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모금과 위스키가 주는 메시지 : [영화] 소공녀

글 입력 2020.02.2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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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전고운 감독의 영화 <소공녀>는 한 여성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일 마시는 위스키 한잔과 담배 한 갑을 위해 과감하게 집을 버린 주인공 미소의 이야기. 자신의 취향과 소신이 확고한 그녀는 자본주의 사회의 흔히 말하는 '잘 사는 법'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신념과 행복을 찾아 살아가고 있는 현대판 도시동화의 인물이다.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취향은 저 어딘가에 묻어두고 살아야하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자유의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미소를 보면서 행복의 정의를 '나 자신'으로 두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과 용기를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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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대학을 중퇴하고 3년째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미소의 가계부다. 하루일당 45000원. 새해가 되자 담배값이 인상되었다. 야속하게도 일당은 안오르는데 말이다. 계속 적자가 나는 이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위스키와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미소는 집을 나가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미소라는 인물에게 '집'이라는 것은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낸 미소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담배와 위스키보다 행복을 주지 못하는 것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다. (물론 미소가 살고 있는 집도 좋은 집은 아니었다. 만약 싼 값에 좋은 따듯하고 안락한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면 미소도 선택을 달리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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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하자..."

 

미소의 행복의 요소 중 하나였던 남자친구 한솔. 사실 그렇게 백마탄 왕자님같은 남자도 아니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잘난남자의 기준에도 한 없이 못미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에게 나름 매력이라고 볼 점은 좋지 않은 형편에도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이 후지다는 걸 너무나 잘안다는 거? 자기 객관화가 되어있는 인물같달까. 연애에 있어 경제적형 편은 큰 걸림돌이 된다. 서로의 경제적 차이로인해 비롯된 소비습관과 가치관에서 불화가 일기도하고, 씹기도 힘든 빡빡하고 퍽퍽해진 빵처럼 자신의 감정과는 달리 누군가를 챙길 형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안좋은 태도들이 형성되기도 한다.


그 태도들을 상대에게 점점 합리화시키고... 그렇다, 찌질함은 이 시점에서부터 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솔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물질적으로 미소와 한솔은 보통의 커플보다 못한 데이트를 하고 있었지만, 둘은 나름 행복하다. 경제적인 형편이 비슷했기에 서로 스무스하게 넘길 수 있었다는 것도 나름의 잘 맞는 요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점?  미소는 그런 한솔의 모습을 너무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남자친구랑있는 미소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보기좋았다.  ( 그런데 한솔이가 택시를 타고 가며 '솜이야!'라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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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은 미소는 대학 때 같이 밴드부를 했던 친구들에게 '계란 한 판'을 들고 찾아간다. 계란은 미소에게 상징적인 어떤 것이다. 자신을 재워주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수단이자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상징물? 실제로 미소는 친구들 집에서 신세지는 내내 친구들의 집 청소를 다 해놓기도 했을 뿐 아니라 친구들의 힘든 삶을 경청으로 위로했다.  말하는 것보다 들어주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는 요즘. 미소는 어렸을 적 읽었던 책 모모의 모모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로인해 누군가의 삶에 위로를 내어주었다. 자신도 분명 힘든 상황이었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미소는 밉지가 않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투정부리지도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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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취미와 취향을 향유하는 사람들과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은 황홀하다. 이 장면에서 미소와 미소의 친구들의 대학시절도 행복해보인다.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졌을 뿐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실현해내고자 모인 이들.  낯선이와 공통 관심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샘솟는데 '밴드'를 통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실현해내는 과정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대학생이라는 '다소 과감해도 용서받는 시기'에서 졸업해 약육강식의 현실로 편입되면서 대개는 생각과 감정의 색이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현실에 맞추어 생각과 취향을 타협하고 현재의 행복보다는 '고생끝엔 행복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오늘을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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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미소. 그녀의 뒷 모습은 처량해 보이기보단 멋있어보인다.누구보다 자유로운 사람. 자본이 곧 힘인 사회에서 자본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사람. 자본주의라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정말 무섭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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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소는 궁핍했지만, 마음은 넉넉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경제적 열악함을 친구들에게 불평하듯 연민을 요구하지도 않고 자신보다 잘 나가는 친구를 보며 못돼먹은 열등감을 내비치지도 않는다. 미소는 그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들어주는 누구보다 여유로운 사람이었다. 막연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미소는 우리 가슴 한 켠에 묻어놓은 또 하나의 우리 모습 일지도 모르겠다.자신의 안식처와도 같은 취향을 향유하며 자신만의 행복을 고수해나가는 그런 사람. 

 

현실적으로 미소같은 삶을 택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미소에게 담배와 위스키 그리고 남자친구가 삶의 이유였다면 우리에게 삶의 이유가 되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과연 세상과 타협만 하다 행복이라는 진정한 목표를 놓쳐버리진 않았는지 자신에게 질문해 볼 수 있겠다.


오늘도 날씨가 춥다. 미소는 오늘도 위스키 한잔과 담배로 삶을 위로하고 있을까?



[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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