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전히 '화나 있을' 우리가 나눠야 할 이야기 [도서]

강화길 작가의 『다른 사람』과 『음복』
글 입력 2020.03.04 09:2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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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가을2019.jpg

 


『소설 보다: 가을 2019』에 실려 있는 강화길의 한 인터뷰는 인상적이다. 한국 사회와 문학장에 일어나고 있는 젠더 불평등에 대한 논의와 변화에 관해 묻는 질문에 그는 “여전히 화가 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단명한 대답처럼, 그가 풀어내는 여성의 이야기는 날카롭고 직설적이다. 인터뷰 속 이 짧은 답변이 그를 강렬하고 정확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듯 보인다.


최근 2020젊은작가상에 강화길의 단편소설 『음복』이 선정되었다. 『음복』은 여성들에게 유전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섬세한 포착이 돋보인다. 또한 과거 2017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던 『다른 사람』  역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가해지는 폭력과 침묵을 다룬다.

 

두 작품은 숨겨진 진실로 파고드는 진행방식을 가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수수께끼처럼 시작하는 두 이야기는 긴장감 있게 서술되며 독자를 집중시키고 그 분위기는 어딘가 서늘하게 가슴을 찌른다. 이야기가 단순히 소설만의 목소리가 아니기에, 그 개인적인 이야기가 공동의 문제로 가닿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사람』


 

소설은 데이트폭력과 인터넷 악성 댓글의 피해자인 진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진아는 피해자이지만 신상이 인터넷에 까발려지고 댓글에 시달리며, 회사도 그만두게 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머무르며 모니터만 들여다보던 진아는, 그중 과거를 후벼 파는 트위터 게시글을 보게 된다.

 


“김진아는 거짓말쟁이다.

진공청소기 같은 년.”



그 글은, 진아의 21살 대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분명 동창 중에 그 범인이 있을 것이라 확신한 진아는 대학교가 있는 곳이자 고향인 안진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진아는 글의 주인을 찾으며 21살, 동기였던 수진과 유리, 그리고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의 전말을 보게 된다.


소설은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인터넷으로 공론화된 성폭력 피해와 피해자 비난, 가해자 숨기기, 신상털기의 과정이 나온다.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성폭력 상담의 현실과 ‘준강간’이라는 단어의 문제점도 짚어준다. 또한 진아는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피해자들은 현실 앞에서 입을 닫고 침묵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소설은 이제 독자에게 다음을 넘겨준다.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라고. ‘너’는 소설 속 유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독자들에게 건네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침묵하지 않고 대답하는 우리의 연대를 부르며 이야기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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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복(飮福)』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오게 된 세나의 시선으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다. 독자는 세나의 시선에서 인물과 상황을 추적해간다. 세나가 들어오게 된 이 집안에는 남편이 말해 주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다.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소설은 집 안마다 한 명씩 있는 악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어떤 악의를 표현하는 사람. 다른 식구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인간.”이라는 공감할 수 있으면서 시선을 끄는 ‘악역’이라는 소재를 시작으로 소설은 집안의 전말을 파헤치며 긴장감 있게 진행된다. 세나의 시댁에서 악역은 고모가 맡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세나에게 고모가 집안에서 맡고 있는 이 역할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소설을 시작하는 첫 문장처럼, 남편은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주인공 세나에게, 남편은 모르고 오직 세나에게만 드러나는 이곳은 역겹다. 게걸스럽게 빨갛고 느끼한 고기찜을 포식하는 남편. 고기찜을 포식하며 정말로 복(福)을 받고 있는 것 같은 남편. 그는 이제껏 자라오면서 얼마나 그런 식으로 아무 생각 없이 남을 포식하며 살아왔을까. 소설은 세나의 시선으로 남편을 조명하며 ‘무지의 권력’이라는 가부장제를 잡아낸다.


다시, "너는 아무것도 모를 거야.".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 첫 문장이 다르게 읽힌다. 남편을 단정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닮았을 딸에게 하는 세나의 결심이구나. 정말로 그럴 수 있을까? 세나는 시어머니가 하던 것처럼 르쿠르제 냄비에 시큼하고 느끼한 토마토 고기찜을 만든다. 그리고 남편은 여전히 혼자 우악스럽게 음식을 먹어 치운다. 여러 감정이 가라앉아 있는, 평온하고 해맑은 남편. 남편처럼 '아무 것도 모르며', '비릿한 증오도 품지 않는' 모습을 세나의 딸이 가질 수 있을까.


*


소설로 마주하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으며 우리는 화가 난다. 논의와 변화는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전히’ 화가 나지 않을 때까지, 필요 없어져 공중에 분해될 때까지 말이다.

 


"참… 시시하지?"


 

『음복』의 마지막 문장처럼 이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참 시시하다. 우리에게 너무 가까운 이야기라서, 익숙해서. 가부장제의 유전을 끊고 싶다는 세나의 바람도 낯설지 않고 시시하다. 그 시시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우리는, 계속 화를 내며 계속 하고자 한다.

 

 

[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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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꾸꾸
    • 최근 음복을 읽고 강화길 작가의 빅팬이 된 독자입니다
      왜 이 작가를 이제서야 알았지? 싶어 이전 작들도 하나씩 찾아보고있는데 정말 주관과 분노의 방향이 뚜렷하고 단단한 작가 같더라구요. 무엇보다 소설들 구성이 독특하고 배치가 소름돋게 잘 되어있던 게 인상깊었어요. 머리를 정말 잘 쓴 느낌..
      제가 이 작가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음복은 청소년 교과서에도 실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네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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