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흑당 넣은 허니버터 마라탕 속에서 찾는 식사 정체성 - '식사에 대한 생각'

글 입력 2020.03.2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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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만카스테라, 마라, 흑당



영화 <기생충>에서 대만 카스테라 사업 이야기가 나오자, 평소에 답답해하면서 찾고 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은 것처럼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박 사장의 부유한 개인 주택에서 짜파구리에 안치살을 얹어 먹고, 기택네 가족은 반지하 집에서 소규모 프랜차이즈의 피자 박스를 접는다.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식생활은 때로 그 어떤 지표보다 노골적으로 사회의 특성을 반영한다. 두 가족을 망하게 만든 대만 카스테라에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한 식품 경제학과 현대인의 식사 문화가 응축되어 있다.

 

우리는 수많은 식품 유행을 거쳐왔다. 허니버터칩을 비롯하여 마라, 흑당으로 까지 변화하는 ‘식품 유행’으로 빠르게 바뀌는 점포의 매대를 보고 있자면 기묘함까지 느껴진다. SNS와 콘텐츠로 인기를 끎으로써 반짝 유행을 타는 마케팅의 연속적 성공으로, 식품업계들은 집단으로 관심을 끌어들이고 보는 단발성 마케팅에 집착한다. 당연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식제품은 수명이 짧을뿐더러, 영양학적으로는 더 엉망이다.

 

식품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 기묘한 현상의 이면에는 청년들의 식생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굶주림을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청년 세대에게 식사는 자아정체성을 구성하고 소속감을 확인하는 경험의 영역에 있다. 흑당의 유행은 그 맛 자체보다 SNS상의 비주얼과 이색적인 경험에 근원을 둔다. 일곱 가지 색을 띈 롤케이크는 실제로는 특색 없이 밍밍한 맛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기 예쁘다는 이유로 유행을 탔다. 이와 같은 경제학적, 사회심리학적 토대로 현대 식품 문화는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식품을 문화로 소비하는 청년 세대의 식문화는 결백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런 단발성 마케팅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피해에 편승해 점포를 연 소자본 창업가와 소비자다. 대만 카스테라의 경우 모 프로그램의 잘못된 방송으로 주저앉았지만, 대만 카스테라의 몰락은 정해진 절차였다.

 

대만 카스테라의 경우 만들기가 쉬워 진입장벽이 낮아 신입 점포를 만들기 쉬워 희소성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대만 카스테라의 유행에 수많은 프랜차이즈 업체가 문을 열었고, 3월 말 기준으로 대만 카 스테라 상표 출원 업체가 30여 개를 넘게 되었다. 본토에서는 지역 명물 정도의 인식이 있는 대만 카스테라의 비극은 TV 방영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에서 소개된 이색 먹거리로 소개되면서 시작되었다. 영화 <기생충>이 보여준 현대인의 식탁은, 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식사에 대한 생각>을 이번 PRESS 도서로 결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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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쾌하고 날카로운 저자, 비 윌슨의 현대 식탁 비판



음식 작가이자 역사가, 영국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수년간 역사학 분야 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비 윌슨은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에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신작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 비 윌슨은 풍성한 음식의 시대, 우리가 음식과 더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녀는 BBC 선정 푸드라이터이면서, 전작 <포크를 생각하다>, <식습관의 인문학>을 통해 대중의 찬사와 전문가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본 도서는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류의 식탁이 어떤 문제를 마주했는지 고찰하나. 책의 주제는 ‘현대인의 식탁’이지만 결코 식탁에 오르는 것들이 단순하고 가볍지는 않다. 야채가 부족하고 가공식품 위주로 차려진 식탁의 문제를 넘어, 비 윌슨은 기후 변화, 생물의 다양성 축소, 농공업 식품 단지의 증가와 영양, 식습관, 소비문화와 식품의 경제구조, 다이어트 문제까지 광범위한 문제를 고찰한다. 다양한 이론과 전 세계의 사례가 검토되지만, 책은 독자 친화적으로 기술되었기 때문에 낯설거나 어렵지 않다. 읽기 편하다는 것에는 저자의 탁월한 글 실력도 한 몫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슬슬 식품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더는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고, 식사 자체가 하나의 문화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사회에 살고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우리는 원재료를 상상할 수 없는 식품들을 접하고 섭취하며, 다이어트나 시간 절약을 위해서 도저히 음식으로 볼 수 없는 맛과 형태를 가진 식품을 우물거린다. 우리는 경제학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수많은 식품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만성 질환을 마주하고 있는데도, 만성질환은 개인의 인성과 선택의 문제로 다뤄질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차별을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말하는 음식혁명만이 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니겠지만 분명히 개인의 행복과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비 윌슨은 부드럽고 쾌활하지만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자세로 이 문제를 풀어낸다. 그는 어느 면에서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도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가능성을 집요하게 찾아내고, 그가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동화책의 비유를 들어 독자들의 변화를 독려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식문화의 발달은 식사행위에 대한 관심과 양질의 음식을 소비하려는 문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비 윌슨이 주장하는 것은 결코 청교도와 같은 엄격함이 아니라, 풍요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융통성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비 윌슨은 현대인을 위한 조언을 정리해 두었으니, 그녀가 제안한 행동강령을 함께 하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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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풍요와 과열량, 음식이 마주한 4단계



