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없는 불안 속에서 마음의 지지대가 되는 일 [사람]

코로나19 확산 이후
글 입력 2020.03.10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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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 동아리 회의를 위해 잠시 외출한 것을 빼면 나는 지금 7일째 집 안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분명 2주 전까지는 그래도, 3일에 한 번씩 약속이 있었는데. 죄다 취소되어 텅텅 빈 달력에 마음도 덩달아 허했다가. 적응되고 나니 집 안이 이렇게 포근하고 아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조금 어이없다.

 

거의 하루 종일 티브이를 켜 놓는 편인데, 오전 10시경에 한번 그리고 오후 4시 즈음에 한번. 총 두번 그날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 현황을 알려준다. “최악의 경우 국민의 40% 감염, 연말까지 갈 것” 화면에 찍힌 글자와 숫자들이 이렇게 공포스러운 적이 없었다. 다들 이야기한다. 꼭 영화 보는 것 같다고. 그래, 현실은 허구보다 더 허구 같은 곳이었지.

 

각자의 생활이 뚝뚝 떨어진 것처럼 보여도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느낀다. 그 연결 고리를 타고 바이러스는 곳곳으로 흘러든다. 바이러스로 위축된 경제는 자영업자의 삶을 쥐어짠다. 대구에는 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족한 병실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마스크 수출을 금지했고, 진찰과 격리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징역과 벌금을 내도록 했으며,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이 상황을 틈타 돈을 벌어들이려 하는 사람도 있고, 공포 심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와 응원 그리고 기부하는 이들의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이 집단적 경험은 단순히 ‘전염병’을 넘어 사회, 정치, 심리, 경제 곳곳에서도 생채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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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에도 피해가 적지 않다. 단톡방에서는 예정된 공연이 취소되어 준비한 비행기 티켓과 의상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거나, 취소된 공연으로 인한 급여 문제가 발생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엄청나게 기다리던 전시가 있었는데, 코로나로 2주간 연기되었다. 그렇지만 정말로 2주 뒤에 문을 열 수 있을까? 열어도 되는 걸까? 언제쯤 다시 미술관의 문을 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기다리던 포럼과 총회도 모두 취소되었고, 각종 대외활동과 동아리 엠티도 취소되었다.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로 불리는 ‘아트 바젤 홍콩’도 취소되었다. 아 이거 진짜 전 인류적 문제구나. 안 그래도 말 많고, 탈 많은 문화예술계가 위축되니 긴장감이 배가 된다.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란 말이야! 코로나19에게 귀가 있다면 그 안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면 꿀밤이라도 한대 어떻게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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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중국 혐오에 대한 댓글이 많았다. ‘쟤네는 인간이냐, 박쥐를 왜 먹어’ ‘중국은 어딜 가나 민폐네’ 그에 대한 반박 글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개고기를 먹지만 그건 전체가 아니라 일부다’

 

유럽에 방문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바이러스 옮기지 말고 돌아가라는 폭언을 퍼붓는 동영상도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다.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단어 사용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갖고 있어서 용어 하나로도 혐오는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었다.

 

모든 혐오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같은 하나의 무엇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다. 동물 착취, 인종차별, 젠더 이슈. 달라 보이지만 실은 ‘내 일이 아니다’라는 일종의 분단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대구의 확진자들은, 우한의 격리자들은 누군가의(우리의) 가족이다. 그건 곧 ‘나’라는 개인의 일이 된다.

 

모리셔스로 신혼여행을 간 한국인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창문 하나 없는 방에 가둬졌다. 1년 넘도록 영국에서 살았던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격리 조치를 당했다. 혐오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결국 ‘나’에게 되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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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외침은 약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응원하는 행위의 일종이다.” 어제는 우한에 격리된 궈 징이 위챗에 올린 일기를 읽었다. 저녁 8시경에 아파트 창문을 통해 ‘힘내라 우한’이라는 목소리 하나로 시작된 메아리는 끝없는 불안 속에서 마음의 지지대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오늘은 우리 집에 택배가 3개나 왔다. 내가 주문한 면 마스크 2개, 엄마가 주문한 소독약과 마스크 필터. 늘어난 배송량에 여전히 생필품과 마스크를 전달해 주시는 기사님들이 있어 오늘도 불안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는 의자에서 쉬고 있는 대구 의료진의 사진을 봤다. 800명의 의료진이 자원하여 대구 경북으로 간다고 했다. 신뢰와 유대 속에서 서로가 연결됨을 느끼는 일은 안도감을 준다.

 

아,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탓’하는 건 쉽다. 나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누군가를 원망한다. 그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가 이러지 않았더라면. 중국인들이 박쥐를 먹지 않았더라면, 신천지 교인들이 자신의 증상을 숨기지만 않았더라면. 그러면서도 그 속의 폭력과 억압을 생각해본다. 혐오와 불신의 말 대신 내가 뱉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물론 시스템의 허점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그래서 정부는 그 이름으로 해야 할 일이 있고, 언론인은 그 이름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나의 이름으로 해야 할 일이 뭘까 생각해본다.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 에이미는 ‘별거 아닌 이야기를 누가 읽겠느냐’는 이유로 글쓰기를 망설이는 조에게 이런 말을 한다.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쓰는 것이 아니라, 계속 써나가기 때문에 중요해지는 거야.”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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