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는 게 뭘까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글 입력 2020.03.16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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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감독의 죽음으로 한순간 백수가 된 프로듀서 찬실을 그린다. 경치는 아주 좋지만 아주 부지런히 올라가야 하는 집으로 이사하고, 친한 배우인 소피의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된 찬실. 결혼은 못 해도 영화로 밥 벌어 먹고살 줄 알았지만, 영화가 없는 삶을 생각해봐야 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런 현실을 다시 한번 일깨우라는 듯, 찬실을 찾아온 영화제작사 대표는 말한다. 안타깝지만 찬실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이유가 뭐냐 묻는 찬실에게 대표는 찬실 같은 피디가 없어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영화였다고 말한다. 감독이 있기에 그 영화가 잘 됐던 거지 피디인 찬실이 있어 잘 된 것이 아니었다고. 그녀의 여태껏 삶을 모조리 부정시키는 말이었다. 영화에 온 삶을 바쳤던 찬실은 결국 포기하려 한다.

 

그런데 영화는 환상적 인물인 장국영을 만들어 내 찬실을 잡고 자꾸 묻는다.
 
“찬실씨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에요?”라고.
“찬실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라고
 
 
 
사는 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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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하지

 

 
산다는 건 뭘까.
 
꿈을 좇다 서보면 꿈을 이뤄 행복해지려는 것인지, 행복해지기 위해 꿈을 꾸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꿈이란 목표에 매일같이 목말라 달리다 보면 지금의 나는 희생정신으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찬실은 꿈을 위해 열정을 다했던 ‘그것도’ 삶이지만 ‘그것만’이 삶은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사는 게 뭔지 정말 궁금해졌다고. 그 삶 안에는 영화도 있다고 말한다.
 
길을 걸으며 바람이 불고,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는 일상을 느끼는 것도 충분한 삶이라는 걸 찬실은 소피의 불어 선생님인 영에게 배운다. 영과는 결국 좋은 누나로 끝났지만 사랑이란 감정도 오랜만에 느낀다.
 
그리고 왜 영화가 하고 싶었는지, 영화를 처음 시작했던 이유를 생각한다. 그리고 여전히 좋아하는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다만 이제부턴 프로듀서로서의 일이 아닌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무엇이 또 찬실이를, 그리고 우리의 지금을 살아가게 하는지는 계속 찾아봐야 할 것 같다. 5년이 지나 내가 사는 이유가 또 하나 나타날 수도, 20년이 훌쩍 지나서야 내가 사는 의미를 알 수도 있겠지.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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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할머니의 시를 읽고 울음을 터뜨리는 찬실을 보며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녹슨 철문을 열고 교회에 가는 할머니를 지난 추석엔 몰래 따라나가 놀래켰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가시나 뭐하러 나오노!” 하며 어여 들어가라고 손을 휘적휘적.
 
그럼 나는 '알겠다' 하고선 뒤돌아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계속 봤다. 총총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귀여운 뒷모습에 내가 헤아리려 해도 헤아리지 못할 세월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까만 골목으로 할머니가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었다.
 
42년생. 79 그리고 25. 54의 간극. 누군가를 얻고 누군가를 잃었던 그 시간을 가슴으로 이해하긴 멀게 느껴졌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찬실이는 집주인 할머니가 쓴 시를 읽고, 죽은 딸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울었던 걸까. 아니면 몇 년간 온 힘을 쏟아부은 일에 대한 결과에 상처 나고, 아팠던 마음을 위로하는 것 같아 울었을까.

 

어느 쪽이었든, 꽃처럼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을 묻고 지금을 사는 어른들을 보며 무수한 실패 앞에 다시 일어나 지금을 살 용기를 얻기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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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미에 찬실은 결국 하고 싶었던 영화를 만든다. 하지만 영화관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니, 찬실이 가장 좋아했던 홍콩 배우이자 영화를 안 한다고 비디오를 갖다버릴 때 의자에 앉아 울며 찬실을 째려본, 영화를 정말 사랑하는 찬실 자기 자신인 장국영만이 앉아있었다.

 

눈 덮인 긴 길을 달리는 화면이 계속되고 소피가 말했듯 재미없이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장국영만이 일어나 힘차게 박수를 친다.

 

그건 감독의 다짐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대본을 한참보다 “진짜 재미없어….”라고 고개를 푹 숙인 소피처럼 누군가는 재미없다 할 영화를 만들고 하겠다는 다짐. 그게 느껴졌다.

 

그런 단단한 마음이 용기가 되면서 위로가 됐다. 그래서 다 오른 것 같다가도 오른 게 아니라 내려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도 찬실이 읊조린 것처럼 내가 지금 믿고 싶고, 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내가 오늘을 다시 살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다. 전구를 사러 어둡고 깊은 산을 내려가는 찬실이가 든 손전등의 빛처럼, 그 믿음이 길잡이처럼 비춰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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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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