검정 고무신에는 기영이와 기철이가 바나나를 눈물을 흘리며 먹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직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기영이와 기철이가 기가 막히게 먹긴 했나 보다. 좌우간 어린 시절 나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고,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바나나를 먹었다. 물론 당시 기영이와 기철이가 먹었던 바나나는 미셸 바나나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져 경제학의 원리에 생산중지가 되어 지금은 찾을 수 없긴 하지만, 나는 같은 바나나라고 믿는 것을 사달라고 엄마에게 졸라서 그날 저녁에 먹었다.

 

나의 이 짧은 기억 속에 현대인이 마주하고 있는 제 4단계의 음식 혁명이 들어있다. 과거에는 음식이 부족한 시절이 있었다. 멀리가지 않아도, 우리의 부모님 시절에는 바나나가 희귀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바나나는 빨리 다 먹지 못해서 너무 쉽게 버려지는 과일 중 하나다.

 

우리는 더이상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는다. 서울에 거주한다면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편의점 두 세 개를 찾을 수 있다. 가공 식품 뿐만 아니라 바나나나 아보카도와 같은 이색적인 과일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제철에 맞지 않은 과일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지금까지의 역사 중에서 가히 혁명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1장에서 인간의 경제 사회적 변화에 따른 인구 변화와 그에 따른 식단 변화를 이론화시킨 ‘음식 혁명 4단계’ 이론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 수렵 채집인인 최초의 인간은 자연에서 구한 다양한 녹색 채소와 베리류, 야생 짐승 고기로 저지방 식사를 했다. 당시 인류는 전염병으로 먼저 목숨을 잃지 않는다 해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고, 기대수명도 짧았다. 이 단계의 인간들은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고 활동량도 많았기에 대체로 건강이 좋았고 영양결핍도 없었다. 두 번째 단계, 기원전 2만 년 경 농경시대에 주식으로 먹는 곡물이 생겨나고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제 인류는 주요 곡물 중심의 식단을 섭취하였다. 하지만 먹는 음식이 전보다 덜 다양해졌고, 주식이 곡물이 되면서 기근이 늘고 식단 문제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 시절 양과 질이 모두 부족한 식사가 잦아지면서 인류는 결핍성 질환에 시달리게 되었다.

 

