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을 다시 만나고 싶을 때, 도서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글 입력 2020.03.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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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자연스럽게 하던 것들 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내 습관 중에서 사라져 버린 것들도 있다. 떠올려 보면 정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어렸을 땐 했으면서 지금은 하지 않는 것 중 가장 간극을 크게 느끼는 행동이 바로 문학책을 읽는 습관이다. 정확히는 읽었던 습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분명 예전엔 소설도 읽고, 시집도 읽고, 좋아하는 책은 사서 소장해두고 읽곤 했는데 어느 새 그런 소소한 행동들이 내 일상 속에서 아예 사라져버렸다. 왜 그랬을까.


다시금 문학을 읽어봐야지, 특히 고전문학들은 정말 다시 읽어야지 라는 생각을 몇 번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마음을 먹어도 매번 다짐뿐이었던 걸 생각하면 스스로가 그만큼 의지박약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문학을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의문만 남은 상태에서,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다시금 내 마음을 일깨워볼 계기가 생겼다. 바로 도서 "문학에 빠져죽지 않기"를 읽어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문학 읽기의 충실한 안내자

 

읽고 쓰고 강연하기. 이 책 저자의 삶은 이 세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이현우'라는 본명보다는 인터넷 서평꾼 '로쟈'로 더 유명한 저자의 세계문학 서평집이다. 저자는 수많은 인문서와 문학 작품을 읽고 해설을 쓰며, 더러 의심쩍을 때는 원서와 국내의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서 비평하고, 직접 번역도 하지만, 그는 러시아문학 전공자이자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인 '로쟈'를 별명으로 삼았다는 데서 보이듯, 고전을 비롯해 최근 작품들까지도 열심히 찾아 읽고 연구하는 세계문학 전문가이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40년 전 문학을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경탄과 흥분'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고 고백했는데, 이번 책에서도 문학 작품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과 성실한 자세는 저자 특유의 문장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2012년부터 2020년 2월까지 8년간 쓴 칼럼과 해설을 선별하여 묶은 것이다. 세계문학 서평집으로 보자면, 2012년에 나온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후속편이고, 서평집으로 보면 2017년에 나온 『책에 빠져 죽지 않기』의 후속편인 셈이다.

 


 

 

현대인들의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 인간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도파민으로 인해 세월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 현대인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는 건 그런 감상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미성년의 학생들은 학교 일과가 끝나면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수험생활을 하느라 바쁘고, 대학생들은 학교 수업과 스펙을 쌓을 여러 활동들,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정말 시간을 쪼개며 살아간다. 직장인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9 to 6의 일과가 끝나고 나서도 저녁 약속을 잡아 인맥을 관리하거나 자기계발을 위한 학원을 다니거나,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운동을 다니느라 정말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정말 다양한 큐레이팅 서비스들이 나왔다. 일정 기간 구독료를 지불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해볼 수 있는 구독경제나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들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현대인들이 바쁜 일상 가운데 필요한 곳에만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누군가가 선별하여 제공하는 것들을 누리면서 시간과 에너지 모두를 절약하게 해 준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모토에 아주 충실한 것이다. 물론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별해내는 누군가가 믿을 만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어야만 이 큐레이션 서비스가 의미있어진다.


그런 견지에서 본다면, 도서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신뢰할 수 있는 큐레이터가 정성들여 문학들을 선별해 정리한 책이라 생각한다. 지은이 이현우는 로쟈라는 필명을 가지고 꾸준히 문학강의를 해왔다. 학부 때부터 박사까지 러시아어문학을 전공한 그는 러시아문학뿐만이 아니라 세계문학, 한국문학, 인문학 강의까지를 아우르며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엮어진 저서들도 있는데, 이번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역시 2012년부터 2020년 2월까지의 칼럼과 해설들을 엮어 만든 책이다. 전공자로서 문학을 오랫동안 공부했고, 이를 실무적으로도 꾸준히 다뤘던 사람이 선별한 문학 작품들이라면, 믿고 읽어봄직 하지 않을까? 이미 큐레이션 서비스에 익숙해져버린 나는 그렇게 지은이의 선택을 믿고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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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왜 점차 문학책을 읽지 않게 되었던 것일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문학이 삶에 있어 우선순위가 아니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대학교에서 인문대를 통폐합하고 실용적인 상경대나 공과대 같은 단과대학들을 더 키우려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학이 당장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이면에 깔려있다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좀 더 나가자면, 문학과 현실의 삶이 괴리되어 있다는 판단이 들어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데이비드 실즈의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를 소개하며 지은이는 이와 같이 말한다. "나는 문학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길 바라지만, 그 무엇도 인간의 외로움을 달랠 수 없다. 문학은 이 사실에 대해서 거짓말하지 않는다. 바로 그 때문에 문학은 필요하다." 그렇다. 문학은 인간이 느끼는 근본적인 외로움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외로운 개인의 곁에, 그것도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항상 서 있다. 그런 문학이 없다면, 우리는 지은이가 말한 바처럼 더 외로울 지도 모른다.


문학과 현실의 삶이 괴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문학이 삶에 어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문학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지은이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알렉시예비치는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인간의 심장을 가볍게 만드는 것,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문학이 한순간에 세상을 바꾸는 역할은 아니지만, 인간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역할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문학을 향유하는 것은 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준다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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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문학에 빠져죽지 않기"는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책들을 소개한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같은 구미 선진국들부터 문화대국인 러시아,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3개국에 이어 생소할 수 있는 남미 지역의 작품들까지도 두루 다루어 총 99편의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이 중에서 30%가 읽어본 작품이라 약간 한숨이 나왔다. 지금에야 소설을 읽지 않은 지 꽤 됐다곤 하지만 예전에도 책을 적게 읽는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읽어본 책이 30권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새삼 충격이었다.


99편의 책들에 대한 지은이의 글들을, 익숙한 작품이건 생소한 작품이건 모두 새로운 것을 보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그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바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세컨드핸드 타임"이다. 구소련을 겪었던 다수의 평범한 러시아인들을 만나 저자가 직접 인터뷰한 이야기들을 엮어 만든 이 책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벨문학상 수상이력이 눈을 끈다기 보다는, 사회주의건 자본주의건 일반 시민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너무나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왜냐하면 개인적으로 러시아는 가보지 않았지만, 구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을 방문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면 다들 잘 살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동유럽은 서유럽과 북유럽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편이라는 걸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그런 동유럽을 간다고 하면 대부분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베니아를 가는 편이다.(요즘엔 크로아티아도 포함해야 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발칸반도 국가들을 가보면 상황은 당장 같은 동유럽인 체코나 헝가리 같은 국가들과도 너무 다르다. 산업기반이 약하고, 낙후되어 있고, 사람들조차 여유가 없어보이는 게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 물론 발칸반도의 사람들이 러시아 사람들처럼 과거를 그리워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심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자본주의로 체제가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일상이 개선되는 느낌이 들었을지 의문스러웠다는 점이다. "세컨드핸드 타임"을 읽으면, 예전 발칸반도를 여행했던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다시금 생생히 떠오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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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현우의 글은 오랜시간 양질의 글을 접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있었다. 그런 깊이감 있는 글로 소개해주는 99편의 작품들은 활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어보고 싶어질 만큼 흥미로웠다. 알고 있기에 흥미로운 책들도 있고, 생소하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책들도 있었다. 문학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는 문학의 세계로 향하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다.

 

 



< 도서 정보 >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

 

지은이: 이현우

2020년 3월 3일 초판 1쇄 발행

140*210mm (무선)|468쪽|값 20,000원

ISBN 979-11-90277-29-7  0381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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