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총보다 강한 실 - 실은 왜 총보다 강력한가

글 입력 2020.03.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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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컬러의 말-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에서 '색이름'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들을 소개한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신작 『총보다 강한 실』에서는 그동안 다뤄진 적 없던 실의 역사에 주목한다. 총, 균, 쇠가 주류의 역사이자 힘의 역사라면, '실'의 역사는 총보다 강하게, 균보다 끈질기게, 쇠보다 오래, 인간의 역사를 움직여온 보다 우리 삶과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실과 직물을 만드는 것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일이 아니라 여성의 일이었으며, 그렇기에 기록된 글이라기보다는 입으로 전해진 것들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섬유 흔적이 발견된 동굴부터, 비단길의 흔적, 이집트 미라의 리넨까지, 실이 거쳐 간 역사의 흔적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다.


이 책에서는 직물과 실에 대한 13가지 이야기를 다룬다. 리넨으로 시체를 감싼 이집트인들, 고대 중국의 비단 제작의 비밀, 중세 유럽 왕족들의 레이스 경쟁 등을 만난다. 또한 남극대륙과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선택된 특별한 직물과, 인간 한계를 넘기 위한 우주복 이야기, 전신 수영복 이야기도 다룬다.


인류의 시작, 교역의 시작, 산업혁명의 동력, 과학의 발전, 그 모든 곳에 있었던 '실'. 이 책은 힘과 권력에 가려졌던 그 뒤에 숨은 인간을 따라가는 책이다. 엉킨 실타래를 인내심을 갖고 풀어내듯, 실과 직물의 흔적을 끝까지 찾아내 그것을 최초로 만들고 사용한 인물들과 그들이 움직여온 역사를 펼쳐 보인다.


작은 실 하나가 어떻게 역사를 움직였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라. '실' 하나로 풀어낸 역사의 참모습이 여기 있다. 그리하여 가느다란 실의 힘에 압도될 것이다.

 

*


책을 읽고 나서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실'의 소중함을 몸소 느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 생활의 기본적인 의(衣),식(食),주(住)  3가지 요소 중  '의' 를 이루는 것은 '실' 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러한 실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적이 없었나 싶다. 나에게 실이란 존재는 새로 산 옷에 보기 싫게 삐져나와 잘라 없애야 할 한 오라기의 존재였으니 말이다.


올해 졸업전시를 앞두고 재료와 물질의 특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가지고 있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재료에 따라서 비록 식상하게 느껴지는 평범한 주제라 할지라도 보다 큰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술작품에 실을 이용한 작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실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보면 더욱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서 소개된 13가지의 이야기 중 7번째 이야기인 [다이아몬드와 옷깃:레이스와 사치]의 내용이 가장 기억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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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entellière : 레이스 뜨는 여인

 


위 그림은 네덜란드의 작가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레이스 뜨는 여인이다. 페르메이르 그림의 특징인 진줏빛 회색, 노랑, 파랑의 색 조합이 인상적이다. 이 때문에 르누아르는 <레이스 뜨는 여인>의 작품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림 속에는 의도적으로 놓인 비유적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림 속 여인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며 우리 또한 사로잡히게 만들 뿐이다. 요즘에는 개인의 취향과 흥미에 따라 접해볼 수 있는 다양한 취미활동들이 있지만, 오래전에는 실을 이용한 취미들이 많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실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지며, 그들에게는 실의 존재가 단지 옷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재료에 불과하지 않았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나는 레이스야말로 환상적인 자연 세계를 모방해서 만든 것 중 가장 예쁜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영혼으로 만들어낸 어떤 발명품도 레이스보다 우아하고 정확한 기원을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가브리엘 샤넬 <릴뤼스트라시옹>-1939년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이 한 말이다. 이처럼 레이스는 우리의 몸을 보호해 주는 역할은 하지 못하여도 이를 통해 지위와 취향, 부를 과시하는 역할을 하며 남녀를 불문하여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았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여성복에만 사용되는 한정적인 재료인 레이스이지만 큰 사랑을 받았다니 신기하였다.


요즘 패션뿐만 아니라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뉴트로라는 단어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기는 경향을 뜻한다. 새롭게 창조된 레이스의 모습을 기대하며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해보게 된다.


책 속에는 [다이아몬드와 옷깃:레이스와 사치]에 대한 이야기 이외에도 실과 관련된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책을 통해 역사를 움직인 실의 위대함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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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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