세 번째 단계, 드디어 인간들은 기근감퇴 시기에 다다른다. 윤작과 비료 등 농업 기술의 발달로 더 다채롭고 풍성한 식단을 먹게 되었다. 또한 전분성 곡물을 덜 먹는 대신 동물성 단백질과 함께 다양한 채소를 더 많이 섭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우리가 위치한 네 번째 단계에서 식단은 질적으로 다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육체노동이 중심이 되었던 경제가 기계화됨에 따라 에너지를 덜 쓰게 되었고, 식품가공과 마케팅 분야가 혁명적으로 발전해 사람들은 지방, 육류, 설탕을 더 먹고 섬유질을 덜 섭취하기 시작한다. 영양전이 현상에 의해 결핍성 질환의 자리는 만성질환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4단계 혁명은 우리에게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우선 인류에게 더이상 굶주림이 문제가 되지 않고,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경험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음식 문화가 발전하면서, 질 좋은 음식에 관한 관심과 이색 식문화에 대한 접근도 쉬워졌다. 우리는 이제 너무 쉽게 전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음식 혁명이 4단계에 접어들면서 가공식품 마케팅으로 과식과 영양부족이라는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칼로리는 과도하게 섭취하면서 건강에 필요한 영양소와 단백질은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식단의 질이 선진국의 식단보다 좋다는 것은 현대의 식탁이 가진 모순을 잘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한국이 전통음식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국민들의 자부심으로 4단계로 넘어간 다른 나라와 비교해 3단계 식단을 잘 지키고 있다고 기술한다. 한국의 전통 음식은 야채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김치의 소비는 여전히 높다. 한국은 폭발적인 경제적 성장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통 음식문화와 야채 섭취량을 유지하는 긍정적인 사례로 보고된다. 우리는 때로 한식을 외국인에게 강요하는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채소 위주의 식단에 대한 자부심, 정체성의 보호라는 측면에 대해서 우리는 ‘국뽕’을 가져도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점점 더 식문화가 세계화 되면서 한국의 소비자들도 역시 고열량 저영양 식품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다.


 

 

4. 딸기 맛이 나는 딸기 과자, 우유가 섞인 우유



과거에 외식은 특별한 날에만 하는 일종의 행사였다. 하지만 오늘날, 외식은 선호하는 식사 방식이 아니라 선호하는 오락의 한 형태가 되었다. 외식의 빈도는 점점 오르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 배달 앱의 성공으로 더 흔한 행위가 되었다. 빈번한 외식, 특히 외식하러 나가기 위한 노력을 모두 생략한 배달은 식재료의 선택과 구성의 선택에서 동떨어지게 한다.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외식업체가 최대의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저렴한 식재료로 최대한 맛있는 식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은 식사를 전달받는 손님에게 이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런 경제적 맥락 속에서 외식은 더 높은 열량을 섭취하게 하며, 단독 가구가 음식을 배달 시켜먹으면 사회적 상호작용마저도 제거된다. 어떻게 요리되었는지도 모를 열량이지만 아무런 영양가 없는 음식을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배달시켜 먹는 사람들, 이것이야말로 후기 자본주의의 식탁이 보여주는 음울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고열량 식품의 섭취 경향과 반대로, 식사 시간의 효율성이나 영양소를 신경쓰는 경향도 생겼다. 우리는 다이어터로써 식사를 할 때, 온갖 종류의 프로틴 바와 다이어트 가공 식품을 섭취하곤 한다. 다이어터 용으로 광고되고 있는 식품들은 주로 단백질 함량을 높이거나 건강식품인 것처럼 꾸민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초코맛이 나는 프로틴 바에는 거의 초콜렛 바와 맞먹는 양의 당이 함유되어 있고, 실제 자연 식품에서 단백질을 먹는 것보다 못한 양의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다. 다이어터가 아니라 일반 건강 식품 소비자라도 마찬가지다. 건강 식품을 챙겨 먹는 열풍에 수많은 건강 요구르트가 출시되었지만, 뒤에 붙어있는 식품 라벨지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원유의 양이 터무니없이 적을 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것들이 주원료로 섞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장 충격받았던 경험 중 하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즐겨 마시는 우유 안에 일반적인 원유가 아닌 다른 것이 주원료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에 따라, 나는 마시고 있던 초코 우유의 성분을 확인했다. 신선한 우유로 만들었다는 초코우유의 주 원료는 혼합탈지분유였다.

 

탈지분유는 우유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수분과 지방을 분리하여 분말형태로 만든 것으로, 혼합탈지분유는 탈지분유 75~85% 정도에 치즈, 버터 제거 후 부산물로 남게되는 유청 분말을 섞어 만든다. 혼합탈지분유는 거의 맛에 차이가 없고, 176%의 관세를 매기는 수입탈지분유와 비교해 20% 관세로 저렴하다. 가공식품 업계는 경제적 이유로 혼합 탈지분유를 선택하였다.

 

실제로 편의점에 비치된 우유를 확인해보면, 우리는 네덜란드산 혼합탈지분유의 존재를 쉽게 확인할 것이다. 연도별 혼합탈지분유 수입량은 2010년 31,572톤, 2011년 36,127톤, 2012년 27,548톤, 2013년 33,858톤, 2014년 38,092톤, 2015년31,117톤에 이를 정도로 국내에서 가장 선호하는 수입원료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우유를 마신다고 생각한다.

