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여신들도 할 말 많습니다 -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글 입력 2020.02.2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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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아_포스터.jpg

 


<시놉시스>


제우스의 명으로 올림포스의 12신이 소집된 날. 모임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게 된 헤라와 아프로디테, 그리고 아르테미스.


과거 아름답고 도도하기로 유명했지만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에 질투의 화신으로 전락한 헤라, 사랑의 여신으로 불리며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지만, 실상은 매일 밤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욕정의 여신 아프로디테,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서슴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오리온을 깊이 사랑하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가벼운 참견으로 시작된 세 여신의 대화는 점차 서로에 대한 비난으로 변해가며 숨겨진 진실들이 드러나는데...


본인의 능력을 꽃피우지 못하고 남편 뒤만 쫓는 한심한 여신이 되어버린 헤라, 진실한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듯 색을 탐하는 데만 집중된 아프로디테, 본인의 욕망을 접어둔 채 처녀임을 고집하고 집착하는 답답한 아르테미스. 서로를 비난하던 그들이 마주하는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그들은 과연 비난의 칼날을 거둘 것인가?


 

어렸을 때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미있게 읽었다. 헤라와 아르테미스, 아프로디테는 책 전권에 걸쳐 등장하는 비중 큰 신들이었기에 그림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다만, 내 호불호는 명확했다. 세 명의 여신 중 아르테미스를 가장 좋아했고 헤라와 아프로디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인 헤라는 제우스의 아내로 여신들 중 가장 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만화책 속에서 그 힘은 제우스가 사랑한 여자들에게 분노하며 복수를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기억 속 헤라는 늘 눈썹을 치켜세운 화난 표정이었다.


미와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다른 이들을 유혹했다. 왠지 어렸을 때부터 겉으로 보여지는 아름다움과 관능에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아프로디테가 부도덕한 존재로 여겨졌다. 특히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했음에도 그의 잘생긴 형, 아레스와 바람을 피우다 걸린 장면이 눈에 선하다.

 

반면 아르테미스는 앞의 두 여신에 비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좋아하는 여신이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치관이 잡혀 있지 않은 때에도 순결을 지키며 숲에서 사냥하는 데 시간을 쏟는 아르테미스는 고고하고 멋있어 보였다.


 

헤아아 공연사진 3.jpg

 


지나고 보니 의문이 남는다. 어린 나는 제우스의 잘못보다 그 잘못에 반응하는 헤라를 더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아프로디테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와 놀아난 남자들보다 아프로디테가 더 눈에 띄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책에서 헤라나 아프로디테가 그다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화 역시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사람의 시선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여신은 신이면서 동시에 여성이여야 했고, 그에 따라 신임에도 당대 사회가 여성을 대하던 방식에 맞게 그려지곤 했다.


예를 들어, 아프로디테와 헤파이스토스의 결혼은 공을 세운 헤파이스토스에게 제우스가 '보상'으로서 아프로디테를 선사하며 성립된 것이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황금 사과를 하필 여신 세 명이 발견하여 탐을 내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 그 사과를 차지하기로 한 뒤(심지어 아테네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인데도 여기 동조했다는 게 어릴 때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선택을 인간 남자에게 맡긴 '파리스의 사과' 이야기는 세상이 여성을 바라보던 방식, 또는 여성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된다.



헤아아 공연사진 1.jpg

 


물론 신화에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자연 현상이 함축되어 있기에 신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인간으로 치환하여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신화적 맥락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전달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왜곡된 성의식을 내면화하는 데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렇게 질투하는 여자, 색을 탐하는 여자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리잡는다. 사람의 인식이 신화에 반영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화가 다시 사람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여신을 바라보는 눈과 오늘날 이 세상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눈은 서로 다른 눈이 아니다.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우리가 이런 눈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 눈은 우리의 마음 속 깊이 박혀 현실을 왜곡하고 선입견을 강화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무언가를 바라보기 위한 눈만 있는 게 아니라 입이 있고, 입으로 전하고 나눔으로써 타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언어가 있다. 말이 있다. 신화 속에서 축약된 이미지로, 남들이 말하는 이야기로 존재하던 여신들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뭔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도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 페미니즘 입문극 -



일자 : 2020.02.29 ~ 2020.03.29


시간

평일 8시

주말 3시

월 쉼


장소 : 콘텐츠 그라운드


티켓가격

전석 40,000원


주최/주관

창작집단 LAS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90분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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