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가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는 방법 [문화 전반]

존스토리의 '대중문화와 문화이론'을 인용하여
글 입력 2020.03.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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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노예 12년을 봤다. 흑인 노예의 노동착취 및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으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영화였다. 인종차별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인종차별의 개념과 역사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다가 ‘존 스토리’의 <대중문화와 문화이론>에 있는 ‘인종’, 인종차별과 재현파트를 참고하여 인종차별에 대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분석을 살펴봤다. 본 책에서는 ‘인종’의 개념과 영국에서 인종차별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를 실제 사건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본 글은 인종과 인종차별에 대한

대중문화 이해적인 접근임을 명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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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인종차별



존 스토리는 인종의 개념을 인간 생물학에서 찾고 있다. “인간의 종은 하나” 이며, 사람들 다른 인종들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곧 인종차별이라는 것이다. 또한 폴 길로이 (Paul Gilroy)의 견해를 덧붙여 중요한 것은 인종차별이 어떻게 의미화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즉 사회적 및 정치적 위계체계의 측면에서는 인종차별이 어떻게 의미화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백인과 흑인은 분명 눈에 띄는 신체적인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생물학적인 차이일 뿐 인종차별은 의미화의 문제라는 것이다.


먼저 ‘인종’에 대한 분석은 인종차별의 역사적 상황을 아는 것부터 시작하며 서구의 인종 및 인종차별의 역사에는 세 가지 큰 사건이 있다. 첫 번째는 노예와 노예무역, 두 번째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세 번째로는 1950년대 탈 식민지화에 따른 이민이다. 노예와 노예무역에 관한 논의에서 처음으로 인종과 인종차별이라는 등장했고 공식화되었다. 분명 인종차별은 자연적인 결과가 아닌 인간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즉, 문화적 산물이며 인종차별이 없으면 인종이라는 단어는 무의미하다.

 



인종차별의 이데올로기 : 그 역사적 출현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는 ‘에드워드 롱(Edward Long) 의 저서 <자메이카의 역사>를 기점으로 수많은 인종차별의 정당성에 대한 저서들과 함께 발전되었고 19세기에는 인종을 우수한 백인과 열등한 타자로 나누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러한 천부적인 차이는 백인 유럽인들이 지구의 도처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정당하게 여겨졌으며 이러한 인식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백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특권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창조주는 흑인의 지위를 노예로 지정했다”는 토마스 칼라일 (Thomas Carlyle) 의 말은 당시의 인종차별이 식민지 정복을 얼마만큼 정당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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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칼라일 (Thoman Carlyle, 1795~1881, 영국의 평론가, 역사가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 는 탈식민지 이론의 기본 텍스트 중 하나에서 동방, 즉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서양의 담론이 어떻게 동양에 관한 지식을 만들어냈는가를 보여주며 또한 유럽 문화가 동방을 대용물이나 심지어 일종의 감춰진 자아로 대비하여 구분함으로써 권력과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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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 팔레스타인. 영문학자, 미교문학자, 문학평론가, 문명비판론자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으로서, 유럽 서양인의 경험 속에 동양인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에 근거하는 것이며 동양은 실제로 유럽이 그곳을 식민지로 지배하기 전부터 존재했으나 그 전의 동양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식민지가 된 동양만을 환산할 뿐이며 또한 오리엔탈리즘을 푸고의 담론 개념을 빌려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미셸푸코 (Michel Foucault)의 담론 개념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담론이 어떻게 동양에 관한 지식을 만들어냈는가를 보여주며 그 ‘권력-지식’의 관계 체계가 어떻게 서양의 ‘권력’에 이득을 주도록 만들어졌는가도 보여준다. 이에 덧붙여 달리 말한다면, 이것은 이데올로기적 가상의 체계이며 권력의 문제이고 그것은 서양이 동방에 대해 그 자체의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메커니즘 중 하나이다 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

 

앞서 논의한 모든 것을 토대로 이 책의 저자 ‘존 스토리’ 는 처음으로 돌아가 볼 것을 권한다. 앞서 설명했듯 ‘인종’과 ‘인종차별’의 대중문화이해론적인 시각으로 볼 때 앞서 설명한 것들이 대중문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어떠한 방식으로 의미화되는지를 확인하기에 앞서 할리우드와 베트남전쟁, 즉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하면서 의미화에 작업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결국 관심의 초점을 그 이야기들이 무엇에 대한 것이고, 또 어디서 일어났느냐보다는 그 사건들이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에게 어떤 ‘기능’을 하느냐로 옮겨놓는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풀려나가는가보다는 왜그런 이야기가 성립되었는가로 관심을 돌려놓으며,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보다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만든다.


