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와 천장 사이] 01. 외로움의 메커니즘

외로움 전문가 되기
글 입력 2020.03.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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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와 천장 사이] 01. 외로움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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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中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밤에 가장 큰 문제점은 다름 아닌 외로움이다. 이 세상 그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새벽의 시간은 때로는 축복이지만 때로는 나에게는 불안과 절망의 시간이기도 하다.

 

밤에는 낮 시간의 소란스러움으로 인해 미처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했던 질문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질문들에 대답을 하는 과정은 때로는 나에게 길을 찾아 주기도 하면서 때로는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 중 무엇이 됐든 이 과정은 그렇게 무가치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 질문과 생각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질 때 발생한다. 새벽의 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오늘을 보내고 잠을 청하고 있기에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사라지지 않는 메신저 채팅창의 1을 바라보고 더 이상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는 SNS 피드를 무의미하게 새로 고침 하다 보면 불쑥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들이 밀려온다. 언젠간 누구도 나를 찾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것 같다는 두려움.


고작 새벽에 대화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리는 바보 같은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내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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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나는 눈을 감고 나의 장례식 장면을 상상해본다. 어떤 연유로든 내가 만일 죽게 된다면, 누가 나의 장례식에 찾아올까. 나와 일생에서 한 번쯤 어깨를 맞대었던 이들부터 오래도록 눈동자를 마주보며 지냈던 이들까지 내 역사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름과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는 것이다.


이들이 나의 죽음에서 느끼게 될 슬픔의 크기가 나에 대한 사랑의 크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은 나아진다. 슬프고 잔인하고 어리석어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해결 방법이다.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의 마음 한 구석에는 작게나마 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 받고 싶은 것일까. 종일 집에서 홀로 있었던 날이라면 갑자기 찾아온 외로움을 설명할 수라도 있을 텐데,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왁자지껄 하루를 보내다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날에도, 좋은 친구를 만나 소중한 시간을 보낸 날에도 어김없이 불쑥불쑥 외로움이 찾아올 때에는 당혹스럽다.


이 짧은 메모를 남긴 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외로움의 메커니즘이 궁금하다. 매번 알 수 없는 이유로 외로워지고 불안해하는 것이 지겹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두렵다. 나는 여러 타인들과 쉬지 않고 연결되어 있어야만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언제나 내 옆에 있을 단 하나의 타인을 원하는 걸까?



만일 이 감정이 어느 상황에서 내가 어떤 상태일 때 찾아오는지, 어떤 행동을 취하면 사라지는지 알게 된다면, 그러니까 외로움의 메커니즘을 알게 된다면,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은 물성과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다룰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게 된다면 이것을 잘 다룰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외로움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외로움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中



가족, 친구, 애인 혹은 누구라도 상관이 없으니 서로 감정의 사치를 누리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감정이 결국에는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처럼 될 운명일지라도 그것이 슬픔이든, 기쁨이든, 사랑이든 누군가와 마음껏 감정의 사치를 부리고 싶어지는 순간. 결국 이 열망이 채워지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하나 이상의 타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순간은 보통 두 가지 상황에서 찾아오더라.

 

첫 번째는 사는 것이 정말 지루한 무성 흑백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경우이다. 잔잔하고 평화롭지만 다음 장면이 정말 넌더리 날 만큼 기대되지 않을 때 타인이라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달콤한 비선형적 사건이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혼자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절망감이 찾아올 때이다.


산다는 것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절망감을 마주하는 것이며, 절망감을 마주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의 손은 잡고 있기만 해도 사는 것이 조금은 덜 무서워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초라한 빈 손을 잡아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허은실 <목 없는 나날> 中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기대를 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기 마련이다. 나의 감정을 다른 누구에게 담보한다는 것은 외줄 타기보다 더 위험하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결코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외로움보다 더 비참하다. 운이 좋게 누군가와 마음이 닿는다고 해도, 타인과 나는 기울기가 다른 두 직선이다. 일생에 한 번은 마주치게 되더라도 결국엔 다른 곳으로 향하는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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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인간관계에 있어서 극도로 회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그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큰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누구보다도 굳게 믿는다. 그렇기에 외로움은 외로움으로 남겨두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이 욕망을 먹으면 그 몸집을 키워 흉포해진다. 그 흉포함이 나를 향하거나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향하게 된다면 결국엔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이 감정을 채우려 하지 않으려 한다. 외로움이 찾아오는 날에는 외로움이라는 이름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에 자리 잡은 것이 무엇인지 조심스레 들여다볼 것이다. 어느 날은 그 안에서 해답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은 그 껍질조차 벗기지 못하겠지. 이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외로움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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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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