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돌아올 것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도서]

최인호 소설 깊고 푸른 밤을 읽고
글 입력 2020.03.0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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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가수였던 마리화나 중독자 준호. 그리고 글을 쓰다 분노에 찬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놓으려 미국에 온 ‘그’. 그들이 바다로 가는 여정을 그린다. 둘은 주소만 아는 어느 집에 묵었다가 바다를 볼 심산으로 1번 도로를 따라 내려가려고 한다. 그런데 지도를 보던 ‘그’가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246번 도로로 빠지게 된다. 상념에 휩싸인 ‘그’가 충동적으로 준호의 마리화나를 뺏어 피우고는 도로 난간을 넘는다. ‘그’는 해안으로 굴러떨어진 후 바닷가 바위에서 안식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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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이야기는 여행에서 무엇을 했나 보다는 왜 여행을 떠나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여행에서 일단 그들은 방황한다. 방황은 자신이 낯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낯설어진 자신을 보듬는 과정은 이성의 상실을 동반한다. 예를 들어 준호가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무언가를 계속 집어먹는데 이는 이성을 잃고 생존을 위한 결핍의 해결에만 집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신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은 맨 정신일 때는 인정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가진 게 없어도 격렬하게 허풍을 떨기도 한다. 준호가 금방 끊어질 전화를 돌려 허풍을 떠는 모습에서, 화를 내고는 금방 허무함을 느끼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이성이 상실된 모습이다.


또한 방황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이라 할 만한 이미지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는 새로운 풍경 한편의 그림자에서 찾아낸 어린 날의 그림자놀이의 단상을 어느 순간 떠올린다. 준호는 가족의 녹음된 목소리를 차에 가지고 다니면서 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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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떠올림은 ‘그’가 다시는 만나지 못할 낯선 것들 앞에서 여행의 인상을 붙잡아 두려는 노력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여행을 하면서 낯선 것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 각각의 만남은 곧 사라진다. '그'의 노력은 그런 만남의 임종과 마주하면서도 그것을 기억해두려는 노력이다. ‘그’는 방향을 잃은 사람이 별과 나이테를 보고 방향을 잡듯 먼 훗날 떠올릴 기억들을 준비해 놓으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그’가 떠올리는 나침반과 같은 기억들은 어린 시절 하던 그림자 놀이의 잔상이다. ‘그’는 방향을 찾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방향의 길잡이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채 헤매고 있다. '그'는 그것을 깨닫고 해변의 바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게 된다.


한편 방랑벽과 마리화나라는 습성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한 준호는 돌아갈 것을 선언하지만 차는 고장 나버린 뒤였다. 바위 위에서의 포기와 차 안에서의 절망.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 때, 그들은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망명을 한 것일까. 보다 큰 자유를 위해서 망명을 떠나온 것일까. 분노로부터의 망명인가, 숨 막히는 일상으로부터의 망명인가."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망명한 것이다. 일상도, 여행도 지나가는 시간이다. 모두 다시없을 한순간 속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일상의 다시없을 그 익숙한 순간을 감사하기 위해 떠나온 것이다. 낯선 순간 속에서 익숙한 순간을 떠올릴 수 있기 위함이다. 익숙한 것들을 위해 낯선 곳으로 떠난 것이다.


'그'는 준호가 아무것도 보지 않기 위해 떠나온 불감증 환자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은 죽기 위해 떠나온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낯선 해변의 바위 위에 눕기 위해, 익숙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떠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방황하면서 익숙한 것을 떠올리는 그들은 이제 낯선 곳에서의 여행을 일상화하려고 시도한다. 낯선 곳에서 헤매다가 낯선 곳을 낯설어하지 않고 머무는 것이다. 사실 낯선 곳에서의 내려놓기, 털어놓기이다. 낯선 곳에서의 방황은 익숙한 나를 던져버린 일탈도, 정처 없는 유랑도 아니다. 다만 나를 마주 대하고 솔직하게 나의 처지를 인정할 수 있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다.


결국 그 과정의 끝이 나를 찾은 곳, 즉 목적지가 되고 거기에 다다르게 하는 것은 아내와 아이들의 녹음된 목소리와 같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익숙함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자문하다가 허풍을 떨며 낯선 길로 접어든다. 이는 방랑벽과 마약으로 점철된 준호의 인생과도 같다. 준호 곁의 ‘그’는 스스로 여행을 결심하고 미국에 와 준호를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목적 없는 방황이다.


바다를 보기 위해 1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한다. 하지만 다른 길로 가더라도 바다가 보이기는 한다. 정작 바다를 보기보다 자신과 마주한 것에 충격을 느끼는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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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을 하고, 익숙한 것을 떠올리면서 잊고 있었던 그들의 목적지를 향해 가려고 한다. 그들의 목적지는 바다이다. 그들은 바다를 갈구하고, 경로를 벗어날까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 할까 봐서가 아니라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뒤처리가 신경 거슬리기 때문이다. 사실  왔던 길을 되짚어가기가 두려운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과거 자신의 잘못을 그냥 지나쳐서 어디로든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도, 잘못도, 전부 자신의 익숙한 일부일 뿐이다. 목적지는 먼 곳이지만 바로 자신 속에 돌아갈 곳이 있었다. 바다를 보려면 해안선을 끼고 달리는 1번 도로가 지름길이지만 잘못 들어간 246번 도로에서 난간을 넘으면 바로 바다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바다를 바로 옆에 두고도 앞으로만 가면서 바다에 닿기를 소망했던 그들이 길을 잃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향해 운전해 가면서도 다른 생각에 빠져 각자 자신의 익숙한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돌아올 것을 약속하지 않았지만 그곳을 그리워하는 길 잃은 부메랑들이었던 것은 아닐까.

 


[김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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