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줄임말에 대하여. TMI부터 JMT까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3.1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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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25년을 이 ‘빨리빨리’라는 정신에 집어삼켜진 사회 속에서 살다 보니 이제는 느린 게 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밥도 빨리, 일도 빨리, 식사도 빨리. 무엇을 하든지 조금 더 빨리 할 수는 없냐는 말을 귀에 달고 살았다. 누군가는 입에 달고 살지도 모르겠다. 너무 느려 터진 나머지 사람 속에 천불 나게 하는 것도 문제다만 너무 빠르게 하려다 사소한 것들을 놓치는 일이 많아도 그리 좋다고는 못 하겠다. 눈 깜작 할 사이에 달라지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탓에 우리는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빠름’만을 추구하는 시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그저 편안히 흘러가는 데로 흘러가야 할지는 내 인생 최대의 난제다.

 



줄이려다 졸여져 죽이 됐다.



국어사전을 뒤져보니 줄임말, 준말, 약어, 약칭 따위로 부르는 모든 말들은 결국은 같은 것들로 복잡한 언어를 간략하게 줄인 것이라 했다. 쉽게 말해 하나하나 다 부르려니 너무 길고 효율도 나쁘니 짧게 줄여서 쓰려고 만든 단어라는 뜻이다. 흔히 쓰는 Too Much Informaiton을 TMI로, 연방준비은행을 연준으로 줄여 부르는 것들이 예시라 할 수 있다. 사무 처리나 정보 교환에 있어서는 분량을 줄여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보다 합당하기에 줄임말 자체를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 줄임말이라는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게 된 것은 일상 속에서 나누는 소통 때문이다.


나를 제외하더라도 근래에 이 줄임말 자체는 화두에 오른 지 꽤 된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전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도 이래 저래 말싸움을 벌이는 글들이 꽤 많았다. 줄임말은 사용이 용이하여 효율적이고 빠르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기도 하고 특정 줄임말은 입에 감기는 어감으로 기억하기도 쉬운 탓에 광고나 SNS 등의 매체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혹은 특정 커뮤니티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유흥의 하나로 줄임말을 만들면서 하나의 언어 놀이로 자리잡기도 함을 근거로 하여 찬성파들은 줄임말을 꽤나 찬양한다. 물론 나도 이런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어디 하나 틀린 곳은 없기에 구태여 내가 반박을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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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앞에서 말했듯이 일상에서 벌어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는 보통 자신의 평소 생활, 어디선가 들은 지인의 소식, 상대방에게 궁금하던 것들 등을 주제로 하여 서로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보다 깊은 관계를 만드는 수단 중 하나다. 광고 매체, 기업, 학문 등의 여타 분야처럼 정보와 지식을 빠르게 전달하고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일상의 대화에서도 우리는 줄임말을 무분별하게 써 가며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애초에 실용적이고 신속한 대화가 목적이라면 집 밖으로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기보다 애플리케이션이나 디지털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 보다 나음은 누가 입 아프게 떠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다.


즉, 일상의 대화는 그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줄이려다 너무 줄였다



사람들은 어느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아라 불렀다. 정말 아~아~ 탄식이 나온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문장이 어느새 자만추라는 기이한 용어가 됐다. 스타벅스라는 짧은 이름은 스벅으로 더 짧아졌고 줄임말로도 모자라 괄도내냄띤같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단어까지 튀어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z세대의 일원으로 이런 시대를 연 장본인에 해당하는 세대지만 어딘가 속이 불편하다.


이제는 줄임말 없이는 대화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불편은 더 심해지고 걱정까지 밀려온다. 이런 불편과 걱정은 강사로 일 하던 시절에 자기소개서를 볼 때나 국어 시간에 비문학 문제를 푸는 학생을 볼 때나, 대학 후배들의 리포트를 첨삭해 줄 때나, 집에서 인터넷으로 사람들의 독서량이 점차 줄어간다는 글을 볼 때에 더욱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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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의 근본적인 원흉은 줄임말이라 해도 직접적인 원인은 줄임말로 인해 사람들이 점차 논리와 사고력을 잃어가는 것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게 무슨 괴변인가 싶을지도 모르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 또한 존중한다. 나의 시선에 비추어진 이 세상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대상을 줄이고 또 줄여 부르다 보니 그 대상들이 지닌 본래의 이름은 의미를 잃어버리거나 못해도 퇴색됐다. 그렇게 대화를 통해 살아나는 언어의 맛은 점차 밍밍해지고, 줄임말로 인해 점점 짧아지는 대화를 하다 보니 사람들은 길고 세세하게 읊는 방법과 그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러니 당연히 논리적으로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설득시킬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길게 읽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익숙지 않으니 논리의 정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비문학은 읽는 것만으로도 벅차 한다. 읽기가 힘드니 당연히 내용은 파악하지도 못 한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을 글로 소개해야 하는데 이건 어린 시절에서 현재를 잠시 거쳐 다시 중학생 시절로 갔다가 초등학생으로, 또 거기에서 고등학생으로 오니 읽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다. 글만 빽빽하고 문장으로 가득 들어찬 책은 그 두께만 눈에 들어와도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점점 길고 자세한 것들을 기피하니 점점 짧고 얕은, 재미는 있어도 의미는 없는 언어들만 쏟아져 나온다. 소비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생산만 넘쳐나는 지금의 이 시대는 언어의 대공황은 아닌가 싶다.


이전에 읽었던 한 기사에서 참담한 수치를 접했다. 통계 자료를 수집한 표본 대상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시대를 한국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집중력은 약 8초, 하루에 10분 이상 독서를 하는 인구는 10명 중 1명 꼴, 거기에 연평균 독서량은 8.3권이라고 했다. 이 수치를 글로 풀어보자면 오래 집중을 못 하니 긴 글로 꽉 찬 것은 찾지도 않고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책을 안 읽게 됐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뭐든 줄여서 짧게 부르고, 그렇게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 한 문장이 짧아지니, 집중하는 시간조차 줄어들었음이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이고 줄임말이 싫어지는 이유다.

 



From TMI to JMT



너무 많은 정보를 지나치게 긴 글로 늘어놓거나 장황한 연설로 떠들어대는 행위는 불필요하다. 언제나 다다익선과 과유불급 사이에서 저울질하기 바쁜 인생인지라 어느 하나가 딱 맞다고 할 수는 없고 상황과 목적에 따라 달라지기에 불필요하다는 것도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도록 언제나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 언어라는 세계의 무게를 조절하는 우리의 역할이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음에도 그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내어 ‘적당히 길고 적당히 짧게’ 말하고 쓸 줄 알며 읽을 줄 아는 사람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TMI에서 JMT로 이어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어지는 선이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는 전적으로 양 쪽을 하나씩 잡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이의 선을 만들 재료를 고를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두 단어를 양 쪽 끝에 던져 놓고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단어들을 이어 붙여 놓기만 한 조잡한 선을 볼 때는 얼마나 버틸지 불안하기만 하다.


TMI에서 JMT로 이어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좋다. 이 커피는 향은 고소하지만 반대로 맛은 꽤 상큼해서 여운을 즐기고 싶다. 이 하나의 문장이 쓸데없이 길 수도 있고 적절한 묘사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이 TMI를 아무렇지 않게 뱉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 속에서 나는 그 모든 대화를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모두 주어 담아 JMT라는 상자에 담아 내 기억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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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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