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컨테이젼'으로 보는 코로나19 [영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영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글 입력 2020.03.0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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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거리에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없다. 미세먼지로 인해 떠들썩할 때도 이 정도 대란은 아니었는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경기 침체 현상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점차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무고한 목숨을 잃고있다. 불어나는 숫자의 희생자들과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발병원인과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역대 그 어떤 전염병보다 사람들의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영화 <컨테이젼>, 코로나19를 예견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2011년 개봉한 미국 영화 컨테이젼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예견이나 한 듯 현실과 닮아있는 내용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각자 서사를 지닌다. 원인 모를 질병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남자, 막대한 책임감과 신념으로 백신을 개발하는 박사,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이용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사람, 그저 이 상황이 돈벌이일 뿐인 사람, 상황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 이제는 전염병 피해의 당사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이 모든 인물들이 지닌 각자의 사정은 관객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하지만 전염병과 관련한 재해를 다루는 전형적인 소재와 흐름은 다소 아쉽다. 이처럼 평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질병에 얽혀있는 사회적 이해관계들과 실질적 비용 문제 같은 이슈들은 소름 돋을 정도로 현실과 유사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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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어두운 양면의 모습을 그리다



영화는 전염병 발병 2일 차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1일차 발병 원인을 밝히며 끝이 난다. 점차 전염병이 퍼지고 심화되는 과정에서 각 정부는 질병 발원지에 대한 발표를 미루는 등 서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책임 미루기는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지난 25일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의 ‘코로나19’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한 기자는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앨릭스에 이자에게 중국의 입국 제한 조치를 완화하고 한국, 일본, 이탈리아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안하는 다소 황당한 질문을 내놓았다. 코로나19의 발원지이자 최대 수의 감염자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 기자의 발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무책임한 발언은 다수의 대중들에게 분노를 사기도 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 후 부자 된 사람들 많아요. 감기약이랑 살균제 만든 사람들이요. 누군 죽고 누군 돈을 버는 거죠.”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제약회사의 의도적인 연극이라는 괴담 아닌 괴담이 알게 모르게 돈다. 이처럼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는 구설수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 이는 인류의 재해인 전염병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영화 속 블로그 기자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염병 사태를 악용한다.


물론, 이를 악용할 것을 대비해 현실에서는 점차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유튜브는 코로나19관련 콘텐츠에 수익창출을 불가하는 제한을 내놓았다. 하지만 마스크 품귀현상으로 발생한 가격 폭등과 사기행위 등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대사이기도 하다.

  


“악수의 유래를 아니? 낯선 사람한테 무기가 없는 걸 보여주는 방법이었어”


 

접촉으로 전염되는 병을 다루는 영화에서 ‘악수’는 그 의미가 특수하다. 영화에서 전염병을 해결할 수 있는 백신을 추첨제로 순번에 따라 제공하는데 이와는 무관하게 백신을 우선 부여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끼리는 악수를 하며 거래를 성사시킨다. 여기서 악수는 그들의 결탁을 의미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상대의 손을 맞잡는다는 것은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무기를 들지 않아도 안전할 수 있는 고위층의 고상함과 위선을 보여주는 인사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통 시민들은 구호물품 하나를 위해 두 손에 무기를 들고 밟고 일어선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총을 겨눠 백신을 얻지만 그마저도 가짜였던 최하위층의 모습 또한 영화 속에 담아 사회구조의 아이러니함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한국판 <컨테이젼>, 우리가 만드는 결말


 

10년 후 쯤, 코로나19라는 제목의 재난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신천지로 인해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마스크 공급의 한계로 불안감이 점차 고조되는 이 시점에서 국가와 국민들은 어떤 선택으로 나아가야 할까. 영화는 엔딩을 지니지만 현실에 엔딩은 없다는 점에서 현 세태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영화에서는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이란 이기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점에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의 선행들과 그들의 영향력, 그리고 본인들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분들의 노고를 보고 있자면 한국판 코로나 19의 엔딩은 컨테이젼보다 훨씬 극적이고도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장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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