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한 슬픔, 이로운 고통

-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는 한 방식
글 입력 2020.02.2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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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홀연히 떠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버틸 만큼 버티다 마침내 어떤 순간 단호히 몸을 틀어 있던 곳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실천 없는 고민만을 끝없이 반복하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결단을 내리고 자신의 삶을 새로 쓰는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들. 결국 내가 마음을 빼앗기는 건 그런 류의 이야기, 그와 같은 결말이었다. 보통 그들에게는 타인은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할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내적 갈등의 시간이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이 지난 뒤에 보상처럼 주어지는 깨달음, 자기 변혁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그것은 내게 희망을 줬다.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에도 ‘떠남’의 순간이 등장한다. 주인공 경애가 오랜 연인이었던 산주, 다른 여자와 결혼한 후에도 비틀대며 자신을 찾아오곤 했던 그를 끊어내지 못하다 어느 순간 결연히 안녕을 고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파업 참여를 이유로 회사에서 갖은 박해를 받을 때도 꿋꿋하고 당당했던,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 경애가 맥을 못 추고 산주에게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그녀는 옛 연인의 ‘너와 전처럼 자고 싶어, 따뜻하게.’라는 말에 역겹다고 말하는 대신 함께 모텔에 간다. 그러나 경애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산주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옷에 양말까지 챙겨 신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산주 앞에서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홀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그날 밤 이후로도 경애는 한동안 산주에 대한 연민이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도록 방치해 두는 듯했지만, 불현듯 찾아와 이혼 소식을 알리는 그에게 잊을 수 없는 또렷함으로 말한다. “선배, 그걸 왜 나한테 말해? 그 밤, 욕실에서 나온 내가 보았던 선배는 원망스러울 정도로 일상을 지키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앞으로도 선배가 그렇게 잘 살아갈 거라고 생각해. 힘을 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선배는 그런 말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야.”

 

나는 이런 순간을 응원한다. 지금 위로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리하여 두 번 다시 착취와 사랑을 혼동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순간.


산주를 남겨둔 채 끝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올라와 그날 밤을 견딤으로써, 산주와 경애가 함께 머물던 세계는 비로소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경애를 애정하는 나는 이와 같은 장면이 어서 빨리 나오기를 기다렸다. 진작부터 경애는 산주보다 자기 자신을 더 돌봤어야 했다. 산주가 경애의 선배이기도 한 어떤 여자를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했을 때, 이미 그는 그녀에게 죽은 사람이 됐어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경애의 마음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끝까지 가봐야, 바닥을 쳐봐야 비로소 돌아선다.


자기가 더 불쌍해지는 줄도 모르고 상대에 대한 연민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을 볼 때 사람들은 답답해 하지만, 그러나 사실 그렇게 걱정할 일도 아니다. 사람에게는 어느 시점이 되면 이제 그만 진창에서 빠져 나오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최선을 다해 자기 인생을 구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런 게 있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입기 전의 상태로 삶을 복구하고자 하는 의지, 회복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을 그저 믿어주면 된다. 십대 시절 화재 사고로 열 명이 넘는 친구들을 한꺼번에 잃었을 때, 실연했을 때, 파업으로 삭발까지 감행했을 때 등등 힘든 시간이 경애를 찾아올 때마다 경애 엄마가 자신의 딸은 ‘언제나 일어서는 아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엄마에게 경애는 ‘아플 때 아파야 하는 사람이기에’ 힘든 일이 있으면 무너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삶을 이어나갈 것이었다.

 

경애가 겨우 돌이었을 때 남편의 폭력과 폭언에서 벗어나고자 이혼을 결심한 경애 엄마는 자그마한 동네 미용실을 운영하며 딸을 혼자 키워왔다. 경애가 산주와의 이별로 자취방에 처박혀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못하던 어느 날 그녀는 불쑥 경애를 찾아가 밀린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린다. 계절이 지나도록 방치돼 있던 빨래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세탁기를 일곱 번 돌려도 끝나지 않았지만 “경애 엄마는 그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않”았다. 자신이 “그렇게 해야 경애가 일어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경애를 앉혀두고 묵묵히 빨래를 하던 경애 엄마의 마음, 세탁을 하고 탈수를 시키고 탈수가 끝나면 빨래를 널고, 다시 그것을 일곱 번 반복하던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어쩌면 슬픔이나 고통의 효용을 아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태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슬픈 사람은 그 슬픔 속에 완전히 잠겼다 다시 빠져나오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엄마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인간은 슬픔과 고통을 발판 삼아야, 힘든 시간을 자양분 삼아야만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씻고 먹고 움직이고,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들조차 힘겨워하는 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일상의 일들을 해 보임으로써 경애 엄마는 경애를 생활의 공간 속으로 당겨온다. 엄마가 집을 치우고 국을 끓이고 수건과 속옷을 사 오는 사이 경애는 “엄마”하고 부르기도 하고 며칠만인지 모를 샤워를 한다. 그녀는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으로 다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간다. 물론 여전히 슬픈 채로.


슬픔은 변함없지만 적어도 경애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암시로 가득한 이 장면은, 내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장면 중 하나다.


나는 《경애의 마음》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타인을 돌보는 사람들이라는 게 좋다. 조 선생은 자신도 알코올 중독자이지만 도박 중독에 가족에게까지 버림받은 직장동료 창식을 돌보고 경애의 단짝 일영은 오토바이도 들어갈 수 없는 산속 마을로 걸어서 수도검침을 하러 갈 때마다 버려진 개들에게 줄 먹이를 챙기는 걸 잊지 않는다. 내 코가 석자여서 좀처럼 힘을 내기 힘든 순간에도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줄 여분의 마음이 존재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하나같이 하자가 있고 무엇인가가 ‘되다 만’ 인생이지만, 그런 이들이 세상을 이기는 순간은 바로 그렇게, 누군가를 돌보는 때다.



[이세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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