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연결고리

글 입력 2020.02.2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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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연결고리
<시오타 치하루 – 영혼의 떨림>전 2019.12.17. - 2020.4.19. 부산시립미술관

 


대부분 그러겠지만, 나 역시도 12월과 1월 ‘내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올 한 해를 잘 살아왔는지, 다가올 내년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이런 자아 성찰의 시간은 연말과 연초의 특수효과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드러내며 살고 있다. 다만 정도와 종류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재 부산시립미술관 2층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오타 치하루 – 영혼의 떨림>전의 시오타 치하루는 ‘존재’에 대해 그 누구보다 진중하게 연구하는 사람 중 하나다. 회화부터 퍼포먼스, 설치, 무대 디자인 등 여러 장르를 선보인 작가는, 110여점의 작품을 통해 지난 25년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들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본 전시는 <영혼에 대하여>(2019)란 제목의 4~5분 정도의 영상 4개로 시작된다. 작가는 자신의 딸과 같은 나이 또래의 초등학생들에게 ‘영혼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아이들은 그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을 말한다. 이들의 순수하면서도 다양한 답을 들으면서 관람객 역시 내가 생각하는 영혼은 어떤 것인지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영혼엔 색깔이 있는 것 같아요’, ‘영혼은 늘 평안한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대답을 곱씹으면서 웃다가 마주하는 다음 작품에서 관람객들은 거대함에 전율을 느낄 것이다. <불확실한 여정>(2016)은 작은 배 여섯 척에서 토하듯 뿜어내고 있는 붉은 실이 서로가 엮이면서 면을 이루다 마치 거미줄과 같은 형태로 연결되어 공간 전체를 뒤엎으면서 관람객을 압도시킨다. 작가가 어렸을 때 가족의 묘에서 처음 느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경험, 여기에서 시작된 ‘존재’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 불안과 불확실성으로 연결되었고, 이것은 작가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되었다.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붉은 실은 사람과 사이를 연결해주는 인연의 끈으로 생각될 수도 있고, 혹은 영혼의 흔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어쩌면 사람의 몸속을 순환하는 혈관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어떤 의미로 여겨지든 개체와 개체를 연결하는 특징으로 읽힌다는 점에서 관람객은 이 거대한 작품 안에 머무르면서 다시 한 번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 세계는 회화를 벗어나면서부터 그 특징이 도드라지기 시작한다. 회화를 자신의 표현법으로 삼았을 때 “요동치는 마음이 그림 아래 깊이 숨겨져 눈에 보이지 않았다.”, “테크닉만 앞서고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좌절했다.” 라는 고민하며 회화 표현의 한계를 느낀 작가의 고뇌는, 시각적인 결과물로 작품이 존재했을 때 작품의 물성보다 작가 자신의 생각이 드러나길 바라는 바람을 시사한다. 몸에 애나멜을 칠하고 벽에 걸린 캔버스를 가로지르고 서서 스스로 작품이 되는 <회화가 되어가는 과정>(1994)에서 시오타는 회화를 넘어서는 돌파구를 찾는다. 이후 독일 유학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몸, 좀 더 자세히는 ‘피부’에 대해 진지하게 인지하기 시작했다. <집에 가 보세요>(1997), <욕실>(1999), <피부의 기억>(2001), <벽>(2010) 등의 퍼포먼스 영상 작업들은 ‘피부’를 대하는 작가의 인식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변화해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작가는 옷을 제 2의 피부로 상정하기도 하고, 벽과, 문, 창문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활공간을 제3의 피부로 여기며 작업을 전개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며 내면의 고민을 드러낸 작가의 시선은 이제 자신이 살고 있는 외부로 관심을 넓힌다. 시오타 치하루는 <목적지, 존재의 이유-사진들>(2010)의 여행가방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통해 동독과 서독으로 단절되기 전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독일인들을 붉은 실로 연결한 사진들로 표현했다. <목적지, 존재의 이유 – 튜브와 신문>(2010)에선 베를린 장벽으로 치환될 수 있는, 단단하게 굳어져버린 시멘트는 여행 가방의 한 면을 채웠고 그 시멘트 위엔 생명을 연결시켜주는 튜브가 붉은 실에 묶여있다. 그러나 <목적지, 존재의 이유-시멘트>(2010)에서 단단했던 시멘트는 부셔져 있고, 묶여있던 빨간 실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던 벽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의 심장에 연결되면서 다시 소생한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생각을 시각화하여 세상에 내놓을 때, 대부분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 뿌리를 둔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시오타 치하루의 작업은 관람객의 코어를 흔드는 느낌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전시를 관통하는 맥락에 작가의 간절함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전시를 제안 받았던 2017년, 작가는 난소암 재발로 인한 2년의 시한부를 통보 받았다.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서도 존재를 고민하던 작가에게 다시 한 번 ‘죽음’은 운명처럼 다가왔고, 시오타 치하루는 삶을 지속시키고 생존하기 위해 전시를 구상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시를 선보이겠다는 의지가 작가를 살린 셈이며, 그러한 그의 영혼이 전시에 깊이 베여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들도 그 영혼을 느끼며 동조된다. 가장 최근작인 <작은 기억들을 연결하다>(2019)에서는 미니어처 크기의 작은 사물들이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 작가가 선보이는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는 작가의 경험이 우리 삶의 면면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경험임을 알게 하며, 각자의 삶에서 붉은 실로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길 제안한다.

 


[김명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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