미국은 더 이상 베트남에 대한 권한은 없지만, 미국의 베트남전에 대한 서양의 설명에 대해서는 계속권한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할리우드가 있는데 존 스토리는 1980년대 할리우드가 베트남전쟁을 특징지은 진리체계의 모델을 세 가지 내러티브 패러다임을 들어 설명한다.

 


 

상실



지옥의 7인, 람보, 플래툰은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중심소재로 한다. 이 영화들은 전쟁포로, 자존심, 순결에 대한 상실을 구성 핵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모양의 상실들은 더 큰 상실을 전치시킨 징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치를 통한 정치적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데 실제 역사적 맥락의 전쟁 개입을 정당화하고 상실과 실패를 실종된 것으로 바꿔놓음으로써 미군 포로를 찾아 구출하는 것은 실재의 역사적 맥락에서 베트남이 승리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이 승리하는 것이 된 것으로 보이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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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미국화



존 스토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으로 베트남전쟁의 의미가 할리우드의 베트남전쟁에서는 완전히 미국적 현상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베트남과 베트남 사람들은 미국의 비극을 연출하기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근원적인 잔인성을 곧 미국의 순결 상실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의 비극이며, 미국과 미국인들은 다만 그 비극의 희생자일 뿐이다“


이 비극으로 미국은 정신병적 증상에 빠졌고, 영화 플래툰의 역할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신 분열을 치유하는 것이었다고 마이클 클라인이 주장하듯이 전쟁은 비극적인 실수로서, 실존적인 모험으로서, 혹은 미국의 백인 영웅이 그의 정체성을 발견해 가는 통화 의례로서 탈문맹화되고 신비화된다.

 


 

전쟁에 대한 할리우드식 설명과 효과 및 유통단서 두 가지



첫 번째, 제1차 걸프전이 임박할 때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을 통해 ‘1980년대 미국의 수많은 강력한 목소리들이 '고귀한 주장이 배반당한 베트남 전쟁- 미국의 비극’이라는 가장 강력한 전쟁의 의미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 국민에게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라고 했을 때 미국인이 떠올린 그 기억들은 영화관에서 경험했던 전쟁, 즉 용기와 배반의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었다.

두 번째, 할리우드와 여타의 전쟁에 관한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들의 언급을 들 수 있다. 마리타터컨이 말하듯, 어떤 참전용사들은 그날의 기억 중 어떤 것이 실재이고 어떤 것이 할리우드 영화인지를 망각해 버렸다고 말한다. 베트남 참전용사인 윌리엄 아담스는 베트남전쟁은 더 이상 확정된 사건이 아니라 공동으로 함께 써나가는 유동적인 각본이다. 라고 말했으며, 마이클 클라스는 영화를 포함한 다양한 텍스트들이 전쟁에 대한 기억을 재구성하며, 전쟁을 통한 죄의식과 불신을 의무와 긍지로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할리우드 베트남 전쟁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유령과 불신으로부터 해방됐고 미국은 다시금 다음 전쟁에 대해 만반의 태세가 되어 있는 강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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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의 재현과 논의가 인종차별주의의 심각한 비인간적 담론을 비난하는 윤리적 의무를 수반하는 것이 불가피하며, 극히 정당한 일이라고 말하는 스튜어트 홀의 말에 나는 깊은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인종차별의 사회적인 배경과 문화는 그 모양이 수도 없이 다양하다. 우리 한국인 즉, 동양인도 인종차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며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으며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서부터인가에 궁금하기도 했고 완벽한 해결은 불가하더라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번 기회로 인종차별의 대중문화 소비방식을 알아가며 느낀 것이 있다.


인종차별 패러다임이 수 세기를 지나 사람들의 의식 세계에서 변모한 것처럼 어쩌면 그것도 많은 사건을 겪고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조금은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앞서 예시를 든 노예 12년은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백인이 60.7%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그곳에서 노예 12년과 같은 인종차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영화의 개봉과 이슈는 그들도 그 행동들이 잘못된 것이며 이미 사회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영화 ’기생충‘ 의 오스카 아카데미 시상을 두고 트럼프는 미국 영화가 시상했어야 한다는 발언을 했고 이것은 곧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사람들의 인식은 이미 출발점을 너머섰지만, 아직 먼 길임을 시사하는 바이기도 하다. 누구나 편견 없고 공평한 세상이 올까? 사실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적어도 태생적인 다름으로 차별하는 것만큼은 없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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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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