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알폰스 무하, 사람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지다 [문화 공간]

먼저 다가가는 친근한 예술을 하다
글 입력 2020.03.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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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이 예술가와 동거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많이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예술가는 ‘고흐’였다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이런 고갱, 고흐와 동시대를 살고, 아르누보 예술을 이끌며, 고갱과 함께 살았던 또 다른 위대한 예술가가 있다. 바로, 체코의 대표 화가, ‘알폰스 무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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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의 그림은 한눈에 호감으로 다가왔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다소 추상적이고도 개인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그 작품을 경외의 시선, 감탄의 감정을 지니고 감상하게 된다.


하지만 무하의 그림은 예쁜 그림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무하 스타일’이라는 표현에 알맞게 여인의 전신과 파스텔 톤의 은은한 색감, 독특한 서체는 알폰스 무하의 그림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한 눈에 호감인 이 그림들은 ‘카드캡터 체리’, ‘세일러문’ 등의 우리에게 친숙한 만화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어 한층 익숙하게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바로 어제 그린 듯’ 현대적이고도 직관적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벚꽃을 닮은 색감과 현대적인 디자인은 내가 알폰스 무하의 그림에 반해 전시회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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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전시회 메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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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사계>

 

 

보통 예술가의 서사는 외로움과 괴로움이 함께 하는 비극으로 인식된다. 특히 나는 비극적인 삶에서 나오는 예술에는 그러한 삶이 녹아들어 왠지 모르게 더 진정성을 지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보통 그런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이 현대에 와서 칭송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극은 곧 진정한 성찰의 부산물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그런 비극을 내심 동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하는 상대적으로 희극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당시 성공한 예술가의 삶을 살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삶을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그의 적극적이고도 긍정적인 성격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성격이 드러나는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무하는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이유로 조형예술아카데미에 불합격하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확신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지닌 그의 행동을 바라보면 부럽기도 하고 그가 어떻게 타인을 생각하는 예술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산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에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그의 사려깊음이 느껴져 나까지도 힐링 받는 기분이 든다.

 

무하는 예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향유 대상을 명확하게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일부 귀족에게 편향된 예술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것이 아름다워야 하며 가난한 사람들도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전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그의 작품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광고’를 위한 그림들이 많다. 담배, 맥주, 연극 포스터, 초콜릿 등의 포스터, 포장지가 화가의 작품이라기에는 소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예술가와 ‘이타성’은 뭔가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예술의 진입장벽을 낮추고자 노력한 그의 행보들을 보다보면 ‘이타적’ 예술가라는 칭호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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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의 광고 포스터

 


그의 인생과 작품 전반은 다 인상적이었지만 그 중 조국 체코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 마지막 섹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외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뿌리인 슬라브 민족이 받은 핍박을 잊지 않고 제작한 <슬라브 서사시> 연작들에서는 그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던 민족에 대한 애환이 느껴진다.


비록 <슬라브 서사시>는 크기와 보호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사진으로만 봐도 느껴지는 크기와 위엄은 꼭 거대한 두께를 지닌 역사서를 보는 듯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닮은 점이 있어서 그런지 그 울분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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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서시시 중 일부

 


놀랍게도 무하는 오히려 과거에 비해 현 시대에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도슨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모든 예술 분야에 천재적이었기에 오히려 그를 어느 분야에 넣을 수 있을지 확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넓은 분야를 전부 다루었기에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전히 사려깊은 그의 예술은 오늘 날의 우리들에게도 힐링 예술로 남아있다. 삭막한 요즘 시대에 지쳐가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시간을 내어 알폰스 무하의 작품들을 보러 가는 게 어떨까.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알폰스 무하展

2019.10.24. ~ 2020.04.05.

마이아트뮤지엄

화요일~일요일 10:00~20:00


도슨트 화-금 11시 14시 16시 18시

토-일 11시 14시 16시

 

 



[장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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