 

혼합탈지분유가 실제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문제지만, 이 혼합탈지분유 문제가 무서운 것은 경제적 논리에 외면된 국내 원유가 소외당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생물의 다양성 축소와도 관련이 있게 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한번, 앞서 말한 기철이와 기영이가 먹었던 미셸 바나나가 경제학적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산 중지되고, 이제 전세계에 유통되는 바나나가 케번디시 종 뿐이라는 파국을 맞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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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식사가 소외받지 않도록



고열량 저영양의 시대,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대체식량을 찾기도 한다. 물론 저자는 대체 식량이 주는 이득을 부정하지 않으며, 대체 식량을 즐겼던 나로써도 대체식량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식량일 뿐, 결코 인류가 지금까지 즐거움의 영역으로 남겨왔던 ‘식사’를 대체할 수 없다. 물론 우리가 사회 경제적 불평등과 저영양의 식품들에의해 위협받고 있긴하지만, 그 모든 것을 외면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커피와 함께 작게 잘라 먹는 작고 검은 케이크와, 주말 저녁에 부모님이 만들어준 따뜻한 된장찌개의 경험을 외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본 리뷰에서 하나하나 열거하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에는 경제학적 구조와 불평등, 환경 파괴와 최악이지만 합리적인 선택을 선택하게 하는 사회 전체의 설계가 포함되어있다. 현대인의 식탁에 오른 문제는 너무 많고, 다 풀어내기 위해선 너무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저자는 양쪽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이야기한다. 폭풍처럼 휩쓰는 음식 유행에 맞서, 내가 무엇을 먹고 어떤 것을 즐기고, 때로는 스스로 요리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식문화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개인의 행복, 과장하자면 인류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식사의 문화는 부정되어서는 안된다.

 

저자는 식문화의 회복을 자신의 첫째 아들이 가장 좋아한 동화인 <용감한 염소 삼 형제>를 비유삼아 설명한다. 이 동화에는 가장 작은 염소, 중간 염소, 가장 큰 염소 세 마리가 등장한다. 갈색 풀이 듬성듬성한 들판에 사는 삼 형제는 더 좋은 풀을 먹고 싶어한다. 강 건너편 목초지에는 가장 푸룻푸룻하고 달콤해 보이는 잔디가 깔려있다. 하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먼저 못생긴 트롤을 지나쳐야 한다. 다행히도 삼 형제는 트롤을 꾀어내 안전한 다리를 건너 초록 잔디에 다다른다. 이 초록의 푸른 잔디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다섯 번째 단계다. 이 음식의 가장 멋진 점은, 세 염소 형제가 음식을 피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향해 달려간다는 점이다. 이들은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이것은 죄책감이나 부정이 아닌, 새로운 영양분에 대한 문제다. 새로운 잔디에는 건강과 즐거움이 함께 있는 곳이다.

 


 

6. 마무리


 

고백하자면, 나는 청년 세대가 음식에 집착하는 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아 왔다.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소비하는 문화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마케팅 시스템의 근본적인 원인이자, 지속되는 굴레다. 고급스러운 음식을 소비하는 것은 청년 세대가 마주하고 있는 경제적인 제한을 넘어선 잠깐의 ‘소확행’에 불과하다. 내가 바라본 이들의 모습은 큰 무리 없이 접근 가능한 음식 소비에 집중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불평등을 잊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행동 양식이 ‘잠깐 잊는 것’에 머무른다면, 세상은 변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큼 고민하기 어렵고, 경제적 성공이 최고의 명예로 여겨지는 시대에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슬픔을 동반한 씁쓸함을 느끼게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식문화를 자신의 자아의 경험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들의 행동패턴은 어떤 맥락에서 희망적으로 느껴진다. 새로운 단계의 음식혁명이 일어나는 오늘날, 수많은 소비자들은 이 난장판에서 새로운 식생활을 창조할 준비가 되어있다. 이미 식사는 우리의 문화 한 가운데에 놓여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식사를 통해 움직인다는 본질적인 사실을 깨닫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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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에 대한 생각

세계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우리의 식탁은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2020년 2월 27일 출간


516쪽

 

17,800원

 

 ISBN 979-11-90030-37-3 03300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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