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픽션 - 어떤 하루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
글 입력 2020.02.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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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픽션.

나를 재료로 픽션을 썼습니다. 거짓이지만 진실같은 하루였습니다.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

 

 


 

 

포맷변환1.jpg

 

 

 

해가 지니 배가 고팠다.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공기가 차가웠다. 어깨에 짊어진 가방이 등을 감싸 그나마 견딜 만했다. 목으로 파고드는 냉기는 어쩌지 못했다. 으슬으슬 추웠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은 어둡고 냄새가 났다. 냄새는 싱크대에 켜켜이 쌓인 그릇과 그릇에 고인 짬국물을 가리켰다. 분명 집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뻔뻔하게 쌓인 그릇. 불쾌한 냄새. 저걸 내가 치워야 하나. 한참을 바라봤다.


집에는 모처럼 돌아온 형이 있었다. 냄새는 그의 짓이 유력했다. 쾌쾌한 냄새를 두고 지금까지 뭘 한 걸까.

 

너 언제 왔냐?”

“…”

 

엄마는?”

나갔어

 

시간은 6시를 향했다. 키 패드에 번호를 눌렀다. 엄마라고 뜬다. 통화연결음이 길어진다. 한 번에 전화를 받는 적이 도통 없다.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아들 둘 키우면서 부업도 하고 그 돈으로 적금도 들고 빠릿빠릿하게 세상 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어 50살을 넘기고 나서는 자기 전화가 오는지 한 번에 알아차리지 못하게 됐다.


두 번째 통화 시도를 끝으로 전화를 내려놓았다. 밥을 먹기 위해 퀴퀴한 냄새 속으로 향했다. 식기건조대에 놓인 그릇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릇에서도 짬국물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릇은 깨끗했다. 후각보다 시각의 편을 들어 그릇에 밥을 펐다. 짜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았다.


전화가 왔다. 액정에 엄마라고 적혀있다.

 

어디야

왜 전화했어

 

언제 와?”

지금 뉴코아 사거리야

 

저녁 뭐 먹어

식빵 하나 샀어. 집에 가서 어묵 볶아 먹던가 하지 뭐

알았어

 

듣고 싶은 말은 하나도 없는, 늘 하던 대화였다. 적당히 감정이 상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짜장에 밥을 비벼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도 액정에는 엄마라고 적혀있다.

 

!”

밴댕이로 와

밴댕이는 왜!”

밥 먹게

알았어

 

형에게 밴댕이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오랜만에 집에서 공부 좀 하겠다는데. 왜 또 갑자기 나오래!”

미친새끼

 

엘리베이터를 타고 형과 함께 집을 나왔다. 그런데 밴댕이에 도착하는 것은 제각각이었다. 내가 먼저 도착하고 뒤이어 형이 도착했다. 걷는 속도가 다르다. 형도 다르고 나도 다르고 엄마도 다르다. 나는 빠르고 엄마는 본인 마음대로였고 형은 느렸다. 서로 맞출 생각이 없다. 각자 속도대로 목적지를 향해 갈 뿐이다.

 

밴댕이에서 동태탕에 밥을 먹고 나왔다. 이제 목적지는 집이다. 각자 속도대로 집에 간다. 걸음이 빠른 내가 먼저 앞지른다. 그다음으로 엄마, 형 순이다. 같은 길을 따로 걷는다. 무슨 생각을 할까. 알 수 없다. 대화는 통하지 않는다. 번번이 감정만 상한다. 그런데 우린 가족이다.

 

가족이 있어도 솔직히 외롭다. 이상하게 외로움을 위로하는 건 포만감이다. 니가 외로운 건 가족 탓이 아니라 배고픔 때문이라고. 외로움이 포만감으로 일단락된다. 기분이 풀린다. 그리고 일상이 된다. 굶주림이 초래한 외로움. 외로움을 채우는 포만감. 이상하다.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걸까. 나만 그런 걸까.

 


 

[이지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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