아내인 셀레스트는 흑인이고, 셋째 대니얼은 동성애자이며 연인은 난민 출신이다. 사실상 극의 주인공 격인 둘째 이디스 역시 동성애자이고, 막내 로지는 장애를 가진 미혼모이다. 로지의 둘째 아들 링컨은 중국계 혼혈이며, 여자아이를 위한 복장을 선호한다.


이렇게나 다양한 구성원들이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장 보수적이게 마련인 최연장자 포지션의 뮤리엘 역시 대단히 열린 사고를 지닌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상징적이다.

 

다양성의 최정점에 있는 인물은 역시 베서니가 아닐까.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트랜스휴먼’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포용력 최고봉인 이들 가족에게도 난제를 안겨준다. 인간의 육체를 모두 날려버리고 오로지 디지털 두뇌로만 남겠다는 베서니의 선언은 셀레스트와 스티븐에게 혼란을 안겨준다. 극에서는 다소 코믹하게 표현되기도 했지만,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충분히 가능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람들의 인식 변화보다 기술이 앞서 발명된다면, 트랜스휴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관한 정말 담론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수십, 수백년 전의 사람들에게 동성애나 트랜스젠더 등이 논쟁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양성의 주제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지를 예견한 소재 같아서 정말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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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어즈 앤 이어즈>는 가족애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한 가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국, 그리고 전 세계의 이야기는 씁쓸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예언으로 가득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에는 중국을 향해 핵공격을 저지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흘러가며, 일상은 유지된다. 환경 문제는 현재와 비교도 할 수 없게 가속화되지만 여전히 도시인들에게는 피부로 와닿는 일이 아니다. AI와 기계의 발달은 인력을 대체하고, 직업이 사라진다.

 


“우리가 이 지경으로 놔둔 거야. 실은 우리도 좋아해. (...) 참 잘했지, 그러니까 우리 탓이 맞아.”

 

- 극 중 뮤리엘의 대사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대로다. 때로는 바로 그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며(뮤리엘의 말처럼, 모두가 그저 ‘방관’했다), 때로는 그 점 때문에 사람답게 느껴진다.

 

이토록 풍자적인 주제의 SF 드라마를 만들면서도 인간애를 놓지 않았다는 점. 그게 바로 이 작품이 더욱 특별해지는 이유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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