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상의 특별함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의 일상 예찬
글 입력 2020.03.1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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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사람들은 일상이 파괴되었다고 말한다. 외출도, 모임도, 만남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이 상황이 각자에게 필수적이었던 무언가를 앗아갔다고 말이다. 나라에서는 이 사태를 비상 상태로 선포했다. 그런데 일상이 박탈당했다고 해서 기본적인 먹고, 자고, 씻는 생활을 멈추지는 않는다. 적어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한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습관과 버릇을 애써 지키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이 멈추지 않고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 자신이 습관적으로 엮어낸 일상의 시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상황이 제아무리 사람들을 억압해도 이제껏 사람들이 행해왔던 일상의 습관과 버릇은 빼앗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것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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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통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가르는 잣대를 흔들리게 한다.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하다 못해 눈에 띄지 않는 주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인공 스즈메는 계단 난간의 기둥에 붙어 있던 새끼손톱만한 스파이 모집 광고를 보고 엉겁결에 스파이가 된다.


스즈메는 스파이 부부에게 활동비 오천만원을 받고 스파이 부부에게 평범하게 살기 훈련을 받는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 마을 안내방송에서 암호가 담긴 문장이 들려올 때는 즉시 모일 것. 안내방송이 들리기 전 스즈메는 만약 암호문 안내방송이 송출될 때는 저 부부는, 자신은 어떻게 될지 걱정한다. 그리고 어느 날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 스즈메가 아이를 강에서 구하게 되고 스파이가 될 자질이 있다고 판단한 공안부가 스즈메를 추적한다.


스즈메는 자신이 사는 마을로 쳐들어오는 공안부로부터 스파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전을 일으키고 부부에게 돈을 돌려준다. 결국 스즈메를 뺀 나머지 스파이들은 다른 세계로 떠난다. 냉장고에는 아이 어머니가 사례로 준 오천만원이 들어 있고 거북이의 먹이를 매일 챙겨주어야 한다. 여전히, 냉장고에는 돈 오천만원이 들어 있고 그녀의 손에는 사료가 들려있는 하루의 반복이다.

 

특별해진 것 같지 않지만 스즈메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결단 내릴 수 있게 되어 곤경에 빠진 친구를 구하러 간다. 일상의 시간은 지나가기만 할 뿐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라는 이름의 매뉴얼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꼭 새롭거나 거창할 필요는 없다. 매뉴얼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도 없다. 단지 하루하루를 살면서 내가 투명인간처럼 존재가치가 없는 것인지 자문해보지 않고도 시간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영화는 특별함과 평범함을 대조시키면서 그 점을 강조한다.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스파이라는 특별한 이름이 평범하게만 보이던 사람과 상황, 생활을 특별하게 만든다. 음식이 맛있어서 사람이 몰려 여기저기 알려지는 일을 막기 위해 평범한 요리를 해야 하는 요리사가 그렇다. 사실은 요리를 잘 하지만 평범하게 보이는 일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 바꿔 말해 평범한 요리를 하더라도 그게 그의 실력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작 특별한 것처럼 보이는 공안부 사람들은 철봉운동 따위 일상적인 이야기만 한다. 그들의 대화는 첩보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화 같지 않게 평범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겉보기엔 일반 시민과 같은 스파이들의 대화는 거창하기 짝이 없다. 스즈메는 스파이가 되고 나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친구, 선배, 부모님은 스파이는 아니지만 저마다 독특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주인공의 스파이라는 명분은 일상에 활력을 주는 동시에 독특한 사람들 속 자신이 가진 특성이 그들의 독특함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마침내 스파이 조직이 해체되어 혼자 남았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이 투명인지 아닌지 걱정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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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일상을 잃어버렸다고 투덜거리지만 일상 속 습관과 버릇은 아직 각자의 곁에 남아 있다. 이 상황이 지나면 함부로 평범하다고 단정 지었던 일상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고 그런 소중한 일상 속 습관과 버릇을 특별하게 여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지루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손톱보다 더 작은 스파이 광고를 발견하는 데 있다. 모든 사람들은 매일 의무적으로 먹이를 줘야 하는 거북이와 스파이 광고를 만나는 예상치 못한 순간들을 가지고 있다. 매일 아침 스파이 광고를 상기하며 알람으로 암호문이 섞인 안내 방송을 듣지 않아도 사람들은 각자 특별해질 이유를 가진다.


사실 평범한 척하는 스파이라는 것, 다 알고 있다.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스파이 생활을 계속 영위하여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매뉴얼은 스즈메가 부여받은, 눈에 띄지 않고 살라는 지령과 다르지 않다. 스즈메가 친구의 일상을, 친구가 스즈메의 일상을 서로 부러워하던 것처럼 스스로는 특별함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평범한 척하지만 특별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육지에서는 특별할 것이 없는 거북이가 바다에서는 어떤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을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 평범함과 특별함 사이를 가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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