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인 딸이 막내인 엄마에게 [사람]

글 입력 2020.02.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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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끝난 뒤 남은, 막내인 엄마에게


 

엄마는 다시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말수가 줄었다. 표정도 영 다양하질 않았다. 그녀가 가끔 표정을 풀 때는 스스로 모자라다고 인정할만한 실수를 했을 때, 가끔 표정을 쥘 때는 다 큰 첫째딸이 애같이 굴거나 아님 것도 부족해 다 큰 아빠가 애같이 굴 때. 보통 둘 다 술에 얼큰하게 취해 들어왔을 때다.

 

명절을 맞아 다녀 온 엄마 아빠 집. 모두 부산에 있다. 너무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게 우리 가족은 일년에 두 어번 다녀오는 동네이다. 그렇지만 항상 계시는 엄마 아빠의 엄마, 할머니와 외할머니에게는 짧기만 한 시간이다. 것도 이대 일의 비율로 할머니 댁과 외할머니 댁에 머무니 '이렇게 있을 거면 다음부턴 오지 마라' 하는 서운한 외할머니 말씀이 당연하기만 하다.

 

할머니와 외할머니 두 분다 부족함 없이 어린 손녀를 항상 예뻐해주시고 대견스러워해주시고, 자랑스러워해주셨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하고 놓이는 건 외할머니댁에서였다. 예전에는 그냥 외할머니 인상이 조금은 더 포근해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엄마와 참 많이 닮으셨다. 닮았다면 외할아버지 쪽을 더 닮지 않았을까 하던 엄마 인상도 서서히 외할머니의 모습을 담아간다. 첫째 딸 둘째 아들 셋째 딸 넷째 딸 있는 만만치 않은 여섯 식구를 꾸리면서도 지난 세월 살아온 모습이 누구 하나에게도 박하지 않고 고루 먹이고 입혔을 것만 같은 외할머니. 우리 엄마의 엄마고, 그런 엄마의 딸은 저 여섯식구 중에 제일 막내다. 홀로 서울생활 중이라 항상 걱정인 막내 딸이다.

 

서울 가기 전 마지막 저녁, 이번 설에도 여전히 늘 하시던 제사음식을 가득 한 상 차려주신 외할머니와 역시 엄마 나물이 제일 맛있다는 엄마 모습 덕분에 서운함보다는 반가움이 더 앞섰다. 문득 엄마의 저런 모습을 언제 봤나 생각이 들었다. 잘 먹고 나더니 엄마 이번엔 떡 안했어? 하는 모습이 철딱서니 없는 막내였다. 그래그래. 바로 내올게 하는 외할머니의 말에 우리 막내의 언니들과 오빠는 니가 좀 해라~ 하며 핀잔을 준다. 언니와 오빠와 엄마를 번갈아 부르며 쫑알 쫑알 대던 그녀는 첫째인 내가 보기에 완벽한 막내였다. 내가 부산 내려가면 말하지 좀 말라 한 것도 얘가~ 하면서 다 불어버렸으니까. 막내는 자고로 고자질하는 데 제일 선수이고 비밀이란 없는 법이다. 

 

그런 막내는 다시 서울에 와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다. 곧장 부산에서 서울 와서 또 저녁에 나간 딸이 몸살을 안고 들어와서 또 얼마나 걱정을 시켰는지 모르겠다. 자고 일어나니 몸살을 떨칠 기운이 났고, 오전 10시 즈음이 되어서야 엄마와 온전한 하루를 날 수 있었다. 

 

일찍 나가야 한다는 아빨 깨우고 나와 동생을 깨우고 아침을 차린 엄마는 밥을 먹고 아빠가 설거지를 할 동안 잠깐 쉬었다. 아빠 덕분에 조금은 일찍 시작한 하루에 난 동생과 아침을 먹고선 산책을 다녀왔더니 장 볼 준비를 하고 있기에 같이 갈까 했다. 생각해보니 엄마와 장본지도 조금은 됐다.


뭘 하나 하며 고심해서 고르는 반찬거리들이 여간 다 비슷비슷해서 어려웠다. 매일 같은 반찬 탓하며 한 끼 한끼 맛있게 잘 먹었다는 소리 제대로 못했던 게 이제와서 후회가 됐다. 장바구니를 끌고 오면서도, 그렇게 끌면 다 어스러진다 하는 엄마 말에 이런 서투른 내가 부끄러웠다.

 

점심을 먹고 나선 카페를 갈 참이었는데 엄마는 또 이불 빨래를 해야겠다며 나갈 채비를 하길래 다시 따라나섰다. 해가 안떠 칙칙한 날에 이불을 말릴 곳도 없다고, 근처 세탁방에 가 건조까지 모두 해야 한다고 하며 기왕 갈 거 한 가득 또 챙겨간다. 이불도 한 두개가 아니니 무거워서 나눠 들었는데, 정말 무거워서 엄마 발걸음보다 한참 뒤쳐졌다. 언제부터 엄마 두 다리와 양 어깨가 그렇게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는지 모르겠다. 아빠도, 동생도 함께 갔던 세탁방을 나는 이번에 처음 가서 빨래 한 번 돌리는 데 한시간 정도 걸리는 줄도 모르고, 와중에 그럼 책이라도 챙기라고 하지 하는 샐죽한 소리도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또 다시 부끄러워졌다.

 

저녁준비 할 동안 마저 옷 빨래 좀 집에 널어줄 수 있겠냐는 말에 빨래를 널고 보니 그새 밥솥에서 밥이 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6시였다. 언제나 그렇듯 엄마의 도마 위에는 이런 저런 야채들이 모여있었고, 이제 와 보니 외할머니 못지 않게 뚝딱 밑반찬을 만들고 있는 우리 엄마가 보였다.

 

지금은 막내 아닌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별게 없었다. 가끔 선심쓰듯 하며 하던 분리수거도 좀 해보려고 했더니 오늘은 아파트 분리수거 하는 날이 아니라는 엄마 말에 얼굴이 화끈해진 첫째는, 그럼 집 좀 치우라는 말에 청소를 시작하게 되었다.


안 쓰는 것 버리고, 쌓아두었던 것들을 다시 채우고. 하나 둘 치우다 보니 치울 게 셋 넷이 되었는데, 내가 수험생 시절 공부하던 책상 그대로 공부하던 동생 주위가 막 정돈된 것 같지 않아 대신 조금씩 치우고 비우며 다시 동생이 쌓아둔 것들을 보기 좋게 채웠다. 엄마는 그런 식으로 우리 환경을 잘 만들어주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쫑알 댈 시간도 마음 놓고 앉아 있을 시간도 잘 없었겠구나. 

 

저녁을 마치고 나서야 앉아 또 한 잔 걸치고 온 아빠에게 한 소리 하는 엄마다. 그래도 아빠는 저녁 먹은 설거지 하고 방금 주무시기 시작했다. 첫째가 엄마 졸졸 따라다닌 하루가 이렇게 저문다. '엄마, 고생했어'라는 말을 이렇게 글로 먼저 해본다. 다행인지 뭔지, 하루 종일 마스크 끼고 다닌 덕에, 또 엄마의 익숙한 일상에서 뒤쳐져 매번 엄마보다 한참 뒤에서 걸었던 덕에 울컥하며 앙 하고 다문 표정들을 숨길 수 있었다. 결국 그냥, 첫째인 내가 조금 더  첫째 답게 살아야지. 그래야 막내는 막내다울 수 있는 법이다.

 

 
[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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