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악은 의지인가 행동인가? [공연]

글 입력 2020.02.2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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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스 까라마조프.jpg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포착한 문제의식




악(惡)은 의지인가, 행동인가?


 

이 질문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문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나치의 부역자로 재판을 받았던 문맹 여성 ‘한나’의 투박한 눈을 보았던 날이었다.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말, 상관의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악한 행동이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 행동으로 초래된 살육과 학살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영화 ‘더 리더’를 봤던 6년 전에는, 악(惡)을 판단함에 있어 구체적 행위의 결과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심지어는 500만 명이 넘는 유대인 학살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아돌프 아이히만도 ‘나치의 믿음을 배반할 수 없었다’라며 항변하지 않았는가. 아이히만의 숨은 의도가 선량했다는 주장은 그 진위를 제쳐두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유대인 유족들에게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대작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접하며, 기존과는 반대의 관점에서 의지로부터 비롯되는 악(惡)의 파괴성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끝내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았더라도, 타인을 맹렬히 증오하며 살해의 의지를 갖는 일도 악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아버지 표도르 까라마조프의 세 아들, 드미뜨리, 이반, 알렉세이는 친부살인의 범인이 아니었다. 표도르를 살해한 것은 그의 사생아이자 하인이었던 스메르쟈코프였다. 그러나 드미뜨리, 이반, 알렉세이는, 정도는 다를지언정 각자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법적으로 살인의 주체가 아니었지만, 윤리적으로는 친부 살인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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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뮤지컬의 형태로 각색한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위의 문제의식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아버지 표도르와 네 아들, 총 다섯 명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성해내며, 그중에서도 특히 둘째 아들인 ‘이반’의 고뇌를 잘 표상했다. 이반은 자신의 풍부한 학식과 무신론자로서의 정체성에 자부심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사실 냉철한 이성주의자가 아니라, 낭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다가 뒤틀려버린 이상주의자다. 이반은 온갖 논리적인 근거를 들며 드미뜨리를 살인자로 몰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의 복잡한 내면에 은닉된 더 중요한 이유는 드미뜨리의 약혼녀에 대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이었다.


표도르를 살해한 숨겨진 넷째아들, 스메르쟈코프는 이반의 추종자였다. 그는 자신의 범행 동기가 ‘이반이 표도르의 죽음을 원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반은 모든 것이 전부 헛소리라며 소리치지만, 그의 안에서 숨쉬는 ‘까라마조프’의 피가 속삭인다.

 


 사실 네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라고, 행동은 스메르쟈코프가 했을지라도 의지를 불어넣은 사람은 너였다고.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관전 포인트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장점을 한 가지만 꼽아야 한다면, 나는 단연코 ‘단순성의 미학’을 말할 것이다. 이 뮤지컬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원작이 지닌 종합 소설로서의 방대함을 전부 담으려다가 차고 넘쳐버리는 공연이 아니다. 본 글에서 지적했듯, 친부살인의 주제를 중심에 두고 악(惡)의 특성과 기원을 파헤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가 펼친 단순성의 미학은 내용의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에서도 웅장한 오케스트라로 비극성을 강조하기보다, 피아노 한 대의 선율로만 극 전체를 꿰뚫는다. 피아노의 음색이 다른 악기에 비해 단조롭거나 평이하다고 느꼈던 사람이라도,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노래와 피아노가 어우러지는 순간엔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게 될 것이다. 피아노는 88개의 건반으로 무한대를 창조해내는 악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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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약간의 스포 있음


이 뮤지컬에서는 배우들의 목소리도 악기가 된다. 특히 알료샤 역을 맡은 김준영 배우의 청아한 목소리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덜 ‘까라마조프’적인 알료샤의 순수성과 잘 어울린다. 알료샤는 신부가 되어 출가해 있지만, 형 드미뜨리와 이반, 그리고 아버지 표도르의 광기 서린 욕망을 언제나 안타까워한다. 드미뜨리와 표도르가 유산과 여자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중재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늘 선(善)의 땅 위에 서고자 했던 자신도 어느새 악(惡)의 계단에 올라섰다는 것을 느끼고 좌절한다. 한 개의 계단을 오른 것이든, 백 개의 계단을 오른 것이든 이미 선(善)의 바깥쪽에 서게 된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뇌에도 불구하고, ‘까라마조프’의 부정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알료샤의 노력은 구원의 씨앗이다.

 

뮤지컬 중반부에, 무대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성당에 있을 법한 초들이 일제히 켜지는 장면이 있었다. 극을 꽉 채우던 피아노 선율마저 사라진 채, 관객들의 들숨과 날숨만이 고요를 깨우던 중 무릎 꿇은 알료샤의 목소리가 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에게, 황제가 마지막 말을 생각해낼 5분을 주었을 때 그는 어떤 말을 떠올렸을까? 알료샤가 삶의 마지막에 내뱉고 싶은 단어는 사랑이었다. 사랑할 줄 모르는 지옥에 갇힌 사람에게도 구원의 동아줄이 될 수 있는 실천적 사랑이야말로 알료샤가, 그리고 그의 뒤에 선 도스토예프스키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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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10년을 바라보고 기획된 작품이라고 한다. 2018년에 이어 두 번째로 공연을 선보였으니, 기획 당시의 포부가 관철된다면 앞으로도 여덟 번 더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소식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공연도 훌륭했지만, 문학에 대한 이해는 시간과 함께 더 성숙해지는 만큼 향후의 발전이 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잔인한 천재’라고 불렸는지를 조금 더 이해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관극을 망설임 없이 권한다. 다만, 1500페이지 가량의 책을 읽기는 힘들더라도 줄거리는 꼭 찾아보고 가시기를. 러시아인들의 이름은 길고 어렵다.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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